맞춤형 소량 출판의 5가지 그림자
2013년 02월 01일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전자책과 맞춤형 소량 출판(이하 POD)을 이용한 종이책으로 2011년 5월에 처음 출간됐다. 전체 3권이 완간될 때까지 순전히 입소문만으로 팔렸다. 급기야 랜덤하우스 자회사 빈티지 북스가 판권을 승계해서 2012년 4월 개정판을 냈다. 2012년 아마존 영국에서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가 '해리 포터' 시리즈 판매량을 뛰어넘었다는 발표를 했다. (주1)

1. 왜 POD를 하나?
대형 출판사에서 원고를 안 받아주니까 작가가 독립 출판을 한다. 가령 민음사가 선인세 1억 주겠다는데 독립 출판을 할 작가는 없다. 당장 우리 출판사 작가도 (메이저 리그로) 이적을 한다.

2. 전자책으로 하지
독립 출판의 한 형태인 전자책은 아주 쉽다. 편집·교정은 외주나 품앗이를 하면 그럴싸한 원고가 나온다. 커버 디자인도 70~150만 원이면 나온다. 미국을 보면 SmashWords라는 사이트가 있는데 표지 디자인과 워드 문서만 넘기면 전자책을 만들어서 전자책 유통사 역할을 해준다. 국내에서도 유페이퍼가 비슷한 서비스를 해준다. (주3)

그런데 종이책 수요는 전자책 수요와 별개라고 봐야 한다. 전자책을 지인이나 직원에게 선물하기는 난감하다. 실물이 없는데 증정본 돌리기 같은 홍보는 어떻게 하나?

3. 나도 찍어도 되나?
그래 종이책을 찍자. 그런데 돈이 많이 드네. 일반적인 단행본 출판에서는 규모의 경제, 즉 많이 찍으면 단위 원가가 줄어드는, 효과를 볼 수 있는 오프셋 인쇄나 CTP 인쇄를 한다. 인쇄기를 한 번 돌리면 천 부는 찍어야 한다. 천 부 찍는 단위 원가가 2,500원이라고 보면 250만 원이 든다. 여기에 천 부를 보관할 창고 비용·서점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책을 배송하는 배본 비용·반품 처리 비용·수금 비용을 합하면 작가 개인이 나설 일은 아니다.

4. POD 서비스
미리 종이책을 찍지 않고 주문이 올 때마다 (주로 레이저 프린터로) 종이책을 찍는다. 단점이라면 한 부씩 찍으니 직접제작원가가 높다. 그래서 대량 주문이 오면 인쇄소 자체 판단으로 오프셋 인쇄로 종이책을 찍기도 한다.

미국 POD 서비스의 선두주자 Lightning Source는 현재 24,000개 출판사와 거래를 하면서 종이책 1억 2천만 부를 찍었다. 최종 원고를 워드나 인디자인에서 PDF로 변환해서 올리면 된다. 권당 초기 셋업 비용이 몇 만 원, 연간 관리비 몇 만 원이 든다. 미국 최대의 서적 도매상 Ingram의 자회사라 유통 걱정은 없다. 반스앤노블, 일반 오프라인 서점, 도서관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책을 공급해준다. 아마존도 급하면 Ingram에 서적을 주문한다. (주2)

미국 아마존에 POD 책을 내려면 createspace라는 자회사를 이용하면 된다. Lightning Source와 비교를 한다면 미국 ISBN 구매비용 말고는 비용이 전혀 들지 않고, 인쇄 단가도 낮다.

정가는 출판사에서 결정한다. 정가에서 할인율만큼 금액을 빼고 제조 원가를 빼면 출판사 몫이 남는다. 미국에는 도서정가제가 없으니 아무 때나 정가를 바꿔도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교보문고가 POD 서비스를 제공한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하는 PDF 에디터로 원고를 편집하고 표지를 만들어 책을 완성하면 나머지는 알아서 해준다. 정가는 판형과 페이지 수를 기준으로 계산된다. 셋업 비용이 0원이다. 정가 대비 20% 인세를 지급한다. 온라인 교보문고에 책이 진열된다.

5. 독자한테도 떡고물이 있나요?
한마디로, 없다. POD는 직접생산비가 많이 들어서 단행본 정가를 직접생산비의 2.5배로 책정하는 한국이라면 정가는 올라간다. 정가를 직접생산비의 6배로 책정하는 미국이라면 가격 경쟁력은 충분하다.

미국에서는 '마이너 리그'급 출판사와 계약하느니 직접 전자책·POD 출판에 나서는 작가가 많다. 현재 2,299명의 작가가 가입된 미국 야후의 pod_publishers라는 토론 그룹에는 기술적인 문제에서 가격 정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매일 활발한 대화가 오간다.(주4)

신은 (마이너 리그) 작가에게 POD라는 아이파드 못지않은 축복을 내렸다.

(요구맹 출판사에서는 올해 1월 21일부터 각각 교보문고, 미국 아마존에 POD 종이책 공급을 시작했다)

 


참고
1. http://en.wikipedia.org/wiki/Fifty_Shades_of_Grey
2. http://en.wikipedia.org/wiki/Lightning_Source
3. http://pubple.kyobobook.co.kr/help/guide_ebook.aspx
4. http://finance.groups.yahoo.com/group/pod_publis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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