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개발자] IT벤처의 신입사원들에게
2012년 09월 14일

IT 벤처 업계의 신입사원은 타 업계의 신입사원과는 매우 다른 특징적 경향들을 보입니다. 첫째로, 관료제를 온몸으로 거부한다는 겁니다. 날고 긴다는 PKS(Postech, Kaist, SNU) 출신들이 특히 이렇습니다. 어찌보면 어려서부터 인재라는 말을 많이 듣고, 알아서 잘 해왔을 테니 상당한 자유가 보장되었을 테고, 게다가 자유로운 분위기의 학교까지 다녔으니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둘째로, 직장을 돈을 위해서 다닌다기보단, 일하고 싶어서 다닌다는 겁니다. 이는 정말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일수록 이 특징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눈 앞의 재물에 둔감한 사람들은 실패를 견뎌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멀리 내다 볼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진정으로 무언가를 이룩하기 위해서 뭔가를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지요. 요즘에 벤처 붐이 일어난 뒤에 뜬금없이 벤처업계에 유입된 사람들 덕분에 이런 특징들이 많이 사라졌긴 하지만, 그래도 벤처업계라면 돈보다는 일이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입니다. 아마 여러분은 일을 열심히 하면 돈이 따라온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 겁니다. 돈에 일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는 성공의 중요한 요인입니다. 일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가끔가다가 돈과 일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내가 일을 열심히 해도 누군가 내 뒤통수를 치면 어떻게 하지?'란 걱정을 하면서요. 엔지니어들은 거의 그런 일이 없지만, 영업 쪽 사람들은 가끔 그런 경우가 보입니다. 말로 사업하는 사람들이지요. 이런 사람들을 멀리하세요. 이런 사람들은 생각이 많기 때문에 조직에서 내쳐질 수밖에 없습니다. 조직력을 저하시키거든요. 근묵자흑(近墨子黑)이라고, 이런 사람들 옆에 있으면 당신도 그런 생각에 오염됩니다. 그러면 같이 내쳐질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는 뭔가에 매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IT벤처에 올 정도면 공부뿐만 아니라 뭔가에 매진해본 사람들이 대다수일 겁니다. 학창 시절에 좋은 의미로 사고 친 친구들이야 회사를 설립하면서 더 큰 사고를 치려 할 겁니다. 사고뭉치가 아니라면 공부에 매달렸을 겁니다. 고등학교 때 보면 성공한 사람들은 미리 보인다고들 합니다. 자율학습 때 가장 먼저 담장을 넘어가고 도망치는 친구들이나, 아니면 모두가 담장을 넘어가도 끝까지 혼자 책상 앞에 진득이 앉아있는 친구들. IT 벤처에 들어왔다면 이런 성향이 꽤 있을 거에요.

그러나 이 열정이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회사 사람들을 구분하는 데에는 유용한 두 개의 기준이 있습니다. 첫째는 능력이고, 둘째는 열정입니다. 즉, 유능하고 열정적인 사람, 유능하고 회사 일에 무관심한 사람, 무능하고 열정적인 사람, 무능하고 무관심한 사람으로 사람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유능하고 열정적인 사람일 겁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누구일까요. 무능하고 무관심한 사람이 아닙니다. 가장 문제는 무능하고 열정적인 사람입니다. 결과적으로 열정이라는 건 양날의 칼과도 같습니다. 은하영웅전설을 쓴 다나카 요시키의 입을 빌리자면, 무능하고 용감한 사람이 사회를 망치는 법이니까요.

이 신입사원의 열정 때문에, 조직의 입장에선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에서는 신입사원이 뭔가 하나를 잘못해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조직도 회복 가능하고, 해당 신입사원도 회복이 가능해요. 어차피 대기업에서는 1~3년 차에 큰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배움의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근데 벤처는 달라요. 당신 하나하나가 일선에서 뛰는 전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신입사원이 괜히 신입사원이 아닙니다. 작은 회사에서 친 사고는 가끔 그 회사를 망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업무적 미스라면 배우면 됩니다. 당신이 서울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고 해도 당신 상사 눈엔 그저 햇병아리입니다. 실제 햇병아리에요. 처음부터 다 가르쳐 줘야 합니다. 그리고 어차피 실수할 것을 예상하고 업무를 배분합니다. 장표(PPT)를 만들어오라고 했다면, 아마 당신 상사는 처음부터 다시 자신이 만들 것을 예상하고 업무를 준 겁니다. 자신이 만든 장표가 갈아엎어졌다고 해서 실망하지는 마십시오. 모든 사람은 거의 비슷한 코스를 밟고 올라가니까요. 다음에 조금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면 됩니다.

사실 문제는 '오바'하는 사람입니다. 학창 때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에이스였는데, 기업 오면 아무것도 아닌 경우가 많거든요. 특히 몇몇 대학 출신은 개인화된 학교 분위기 때문인지 자주 문제를 일으킨다고 인식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대학 출신은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그 인식이 옳건, 그르건, 그건 큰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에게 당장 중요한 문제는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잘못을 해도 더 크게 이슈가 되거든요.

'내가 생각하는 회사는 이런 게 아닌다', '내가 알기엔 이것보다 더 나은 조직을 꾸밀 수 있다고 들었는데', '교과서엔 그렇게 안 적혀 있는데'........ 이제껏 배운 모든 것은 잊으세요. 조직이 교과서처럼 안생긴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조직에 당신을 맞추어야 합니다.

만약 신입사원이 야망이 크다면, 발언권을 더 요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의견이 의사결정에 반영이 안된다고 불만을 가질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반영이 안되는 것은 좋은 징조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대학 갓 졸업한 햇병아리의 생각에 조직의 방향이 결정된다면 그게 더 큰 문제지 않겠어요. 사장이 팔랑귀이거나, 당신이 배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의견이 의사결정에 반영이 안된다면, 당신은 조직이 수평적이지 않다고, 자신의 의견이 의사결정에 반영이 안된다고 불만을 가질 수도 있을 겁니다. 한가지 장담하건데, 그 어떤 조직론도 몇십년 못가요.  지금은 모두가 비웃지만, 한때는 매트릭스 조직이 대세인 적도 있습니다.수평적 조직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는 것은, 반대로 기존 수직적인 문화에서도 각 기업들은 충분히 잘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보통 IT업계 사람들이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하는 관료적이고, 수직적인 조직 우선의 문화를 갖춘 현대자동차를 보십시오. 삼성전자를 봐요.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무조건적으로 옳은 것은 아닙니다. 대기업 재벌 회장이라고 해서 거들먹거리고 명령만 내리는 거 좋아하는거 아닙니다. 깊은 고민 끝에 그런게 나온거에요. 그렇게 하면 조직이 효율적이되고, 그렇게 하면 돈이 되니까 그런거에요.

당신의 상사는 당신보다 더 많이 고민해왔고, 더 많은 것을 보아왔습니다. 애시당초 경험치가 차이가 나요. 그리고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당신의 상사는 이미 다 꿰뚫고 있습니다. 학교 선생님 되면 뒤에서 공부안하고 딴짓하는 학생들 다 보이죠. 근데 학생들은 자기가 딴짓 하는걸 선생님이 모를 줄 압니다. 이미 빤히 보이는걸 그냥 모른 척 하고 있을 뿐인데 말이에요. 팀장이 팀원을 대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실제로 얼만큼 성과를 내는지, 문제가 뭔지, 이 녀석이 이번 프로젝트를 성공 시킬지 성공 못 시킬지, 다 알고 있어요. 모른 척 하는 것뿐입니다.

일을 하다보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맡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걸 해내면서 뿌듯해 하겠죠. 그런데 당신 상사는 아마도 당신이 해낼 것을 미리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업무를 준 겁니다. 실패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럴경우 그 실패가 미리 보여요. 아마 실패함에도 얻는 것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그 업무를 준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입사원이 해야 할 것은 상사의 말을 최대한 경청하고, 상사의 말을 최대한 따르는 것입니다. 10명 미만의 벤처의 경우는 아마 대표이사가 그 위치가 될 겁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보고하세요. 업무와 관련하여서는, 일을 시작했을 때 첫 보고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상사는 아, 이 녀석이 이제 일을 시작했구나, 그럼 언제쯤 체크를 한 번 해봐야겠다 - 는 것을 마음속에 새겨둡니다. 그 뒤, 일의 1/3정도가 지나면 그제껏 결과물을 추려서 다시 보고를 하십시오. 많은 신입사원이 일을 끝내고서야 보고하곤 하는데, 이럴 경우 애시당초 상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습니다. 상사는 계란후라이 반숙을 원했는데, 신입사원이 멋대로 완숙을 해버리는 경우랄까요. 그 때문에 일의 초입에 다시 보고를 하고 '이런 식으로 진행하면 언제쯤 완성 될 것 같습니다' 라고 언급을 해 두어야 합니다. 그럼 상사가 중간에 체크를 해줘요. 아 맞는 방향으로 간다, 아니다. 근데 신입사원이 '간섭하지 말고 내버려두세요' 라는 마음을 갖는다면 그거야말로 조직과 유리되는 겁니다.

일을 진행하다 보면 초기에 예상치 못한 이슈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 어떤 이슈도 숨기지 마십시오. 어차피 숨길래야 숨길 수도 없습니다. 다 보입니다. 상사는 당신이 뭘 숨기고 있는지 다 보이면서 말하지 않는 겁니다. 만약 지금 안보여도 언젠간 다 보게 되어요. 그렇기에, 솔직히 전부 말하고 상사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 당신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됩니다.

당신은 상사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불만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예전엔 이랬다가, 지금은 이렇네요. 상사는 이런 말 한 두 번 듣는 게 아닙니다. 제 상사도 들었고, 저도 들었고, 모바일 벤처 업계에서 가장 유명하신 대표님도 들은 말입니다. 근데 본래 세상은 그래요. 투자가도 그렇고 아마 당신도 그럴겁니다.  경제가 안 좋을 때 투자가는 '어떻게 회사를 버티느냐'에 초점을 맞추다가도, 유동성이 조금만 늘어나면 바로 '어떻게 버틸지는 중요하지 않다. 공격적인 회사가 성공한다' 라고 말합니다. 당신의 상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릿 속에는, 논리로 표현될 수 없는 어떤 직관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나 소통이 많아지다 보니 직관을 논리로 풀어내면 한번은 이렇게, 한번은 저렇게 표현되곤 합니다. 매번 상황이 다르거든요.

보통, 사람들은 직관에 의하여 결정을 내리고, 논리로 그 이유를 서포트 합니다. 상사도 마찬가지에요. 논리로 정답을 추출해 낼 수 있다면, 컨설던트가 사업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근데 그렇지 않아요. 덧붙여 이야기하자면, 논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정답이 아닌지' 말할 수 있는 겁니다. '무엇이 정답인지'를 가려내는 것은 직관의 영역입니다.

이렇듯 IT벤처라고 해도, 실제로 부딪혀보면 대기업과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같은 조직이에요. 당신의 희망은 여지없이 부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히 말하건데, 벤처업계에서 성공한 사람이 대기업에서도 성공하고, 대기업에서 성공한 사람이 벤처업계에서도 성공합니다. 성공의 요인은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요. 성실성, 정직함 등등. 만약에 지금 상황에 대해서 불만을 가진다면, 당신이 선택할 것은 '회사를 떠나거나, 회사에 충성하거나' 두 가지 중 하나입니다. 회사가 맘에 안든다면 어서 빨리 헤어지세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 같이 있는 것은 서로에게 고역일테니까요.

벤처에 왔다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열정도 물론 많겠지요. 그 열정이 때로는 독이 되기 때문에,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보통 뛰어난 사람일수록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으니까요. 옆에서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도 별로 신경쓰지 않아요. 그러나 가진게 없다면 자신을 더 잘 드러내려고 하고, 인터뷰를 많이 하고, 홍보를 많이 할텐데, 그럼 멋모르는 신입사원들은 거기에 미혹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터뷰 뭐 사실 별게 없어요.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자기자신도 겸손하게 됩니다. 많이 알수록 겸손해집니다.

무언가를 이루어내기 위해서 열정도 중요하지만 그 열정을 좋은 곳으로 이끌려면 겸손해야 됩니다. 겸손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도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해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입니다. 뭔가를 해 볼수록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말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거에요. 그럴 수록 많이 적어져요. 누군가와 토론한다면 무언가를 단정하거나, 그것은 아니라고 감히 말하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우선해야 합니다. 특히, 자신을 돋보이려고 남을 비판하는 사람은 가장 먼저 비판 받습니다.

엔지니어 면접을 볼 때, '너 이런 것 좀 할 수 있니?' 라고 했을 때, 뛰어난 엔지니어들이 ' 제가 그건 정말 잘하거든요' 보다는 우물쭈물하면서 '할 줄은 아는데...' 라고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습니다. 왜냐면 면접자는 자기자신을 주변 못하는 친구들과 비교하지 않고, 정말 잘하는 사람과 비교를 합니다. 또는 아예 자기 자신의 목표와 비교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1등과 비교하면 내가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는데..', 'ACM 세계 1위랑 비교하면 난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데...' 란 식으로요. 이렇듯 벼는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습니다.

벤처에 들어온다는 것은 그만큼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경험을 빨리 쌓을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 어떻게 성장하느냐는 사실 여러분에게 달려있습니다. 다만, 그럴수록 여유있게, 자신의 의견을 앞세우기보다는 세상을 이해하고, 겸손함을 익히면서 천천히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by 보통개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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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세상을볼 나이
27세상을볼 나이
5 years ago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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