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생긴 일 #2] 발리, 신들의 땅에서 만난 비트코인 커뮤니티
2014년 08월 29일

작년 하반기, 국내에서 비트코인 관련 기사가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왔던 시기다. 당시를 기점으로 국내 분위기는 강력한 추종자들과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로 양분된 듯하다. 특히 주요 언론에서 다룬 내용이 디지털 화폐(Cryptocurrency)의 의미와 목적보다는 비트코인 자체와 이를 투기성 자산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기에 아예 관련 사안에 회의적인 시선들도 상당수다.

 필자 역시 분류를 따지자면 후자에 속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디지털 화폐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는 디지털 화폐가 현 금융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라는 비전 아래에 각종 프로젝트가 활발하게 전개 중이며, 디지털 노마드족들의 집결지인 발리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번 발리 체류는 비트코인에 대해 직접 듣고 관련 커뮤니티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비트코인과의 인연은 발리에 갓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 곳의 대표적인 협업 공간 후붓(지난 기사: 후붓, 신들의 섬에 자리한 협업 공간 이야기) 방문을 위해 우붓 지역에 도착, 숙소를 잡고 보니 게스트하우스 간판에 눈에 익은 마크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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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인지 필연인지, 내가 머무른 곳은 비트코인으로 숙박비를 낼 수 있는 곳이었다. 바로 앞의 유기농 음료 전문 카페 역시 그러했다. 게다가 후붓에 가기 위해 방을 나서다 복도에서 마주친 옆 방 손님은 알고 보니 남아프리카에서 비트코인 관련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후붓 커뮤니티의 일원이었다. 이런 소소한 우연이 시작되어 발리에서 활동 중인 비트코인 커뮤니티와 몇 차례 만남을 가졌고, 그중에서도 특히 흥미로웠던 두 가지 프로젝트를 이 글에서 소개한다.

코인 아카데미에서 디지털 화폐의 A-Z를 배워보세요

후붓에서의 둘째 날, 후붓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의 강력한 추천으로 ‘코인 아카데미(Coin Academy)’의 스티븐과 릭을 만났다. 발리에서의 비트코인 이야기를 다루려면 이 사람들을 빠뜨리면 섭섭하다는 부연설명과 함께.

8월 15일 오픈한 코인 아카데미 웹사이트는 디지털 화폐에 대해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비트코인을 비롯한 여러 디지털 화폐에 대해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체계적인 커리큘럼과 함께 관련 교육 자료를 제공한다. 이들은 왜 이런 서비스를 시작하게 되었을까.

coinacademy1.jpg▲릭 쉬리브(Ric Shreves) 공동 창업자 (좌)/스티븐 데뮬레네어 (Stephen DeMeulenaere) 공동 창업자 (우)

스티븐: 디지털 화폐 시장은 날이 갈수록 확장되고 있고,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기존의 금전 거래 시스템에 소요되는 시간과 인력, 거리에 즐비한 은행 건물과 ATM기기들, 그리고 천차만별로 다른 데다 그 금액을 결정하는 근거도 모호한 각종 명목의 수수료들이 더는 필요 없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문제는 이 모든 것들이 상당히 새로운 개념이라 많은 사람에게 어렵게 비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디지털 화폐를 투기성 자산의 일종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바로 부정확하고 파편화된 정보들이며, 이를 해결할 방법으로 코인 아카데미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코세라나 칸 아카데미의 디지털 화폐 버전이라고 보면 되며, 물론 무료 서비스이다.

: 현재 잘 알려진 디지털 화폐들로는 비트코인, 라이트코인, 피어코인, 리플, 도기코인, NXT 등이 있다. 이들에 대한 정보, 특히 올바르고 정확한 정보를 얻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많은 관련 자료들이 있긴 하지만 그 내용이 초심자들이 접하기엔 상당히 전문적인 것들이 태반이기 때문에 되려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쉽게 풀어 설명한다는 내용들도 대부분 그 질이 형편없다. 유투브에서 관련 영상들을 찾아보면 질도 질이거니와 내용이 서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디지털 화폐를 이해하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엔 부적합하다. 이런 현 상황을 타개할 방법에 대해 고민하던 중 스티븐과 함께 코인 아카데미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스티븐: 나는 Qoin, Complementary Currency Resource Center를 비롯한 보완 화폐 및 지역 화폐 관련 기업과 단체에서 25년 간 일해왔다. 그중 하나는 LETS운동(Local Exchange Trading System, 한 지역 내 경제 환경을 도모하여 지역경제의 자립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특정 지역에서 통용되는 화폐로 상품과 서비스를 교환하는 체계)인데, 서울에도 LETS 조직이 활발히 활동 중이다.

: 나는 웹 개발자이고, 스티브는 관련 분야에서 많은 이들이 인정하는 전문가이다.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웹사이트를 오픈하기까지는 3주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현시점에서 이런 서비스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점에서 매우 공감했고, 확신이 가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땐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바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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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7297.JPG▲후붓에서 매주 1회 진행되는 비트코인 필터 밋업에서 코인 아카데미를 소개하는 스티븐과 릭

스티븐: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시장 조사를 해보았는데, 아직 이렇다 할만한 서비스가 없었다. 이제까지 대부분의 유사한 시도들은 유투브 비디오 하나를 만드는 데서 끝났고, 또는 디지털 화폐가 아닌 비트코인 하나에만 초점을 맞춰 이뤄졌다. 아니면 이 화폐가 최고다, 아니다 저 화폐가 최고다라는 식으로 한정된 틀 안에 갇혀있는 교육 자료들도 많았다.

이미 인터넷상에 존재하는 자료들을 수집, 선별, 정리, 통합하는 과정을 거쳤으며 자체 콘텐츠 역시 준비 중이다. 사람들이 디지털 화폐에 대해 이해하고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질 높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이다. 디지털 화폐의 개념과 필요성, 그리고 어떤 디지털 화폐와 어떤 플랫폼이 자신에게 맞을지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일련의 지식을 제공하려 한다.

지금은 시범 운영 기간이고 테스터들로부터 많은 피드백을 받고 있다. 9월 1일에 자체 콘텐츠와 함께 정식 론칭을 하고, 관련 커뮤니티 등 여러 채널을 통해 홍보를 시작할 예정이다. 수익모델은 비트코인 거래소 소개로 발생하는 소개료, 기부 그리고 비트코인 관련 기관들로부터의 해당 커리큘럼에 대한 후원 등이다.

발리에서 비트코인 피플을 만나려면? 비트코인 필터 밋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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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리 딕스트라(Gary Dykstra)는 현재 발리의 비트코인 커뮤니티를 견인하는 비트코인 필터 밋업(Bitcoin Filter Meetup)의 주최자이다. 비트코인 필터 밋업은 매주 1회 후붓에서 열리며, 매주 다른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행아웃, 유투브 생중계 등을 통해 태국 등 주변 아시아 국가들의 비트코인 커뮤니티 역시  종종 이 밋업에 참여하여 각 지역의 상황을 공유하기도 한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디에 있건 지리적 조건에 관계없이 당신의 제품과 서비스에 돈을 지불할 수 있다. 난 이걸 하나의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10년 간 샌프란시스코의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근무했던 그는 기술을 이용해 편리하고 공정하게, 그리고 안전하게 가치를 교환하는 부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초창기부터 줄곧 비트코인을 비롯한 디지털 화폐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회사를 그만둔 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1년 간 완전히 휴식을 취하는 것. 이제껏 못 만난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고 싶었던 것들에 도전하며 그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일을 했던 것인지, 남은 삶을 같은 방식으로 보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고, 1년 뒤 비트코인 프로젝트에 대한 아이디어와 함께 그가 향한 곳이 바로 발리였다.

"특정한 의무나 타인에 대한 책임 없이 완벽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졌던 건 매우 현명한 결정이었다. 삶이란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이고, 장기간 동안 창의력을 발휘하며 효율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과 삶 간의 균형이 필수적이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니 창조적인 것들에 대한 열정과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욕심이 생겨났다."

Bitcoin Filter Meetup.jpg▲비니 데시아나 (Vini Desyana), 커뮤니티 매니저 / 개리, 창업자 (우)

지난 2월부터 그는 우붓에 자리잡은 협업 공간, 후붓에서 발리의 비트코인 커뮤니티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현지 인력과 함께 팀을 꾸려 매주 밋업을 주최하고 있으며, 발리의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비트코인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일에도 주력하고 있다.

발리는 휴가를 보내거나 재충전을 위해, 또는 일을 하기 위해 전세계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리에 설치된 ATM 기기에서 매번 수수료를 물어가며 현금을 인출하는데, 그마저도 출금 한도가 적어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은행, 카드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한 ATM 기기의 경우 1회 출금 한도가 한화 15만 원 선이다).

환전을 한다고 할 경우 매일 매일 달라지는, 그마저도 환전소마다 다른 환율을 일일이 비교해 가며 길거리를 헤매야 한다. 하루 만에 큰 폭으로 환율이 달라지는 경우는 드물지만 환전을 많이 한 바로 다음날 환율이 달라진 걸 보거나, 더 유리한 환율이 적힌 다른 환전소의 간판을 보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물론 상당한 양의 현금을 소지할 경우 생길 수 있는 위험은 덤이다.

개리와 그의 팀은 바로 이 점에 착안, 현지에서 비트코인만으로도 재화의 구입과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도록 발리의 비트코인 네트워크를 확장시키는 일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들의 노력 덕분에 다음에 발리를 찾았을 때는 비트코인만으로 숙식을 해결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살짝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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