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침체기에 접어들었나?

2015년말부터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미국의 테크놀로지 산업 전반에는 '유니콘' 기업에 대한 가치가 과대평가됐다는 거품론이 대두됐다. 씨비인사이트(CB Insights)에 따르면, 2016년에 이뤄진 대규모 거래들 가운데 약 80개 이상의 사례에서, 기업이 스스로 가치를 낮춰 다음 라운드 투자유치를 진행했다. 2016년 시장 전반을 보더라도 기업 가치, 투자 규모, 투자 수 등 다양한 지표에서 투자 위축 경향이 관찰되었다.

물론, 의견은 나뉜다. 2017년 상반기에 '테크 버블'이 터질 것이라는 <인베스터>와 <블룸버그>지의 의견과, 경제 침체와 지난 3년간의 무분별한 투자, 지나치게 높은 기업 가치 산정 경향 등이 스스로 조정되는 기간이라는 의견도 있다. 최근에는 후자에 더 힘이 실리는 추세다.

최근 뉴욕의 프라이머리 벤처(Primary Venture)는 2016년 투자 환경을 분석한 보고서 "프라이머리 뉴욕 초기투자 리포트(The Primary NYC Seed Deal Report)"을 펴냈다. 이 보고서는 2016년 뉴욕에서 이뤄진 25만~350만 달러 사이의 모든 시드투자를 취합해 2015년과 비교했다.

위 지표에 따르면, 투자 건수로 보아 2015년 4분기에 비해 2016년 4분기에 40%에 가까운 감소가 있었다. 전체 펀딩 규모로 보더라도 같은 기간에 25% 하락했다. 하지만, 프라이머리의 분석은 비관적이지 않다. 개별 투자를 보면 투자 금액은 오히려 25% 증가했다. 다수의 '그저 그런' 기업에 분산 투자를 하기보다는 적은 수의 실력있는 기업에게 집중적으로 투자한다는 말이다. 또한, 기업도 예전에는 성급하게 투자 유치를 추진했다면, 이제는 내공과 실력을 갖추고 차근차근 투자 유치를 노리는 문화가 자리잡았다고 평가했다. 실력과 투자의 상관관계는 아래 지표에도 나타난다.

전체 투자 규모를 살펴보면, 2015년 4분기에 비해 2016년 3분기와 4분기에 확실히 하락했지만, 100만~350만 달러 수준의 투자건들은 오히려 소폭 증가했다. 더 검증된 회사에게 돈이 몰린다는 뜻이다. 이는 뉴욕의 가장 명망있는 5개 초기투자 벤처 캐피탈인 퍼스트 라운드 캐피탈(First Round Capital), 레러 히포 벤처스(Lerer Hippeau Ventures), 프라이머리 벤처 파트너스(Primary Venture Partners), 그레이크로프트 파트너스(Greycroft Partners), 파운더 콜렉티브(Founder Collective) 등의 투자 기록에도 나타난다. 이들의 2016년 초기기업 투자 건수는 모두 49건이었는데, 이것은 2015년 대비 16% 정도의 미미한 하락세였고, 검증된 회사에 대한 투자 규모는 줄지 않았다.

2017년 뉴욕의 유망 산업 전망

금융 - 뉴욕이라는 지리적 특수성 때문인지 2016년에도 핀테크 분야는 활발했다. 이제는 포화상태인 온라인 지불 플랫폼 시장에서 신생기업 프라이버시(Privacy)와 이그젝(Exeq)은 각각 220만 달러와 165만 달러의 초기투자를 유치했다. 에어비앤비와 협업 중인 페이풀리(Payfully)라는 플랫폼도 30만 달러를 유치했다.

보안 - 최근 러시아의 미국 대선 해킹에서도 보여지듯 온라인 보안 시스템의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금융기관들이 밀집한 뉴욕에서도 고객의 정보에 관한 안보 상품 수요가 높다. 고객의 계좌와 재정 정보를 보호하는 프라이버시(Privacy)와 더불어 HYPR, 업레벨 시큐리티(Uplevel Security)가 각각 500만 달러와 250만 달러의 적지 않은 투자금을 유치했다. 이제 더 추락할 곳이 없는 야후(Yahoo)가 2013년 약 10억 명의 계정 정보를 해킹당했다고 보고하며 큰 파장이 일었던 것을 보더라도, 앞으로 정보 보안과 관련된 기술과 수요는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헬스케어 - 예년과 마찬가지로 2016년에도 건강, 의료 관련 스타트업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특정 의료 분야의 커뮤니케이션과 서비스 개선을 꾀하는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주목을 받았는데, 알콜중독자를 위한 애넘 헬스(Annum Health)가 250만 달러를, 고령자를 위한 서비스 웰시(Wellthy)도 200만 달러를 유치했다.

식음료 - 레스토랑의 천국인 뉴욕답게 식음료 관련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이 예년에 비해 꾸준하게 증가했다. 스낵을 건강하게 재가공해 유통하는 브라미(Brami)가 150만 달러, 수백 개의 레스토랑, 바와 파트너십을 맺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후치(Hooch)와 와인 엔 다인(Wine n Dine)이 각각 275만 달러와 250만 달러의 자금을 유치했다. 실력있는 셰프가 신선한 재료로 요리한 음식을 직접 배달하는 공유경제와 온디멘드 결합 모델인 쿡유니티(Cookunity)도 100만 달러를 유치했다. 물론 식음료 스타트업의 특성상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것이 관건이므로 후기투자를 유치하려면 초기투자 시점보다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될 것이라고 보고서는 기록했다.

뉴욕의 한국 스타트업 현황

3년 전 코트라(KOTRA)에서 스타트업 관련 사업을 시작하며 뉴욕에서 성공한 한국인 창업 사례를 조사했을 때, 우리가 잘 아는 헬스케어 스타트업 눔(Noom)과 몇몇 재미교포 창업인을 제외하면 존재감이 미미했었다. 그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생각된다. 우선 해외 진출 지원이나 사업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민관 차원의 지원사업이 존재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한인 스타트업 생태계 전체가 뭉칠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3년간 정부 주도의 다양한 해외창업 프로그램을 통해 적지 않은 국내 스타트업들이 뉴욕 시장을 두드렸고, 그 결과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들이 유의미한 결과를 내며 성장하는 중이다.

엑싯(Exit) - 지난 3년간 뉴욕에서 조용히 활동하던 애드테크(Ad-tech) 스타트업이 있다. 국내에는 유사한 모델이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새로운 개념이었던 모바일 잠금화면 광고 플랫폼 슬라이드조이(Slidejoy). 그동안 언론을 피해 조용히 내공을 쌓고, 고객 확장과 서비스 개선을 통해 꾸준히 수익성을 높이던 중, 국내 기업인 버즈빌(Buzzvil)에게 2016년 12월 인수되었다. 국내 출신의 유학생과 재미교포가 함께 뉴욕에서 기업을 시작해 만들어낸 첫 엑싯(exit) 사례로 생각된다. 국내 기업인 버즈빌은 미국에서 성장가도를 달리던 슬라이드조이를 인수함으로써 미국 시장 공략의 기회를 얻었고, 동시에 슬라이드조이는 자본력을 얻은, 이상적인 전략적 인수의 사례로 볼 수 있다.

투자유치 - 앞서 언급한 (Noom)이 삼성 벤처(Samsung Ventures America East Coast)로부터 투자를 받았다고 12월 발표했다. 눔(Noom)은 기존의 몸무게, 식단 조절 관리 서비스 영역 너머, 이제는 습관 변화, 질병 예방 등 포괄적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에듀테크 -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한국답게 다양한 모델의 에듀테크 비즈니스가 돋보였다. 우선 국내 최초로 뉴욕에 진출했던 에듀테크의 리더 격인 노리(KnowRe)는 2016년 상반기에 미국에서 가장 큰 과외 시장을 점유한 실반(Sylvan)과 계약을 맺었다. 그 외에도, 뉴욕에서 과외 교사와 중고등학생을 연결하는 플랫폼 구루(GOOROO),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창의적 프로그램을 만들어 아이들의 방과후 오프라인 활동을 꾸미는 노리(NORY) 등은 모두 유학생으로 미국에 건너간 한국인 청년들이 만든 스타트업으로,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좋은 평판을 얻고 있다.

한류 - 국내의 토종 스타트업이 미국인 소비자의 심리를 꿰뚫기란 정말 어렵다. 정말 좋은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B2B 모델이 아니라면, 한국인의 감성으로 만든 제품과 서비스가 미국인에게 다가서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한가지 예외가 있는데, 바로 한류에 관한 제품들이다.

  • 화장품: 서부에 미미박스(Memebox)가 있다면 동부에는 글로우 레시피(Glow Recipe), 소코 글램(Soko Glam), 피치 앤 릴리(Peach & Lily)가 활동 중이다. 모두 한국인이 설립했고, 한국의 뷰티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꾸준한 성장세로, 선의의 경쟁을 통해 국내 제품의 해외 수출을 이끌고 있어서 이들을 벤치마킹하는 다른 업체들도 계속 생겨나는 추세다.
  • 드라마: 미국에서 한국 드라마 콘텐츠를 방영하는 쌍두마차는 뉴욕의 드라마피버(DramaFever)와 로스엔젤레스의 온디맨드코리아(OnDemandKorea)다. 전자는 2016년 초에 워너 브라더스(Warner Brothers)에 인수되었고, 후자는 같은해에 시리즈 B 투자를 받았다. 한국의 드라마가 미국 소비자를 중심으로도 통할 수 있다는 사례를 이들이 보여준다.
  • 한식: 2016년 초, 뉴욕에 흥미로운 뉴스가 돌았다. 백인 청년이 한국 소주를 브루클린에서 제조해 사업화한다는 것이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브랜든 힐(Brandon Hill)로, Tokki Soju(토끼 소주)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는 파트너인 더글러스 박(Douglas Park)과 함께 하이엔드 마켓을 집중적으로 노리며 토끼 소주의 미국 진출을 이끌고 있다. 그 외에도 프로즌 요구르트 시장을 석권한 식스틴 핸들스(16 Handles), 미국인의 입맛에 맞춰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며 확장하는 목바(MokBar), 오지(Ojii), 코릴라(Korilla) 등 젊은 한국인 창업가들의 행보가 눈에 띈다.


뉴욕 소재 엑셀러레이터 프로그램에 국내 기업 참가 -
국내 스타트업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엑셀러레이터 이알에이(ERA)는 이미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소개가 되었다. (비석세스 예전 기사) 이알에이는 2016년 상반기 정규 프로그램에서 최초로 위치추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이쉐어링소프트를 선발, 투자하며 국내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을 이어갔다. 2016년 12월에는 창업진흥원의 지원에 힘입어 정규 프로그램이 아닌 ‘코리아 프로그램’을 만들어 2017년 2월까지 운영 중이다. 국내와 캐나다의 배달전문 플랫폼인 보비오스(Vovios), 팁스(TIPS) 수혜 기업으로 교육과 게임 콘텐츠, 디지털 펜 등을 제작하는 와이드밴티지, 인공지능 솔루션을 제공하는 마인즈랩 등이 엑셀러레이팅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그 외에도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이 지원한 데브 코리아(DEV Korea)를 통해 8개의 국내 기업이 한 달 동안 뉴욕에서 상주하며 해외 진출에 대한 초석을 다졌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함께한 서울-뉴욕 스타트업 행사 때에도 10개의 국내 기업이 뉴욕의 투자사들 앞에서 피칭을 했다.

친한파 미국 투자자 양성 프로젝트 - 2016년 6월, 뉴욕에서 개최된 제 3회 코리안 스타트업 서밋 - 뉴욕(Korean Startup Summit NYC)과 10월에 한국에서 개최된 크리에이티브 스타트업 코리아(Creative Startup Korea) 행사에는 미국의 다양한 벤처 캐피탈 회사들이 참가하며 한국 스타트업의 행보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향후 국내와 미국의 한국계 스타트업이 계속해서 투자를 유치하고 사업을 확장하는데 큰 교두보로 작용할 것이다.

2017년, 트럼프 정권이 들어섰다. 2016년의 미국 대선에서 압도적으로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던 실리콘밸리와 실리콘앨리(뉴욕)는 트럼프의 이민 정책과 쇄국 정책, 창업 정책 등에 대해 많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친기업 성향의 트럼프가 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규제를 완화하고 세무 인하 등 긍정적인 정책을 수립할 것으로 기대하는 이들이 있다. 물론, 테크놀로지 산업 전반에서 트럼프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혼란스러운 시국으로 인해 현 정권의 주요 정책이었던 ‘창조경제’의 소소한 성과마저 빛이 바래지 않을까 염려하는 눈치다. 정부 주도로 이루어진 다양한 창업 프로젝트와 인프라 조성에 투입된 막대한 자금의 이탈로, 창조경제의 수혜자였던 많은 스타트업들은 이제 홀로서기가 불가피하다. 미국에서도 과열된 투자의 거품이 빠지듯, 국내에서도 단순히 정부 지원책에 기대어 목숨을 연명하던 ‘그저 그런’ 기업들은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날, <블룸버그>지는 한국을 4년 연속으로 가장 혁신적인 국가로 선정해 발표했다. 앞으로 여러 시행착오를 겪게 되겠지만, 국내에 조성된 창업 생태계 인프라와 노하우를 잘 활용하고, 민간 차원의 투자 활성화와, 상생에 기초한 대기업의 인식 개선 등이 이뤄진다면, ‘혁신 국가’ 한국에서 더 많은 수의 긍정적인 해외 진출 소식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주: 칼럼 등 외부 필진의 글은 '비석세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전 후석
전후석(Joseph Juhn)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3살 때 한국에 와 유소년, 청소년기 대부분을 보냈다. 고 2 때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고 미국 행을 결정, UC San Diego 에서 영화를 전공하며 한 때는 영화감독을 꿈꿨다. 학부 졸업 이후 Syracuse 법대를 졸업하기까지, 중국, 유럽, 브라질, 남아공, 중동 등에서 여행, 인턴십, 봉사활동 등으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현재는 코트라 뉴욕 지부에서 지식재산권센터 (IP-Desk) 를 담당하며 국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들의 미국진출 시 직면할 수 있는 지재권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고민 중이다. juhn.kotr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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