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프(SAFE) 투자 –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 생태계
2월 22, 2019

지난 2015, 필자가 본지를 통해 세이프 (SAFE, Simple Agreement for Future Equity)의 국내 생태계 도입을 제안한 것을 계기로, 지분투자가 가능한 수준 이전의 극초기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투자방법의 도입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 지난 2017벤처투자촉진법이 발의되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벤처투자촉진법이 통과되면 이르면 올해부터 우리나라에서 세이프를 통한 스타트업의 투자가 가능해져 스타트업의 자금원이 더욱 다양해지는 동시에 초기투자 유치에 따르는 비용 및 시간의 절감이 가능해져 국내 생태계 발전을 위한 또 다른 촉매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우리가 세이프 도입을 기다리고 있던 시기 미국에서는 초기 투자자들 및 스타트업 파운더들로부터 세이프를 비롯한 여러 컨버터블 노트(Convertible Note, 이하 '노트') 형식의 투자 방법(Investment Vehicle)들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고, 결국 2018년 들어 세이프를 창안한 액셀러레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Y-Combinator, 이하 'YC')' 는 자신들이 고안한 세이프를 개정하기에 이른다. 이에 한국에 세이프가 도입되는데 작게나마 역할을 한 필자로써 그와 같은 논쟁은 어떤 것이었고 그에 따라 개정된 세이프는 어떤 모습이며, 마지막으로 그와 같은 개정이 국내 생태계에 주는 주안점은 어떤 것이 있을지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번 칼럼에 들어가기에 앞서, 세이프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은 필자가 국내 생태계에 세이프 도입을 제안하며 작성한 칼럼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기에 본문에서는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며, 해당 내용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께서는 해당 칼럼을 참고해 주실 것을 안내해 드린다.)

세이프를 통한 투자, 무엇이 문제였나?

이전의 칼럼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미국 생태계에서 본격적인 지분투자 이전 단계에서의 투자 유치는 거의 모든 경우 세이프(세이프는 YC에서 고안해 일반적으로 쓰이는 스탠더드 세이프(Standard SAFE)를 비롯해 각 파운더 및 투자자들에 의해 변형된 다양한 내용과 형태의 노트가 존재하나 본문에서는 이들 모두를세이프라고 통칭하기로 한다.)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세이프를 통해 투자자와 파운더 모두가 법률비용 등을 비롯한 각종 비용 및 시간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시드 단계에서 스타트업이 유치하는 투자금의 규모가 크게 증대되고 그와 같은 시드 투자의 대부분이 세이프를 통해 이루어지게 되면서 여러 의도치 않은 문제점들이 노출되고 말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세이프가 초기 투자의 주된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얼마만큼의 지분으로 전환될 것인지를 명확히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Eun5e.com이라는 스타트업이 본격적인 지분투자(Equity Financing) 를 유치하기 전에 두 번의 세이프를 통한 시드 투자를 받았고, 세이프 투자 유치 후 지분투자 이전까지 총 1000만 주의 주식을 발행해 그중 10%를 옵션풀로 설정하였다고 하자.

  • SAFE I: 200 달러 (Pre-money) Valuation Cap / 10 달러 투자
  • SAFE II: 300 달러 (Pre-money) Valuation Cap / 20 달러 투자

그림 1. Eun5e.com 지분투자 유치 이전의 Cap Table

이 두 종류의 세이프는 지분투자 유치 시 어떻게 전환될까?

Eun5e.com에 투자하려는 Series A 투자자가 있고, 이 투자자는 800만 달러 프리머니 밸류에이션에 200만 달러를 투자해 20%의 지분을 획득하기를 원한다고 가정해 보자.

기존의 세이프는 프리머니를 기준으로 하며, 경우와 같이 지분투자의 프리머니(Company Cap, '컴퍼니 캡') 밸류에이션캡보다 높으므로 [SAFE Price = (밸류에이션캡) / (컴퍼니 )] 기준에 따라 SAFE I SAFE II 각기 주당 $0.25 $0.375 가격에 전환될 것이다. 따라서 가지 세이프를 통해 발행되는 세이프 우선주(SAFE Preferred Stock) 가격은 다음과 같이 정해지게 것이다.

그림 2. Pre-money SAFE 전환 클래스 SAFE Preferred Stock 가격 전환

Series A 투자는 위 SAFE Price에 따라 세이프가 우선주로 전환(미국의 경우 대부분 우선주)되고 난 후 집행될 것이며, 이 경우 Eun5e.com은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은 형태의 주주명부(Cap Table)가 완성될 것이다.

그림 3. Series A 투자유치 Eun5e.com Cap Table (Pre-money SAFE)

그러나 만약 Series A 투자자가 800만 달러 프리머니가 아니라 400만 달러 프리머니에 100만 달러를 투자하는 경우라면, 이때 SAFE Price는 아래와 같이 변화하며, 따라서 세이프 투자자들은 하여금 SAFE Price가 아니라 보다 우호적인 Series A Price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이때 그에 따라 Eun5e.com의 최종 주주명부는 아래 그림 5와 같이 변화하게 될 것이다.

그림 4. 400 달러 프리머니 SAFE Price Series A Price 클래스별 주당 가격 비교표

그림 5. 400 달러 프리머니 투자유치 완료 Eun5e.com Cap Table

이처럼 상대적으로 달라지는 SAFE의 전환가격 및 그에 따른 지분비율 변동은 세이프를 통한 파운더들 및 세이프 투자자들로 하여금 해당 투자에 대한 지분가치 계산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 더 나아가 본 예에서는 두 가지 세이프를 통한 투자를 예로 들었으나, 한 곳의 스타트업이 더 많은 수의 세이프 투자를 유치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는 미국 생태계의 상황에서 각각의 세이프 투자가 함의하는 지분율의 예측은 더욱 힘들어지며, 이는 결국 파운드들로 하여금 원하지 않는 만큼의 주식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양도해 버리게 만드는 결과를 빈번하게 만들어 내게 된다. 아울러 위 그림 5 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세이프 전환 주식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지분투자자의 지분보유율이 자칫 잘못하면 소기에 목표한 20%가 아니라 19.92% 혹은 그 이하로도 얼마든지 감소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증가하는 세이프 투자에 따른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 외에도, 그림 3의 예로 돌아가 보면 SAFE I II의 투자자 보유 지분 평가금액은 각기 약 30만 달러와 40만 달러로 증가해 투자원금 대비 3x 2x로 증대되었는데 이때 발생하는 청산우선권(Liquidation Preference) 문제나, 지분투자의 프리머니가 세이프의 밸류에이션캡보다 낮은 경우 발생하는 래칫(Rachet) 문제 등 역시 세이프가 동반할 수 있는 문제점들로 지적되어 왔다. (이는 파운더들보다는 투자자들에게 더 큰 이슈가 될 수 있는 내용이므로 본문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으나 자세한 정보는 Mark Suster 블로그,  Nikhil Kapur 블로그를 참조할 수 있다)

POST-money SAFE, 개정된 세이프

이와 같은 문제점에 YC2018 9월, 앞으로 기존의 프리머니 기준이 아닌 포스트머니(Post-money) 기준의 세이프를 도입할 것을 밝혔다. (관련기사: TechCrunch)

새로운 포스트머니 기준의 세이프는 이후의 지분투자가 업라운드(Up-round) 인 경우 세이프 투자자들에게 발행될 지분의 상한선을 명확히 제시한다는 점에서 전환가격의 하한선만을 정의했던 기존의 프리머니 기준의 세이프와 구분된다.

Eun5e.com의 경우로 돌아가 그림 2의 경우와 동일하게 Eun5e.com이 다음의 두 가지 세이프를 통해 총 3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하고, 그 이후 800만 달러의 프리머니에 200만 달러 규모의 Series A를 진행하는 경우에 포스트머니 세이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자.

그림 6. Eun5e.com 포스트머니 세이프 투자 가정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포스트머니 세이프는 투자금액이 전환되는 포스트머니 가치를 명확히 제시함으로써 업라운드 진행 시 전환될 지분율을 투명하게 제시한다. 그리고 이때 투자금과 포스트머니 가치에 따라 각 SAFE I SAFE II의 투자자들에게는 직후 지분투자 유치 시 각기 5%씩의 지분이 발행되게 되며 이를 주주 명부로 옮기면 다음과 같게 된다.

그림 7. 포스트머니 세이프 전환 Eun5e.com Cap Table (지분투자 집행 직전)

그리고 아래 그림 8은 그림 7의 주주명부를 기준으로 지분투자가 집행되고 난 후의 최종 주주명부의 예시이며, 그를 통해 SAFE 전환 이후 발생한 지분투자의 영향으로 SAFE 투자자들의 지분이 각기 4%씩으로 희석됨을 알 수 있다.

그림 8. 지분투자 집행 Eun5e.com 최종 Cap Table

아울러 이번 포스트머니 세이프는 기존에는 계약서 안에 포함되어 있던 프로라타(Pro-rata) 조항을 사이드레터(Side Letter)로 돌리는 등 기존의 세이프가 함의하는 모호성을 최소화함으로써 파운더 프렌들리(Founder-friendly)하게 개정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포스트머니 세이프와 우리 생태계

필자는 이번에 YC가 개정해 선보인 포스트머니 세이프가 기존의 그것이 내재하고 있던 문제점들에 대한 반응이라기보다 변화하는 투자상황에 대한 적응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살펴본 문제들이 사실 세이프 자체가 가진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이 시장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또 그에 따라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각종 규정들을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했음에서 기인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울러 YC와 같이 매년 많은 수의 스타트업에 일정한 조건으로 투자하고 있는 액셀러레이터라면 세이프와 같이 표준화된 계약 양식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세이프를 대할 때 우리의 관점은 기존의 세이프가 가졌던 문제가 아니라 그와 같은 개정을 유도한 미국 생태계 환경의 변화가 우리의 그것과 어떻게 부합할 것이며, 더 나아가 YC의 대응을 우리의 생태계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로 옮겨지는 것이 타당하다.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바와 같이 기존의 세이프에서 발견된 문제들은 그것의 사용이 기본적으로 투자자와 스타트업의 이름과 투자금액, 그리고 서명만 넣으면 될 정도로 너무도 간단한 나머지 초기기업 투자의 규범 정도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게 되었음에서 기인한다. 실제로도 미국의 스타트업 중 본격적인 지분투자 이전에 이미 여러 개의 세이프를 발행해 시드를 마련한 기업을 만나는 것이 몇 년 전부터는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를 거꾸로 생각해 보면 표준화된 간단한 투자계약의 도입이 하이 레솔루션 파이낸싱(High Resolution Financing, 이하 ‘HRF’, 참고자료) 라고도 불리는, 본격적인 프라이스드 라운드(Priced Round) 이전까지 세이프 등을 활용, 복수의 투자자들로부터 투자를 받아 부트스트랩(Bootstrap) 을 이어가는 형태의 유연한 시드 단계에서의 자금 조달을 가능하게 해 주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것은 이를테면 액셀러레이터를 졸업한 스타트업이 다음 단계로 반드시 프라이스드 라운드를 하지 않아도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직 투자자로부터 우호적인 내용의 협상을 이끌어낼 단계에 이르지 못한 스타트업이라면 불리한 조건으로 투자를 유치하거나 데스밸리에서 사멸하는 대신 다른 초기 투자자들에게 노트를 발행함으로써 HRF 등의 형태로 보다 자유롭게 부트스트래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 살펴본 포스트머니 세이프 역시 그것이 상당 부분 프라이스드 라운드와 비슷한 성격을 가지게 되었으며 다운라운드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지분이 양도된다는 점 그리고 청산우선권이나 래칫 등의 노트류의 투자가 내재하는 쟁점은 아직 남아 있다는 점에서 완벽한 것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YC는 이번에 개정된 세이프를 통해 그것이 지분투자 단계 이전의 기업들에게는 매우 효율적인 투자 형태이며, 그럼에도 발생할 수 있는 불합리성은 시장 내에서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자정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아울러 지금까지 크게 정책적 지원 안에서 발전해온 온 우리 생태계가 지금까지의 성장을 딛고 다음 단계로 뻗어 나아가기 위해서는 HRF을 비롯해 파운더들에게 보다 우호적이고 보다 자유로운 부트스트랩을 가능하게 하는 토양이 조성될 필요가 있음을 생태계 안에 속한 사람이라면 모두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이에 작년에 있었던 세이프의 개정을 살펴본 오늘의 칼럼이 세이프를 필두로 유연하고 효율적인 투자 형태를 지속해서 국내 생태계에 도입, 그를 통해 스타트업에게 보다 훌륭한 토양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앞으로 시장주도적인 생태계 성장모델로 진화해 나아가는데 필수적일 것임을 생태계 내의 여러분들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를 바란다.


DISCLAIMER: 필자는 세이프 도입 제안 후 그 타당성 연구 및 도입을 위한 여러 자문을 수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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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se Lee is a Co-founder and a Special Partner at ELEVEN:ZULU CAPITAL, a Los-Angeles-based venture capital firm, which invests in early stage companies. Prior to his career as an investor, Lee was a management/strategy consultant at a firm he founded and led multiple cross-border projects in the industries such as ICT, Service, Automotive and FMCG. He is also a visiting professor of business strategy and entrepreneurship at Yonsei University and Yonsei School of Business MBA in Seoul, Korea, and an advisor to a number of Korean Government agencies and startups.이은세는 미국 Los Angeles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VC인 ELEVEN:ZULU CAPITAL의 공동창업자이자 Special Partner이다. 이전에는 자신이 창업한 경영/전략 컨설팅펌인 EICG에서 경영 및 전략 컨설턴트로 자동차, 교육, 소비재, 서비스, IT/ICT 등의 다양한 산업에서 성공적인 프로젝트들을 지휘하였다. 실제 비즈니스 경험에 바탕을 둔 강연자로 선별된 자리에서 자신의 전략프레임워크인 The Fan-oriented Strategy에 대한 내용을 대중들과 공유하고 있고, 지난해까지 연세대학교 및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MBA에서 기업가적 시각 위에서의 전략 수립에 관한 내용을 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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