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관람가 10. <쇼생크 탈출> 파고, 파고, 파자
4월 2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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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적응력은 축복일 수도, 혹은 저주일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적응력이란 게 새삼 놀라울 때 있지 않나요. 난생처음 외국에 나가보면 모든 게 낯설고 두렵습니다. 그런데 닷새만 지나면 어느새 그 공간에 적응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지금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스마트폰도 생각해보면 국내에 들어온 지 기껏해야 5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근데 벌써 적응을 한참 넘어 배터리가 빨간색이면 괴로운 중독증세까지 왔네요.

적응력은 인류의 생존비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날카로운 발톱도 강인한 턱도 없는 우리가 200만 년을 버텨낸 비결은 환경에 대한 적응력에 있습니다. 언제나 주변 환경을 감지하고 적응해 주어진 자원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생존해왔죠.

그러나 적응력은 우리를 배신합니다.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원인이기도 되거든요. 익숙함이 주는 안락을 깨고 나가는 일은 두렵죠. 그게 설혹 반복된 체념이나 현실타협의 결과라는 걸 자신도 알고 있다 하더라도요. "어차피 안 될 거야", "에이 뭐 다 거기서 거기지", 적응은 이런 말을 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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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쇼생크 탈출>을 다시 봤는데요. 스타트업을 하기 전에 봤던 감상과 스타트업을 하는 지금의 감상이 달랐습니다. 예전에는 그저 자유를 갈망한 인간의 위대한 의지를 그린 영화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다시 본 <쇼생크 탈출>은 현실에 순응한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고집스레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읽혔습니다. 감옥이라는 공간 안에서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일상에 비춰볼 수 있는 우화였습니다.

영화에서는 감옥에 적응한 사람들이 모든 것에 순응합니다. 온갖 부조리와 교도관의 지독한 폭행마저도 당연하다는 듯 감내하고 그저 내가 희생자가 되지 않기만을 바랍니다. 무언가 시도해보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아니 애초에 자신들이 뭔가 이룰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 자체를 못하는 것처럼 보이네요. 교도소 담을 바라보며 레드(모건 프리먼)는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엔 저 벽을 원망하지. 하지만 시간이 가면 저 벽에 기대게 되고, 나중에는 의지하게 돼. 그러다 결국엔 삶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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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앤디(팀 로빈스)만은 다릅니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습니다. 감옥 안에서도 끊임없이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시도합니다. 첫 시도는 세금 문제로 불평하던 교도관의 세금처리를 도와준 것이었습니다. 보상으로 동료들이 시원한 맥주를 마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죠. 앤디는 그늘에 앉아 그 감동적인 맥주 한 병을 즐기는 동료들을 그저 흐뭇하게 바라보기만 합니다. 동료가 맥주병을 가져다주자 “술은 끊었다”며 거절하죠. 앤디는 처음부터 그저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부기관에 매일같이 편지를 보내 도서관 마련에 필요한 기금을 지원받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 꼬박 8년 동안 매주 편지를 써보내죠. 그 대가로 쇼생크엔 미국에서 가장 좋은 교도소 도서관이 지어졌습니다. 책을 읽을 수 있게 됐으며 레코드판으로 음악을 들을 수도 있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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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뭐니해도 클라이막스는 탈출 장면이죠. 앤디가 하수구를 빠져나와 내리는 비를 두 팔로 반기는 장면은 다시 봐도 뭉클한 명장면이었습니다. 마침내 앤디는 벽을 뚫고 세상으로 나옵니다.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는 걸 깨닫고 19년간 매일 밤 공예용 망치로 조금씩 벽을 파온 것입니다.

그동안 자신의 세무지식을 악용해 부정하게 축적한 교도소장의 돈도 몰래 챙겨두었습니다. 일종의 퇴직금이랄까요. 자신은 온갖 더러운 짓 다 하면서 성경 말씀 운운하던 교도소장에게 시원하게 한 방 먹인 것이죠. 앤디가 성경 속을 파내 망치를 숨겨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교도소장 앞에 이런 메시지가 놓였습니다.

“당신 말이 맞았다. 성경 속에 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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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를 숨긴 페이지는 히브리 노예들이 이집트를 탈출하는 내용인 ‘출애굽기’입니다. ‘엑소더스(Exodus)’라 쓰여있는 페이지가 눈에 띄네요.

많은 사람 사이에서 앤디만이 특별한 존재일 수 있던 이유는 뭐였을까요. 저는 딱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끊임없이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시도했기 때문입니다. 맥주도, 도서관도 그리고 탈출도 모두 그 최초의 시도가 만들어낸 결과들입니다. 현실과 타협해서 "에이 아마 안될 거야" 생각하며 처음부터 아무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면 삶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을 게 분명합니다.

앤디가 보여준 이 마음가짐은 많은 스타트업들을 이 바닥으로 뛰어들게 만든 이유와도 닮았습니다. 현실에 순응해 떠밀려내려 가는 대신 차라리 다소 무모해 보이는 희망을 품기. 내가 믿는 가치를 이루기 위해 될 때까지 시도하기. 이 두 가지를 믿고 한번 해보는 일이 스타트업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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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말처럼 우리가 가진 게 정말 흙수저뿐이라면, 그 수저로 매일 파고, 파고, 또 파보죠. 앤디가 작은 공예용 망치 하나로 끈질기게 벽을 파고 탈출한 것처럼요. 쓸데없이 돌아다니지 않고 그렇게 묵묵히 파고, 파고, 또 파다 보면 결국 우리도 더 좋은 삶의 단계로 탈출(Exit)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이미지 출처: Movie Images © Castle Rock Entertainment

slogup
김상천 coo@slogup.com 슬로그업의 영화 좋아하는 마케터. 창업분야 베스트셀러 '스타트업하고 앉아있네'의 저자입니다. 홈·오피스 설치/관리 플랫폼 '쓱싹'을 운영하고 앉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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