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관람가 14. ※주의: 이렇게 하면 망합니다! <위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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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에 있는 친구가 <위플래쉬>를 본 후 흥분해서 차오르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친구는 '열정', '몰입', '극한' 같은 단어를 말하며 내일부터 우리도 더 열심히 노오력 해야겠다고 말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영화를 곱씹어보면서, 저는 괜히 친구가 걱정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위플래쉬>는 영화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작품이죠. 그러나 이 영화가 보여준 애티튜드를 현실로 가져오려는 일은 말리고 싶습니다. 플래처 교수가 보여준 건 터프한 리더십도, 혹독한 교수법도 아니었습니다. 플래처는 학생들을 상대로 ‘자기만의 예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플래처에 대응한 앤드류의 방식도, 밴드 구성원들의 태도도 스타트업이 배울만한 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하면 망합니다.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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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안 되는 자기중심적 태도의 플래처

= 팀원들을 이해시킬 수 없는 혼자만의 경영철학은 그냥 꼰대짓일 뿐이다

플래처에겐 자기만의 신념이 있죠. ‘버드 같은 천재를 길러내기 위해선 적당한 칭찬이 아니라 끝으로 모는 혹독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신념을 품고 플래처는 악마를 자처합니다. 학생들에게 폭언하고, 물건을 집어 던지고, 뭐라도 미운 구석이 보이면 쫓아내 버리기까지 하죠. 그러면서도 그 신념을 면죄부 삼으며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플래처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내가 셰이퍼에서 뭘 하려 했는지 몰라. 난 지휘를 하려던 게 아니야. 박자에 맞춰서 팔 흔드는 건 어떤 병신도 할 수 있어. 난 사람들이 ‘한계’를 뛰어넘게 하고 싶었어. 그리고 난 그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봐. 그렇지 않으면 우린 제2의 루이 암스트롱이나 제2의 찰리 파커를 영영 볼 수 없을 거야.

영어에서 ‘참 잘했어(Good job)’ 만큼 해로운 말은 없어.”

그러나 안타깝게도 플래처의 방식은 명백한 실패입니다. 그의 ‘자칭’ 애제자는 자살하죠. 앤드류와 경쟁하던 다른 드러머도 음악을 포기했다는 말이 대사에 나옵니다. 앤드류의 삶도 붕괴 직전까지 갔습니다. 결국, 플래처 때문에 학교도 때려치우고 음악도 포기했죠. 후반부에 앤드류가 다시 일어나 천재성이 폭발한 게, 정말 플래처의 지도 때문이었을까요? 이건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앤드류가 스스로 깨고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플래처는 자신의 팀원들을 상대로 아무도 이해 못 할 자기만의 예술을 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이걸 리더십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꼰대짓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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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을 향해 질주하는 앤드류

= 잠깐 타오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오랜 기간 꾸준히 열심히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스타트업의 일상은 언론이 얘기하는 것만큼 실은 그렇게 반짝반짝한 일만은 아니라는 걸 누구나 느끼는 순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하루는 보람차지만 늘 고되고, 간혹 반짝일 때도 대책 없이 반짝이는 게 이 일의 속성일 것입니다. 백 미터 달리기처럼 전력질주 한 번으로 끝장을 볼 수 있는 일이면 얼마나 쉬웠을까요. 하지만 스타트업을 하는 건 실은 고되고 불확실한 일상을 오랜 기간 버텨내는 마라톤이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앤드류의 태도 역시 스타트업이 배울만한 전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앤드류는 증오를 동력으로 질주하는 인물이죠. 연습 도중 피 흐르는 손을 얼음물에 식히는 씬을 기점으로 앤드류는 다른 인격으로 변화합니다. 카메라는 투명한 얼음물이 핏빛으로 물드는 모습을 클로즈업하며 앤드류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암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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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런 게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지속가능성입니다. 잠깐 타고 꺼질 열정이 아니라, 한정된 자원과 잦은 실패 속에서도 묵묵히 할 일을 하는 지구력이 필요합니다. 아시다시피요.

아드레날린이 솟구칠 때 잠깐 타오르는 건 누구든 할 수 있습니다. 전력질주를 하면서도 열정을 지속할 수 있는 비범한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그런 사람도 보긴 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완급조절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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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끈함이라곤 없는 스튜디오 밴드

= 상명하복에 익숙하고 수동적인, 끈끈함은 없고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만 되풀이되는, ‘최악의 기업문화’

스튜디오 밴드는 결국 플래처라는 잘난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집단일 뿐입니다. 밴드 구성원 개개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독재자의 말에 복종하고 수족처럼 움직이는 악기들이 있을 뿐이죠.

팀원들 간의 유대감 역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상명하복에 길든 이들은 나를 도구로 전락시키는 수동적 분위기를 당연히 받아들이죠. 그리고 그 안에서 서로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만 되풀이합니다. 이 밴드를 기업이라고 친다면, 그야말로 최악의 기업문화가 아닐 수 없겠습니다.

역시 영화는 영화일 뿐인 것 같습니다.
DON’T TRY THIS AT YOUR OFFICE!

이미지 출처: © Sony Pictures Classics

slogup
김상천 coo@slogup.com 슬로그업의 영화 좋아하는 마케터. 창업분야 베스트셀러 '스타트업하고 앉아있네'의 저자입니다. 홈·오피스 설치/관리 플랫폼 '쓱싹'을 운영하고 앉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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