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관람가 28. <인사이드 아웃> 기쁨이, 그 지독한 악역에 대한 뒷담화
9월 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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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관람가의 소재가 축나고 있기 때문일까요. 언제부턴가 영화에 팀으로 일하는 이들만 나오면 저들도 꼭 스타트업처럼 보입니다. 사람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전엔 <주토피아>의 동물들을 스타트업 팀원 포지션별로 비춰보기도 했는데요. 이윽고 동물을 넘어 <인사이드 아웃>의 감정 캐릭터들 이야기까지 스타트업 팀원들이 일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기쁨, 슬픔, 분노, 까칠함, 소심함. 이 다섯 팀원은 11살 소녀 라일리의 머릿속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유기체적인 한 팀으로서 라일리의 감정을 조절하고, 그런 감정의 기억들을 구슬에 넣어 기억저장소에 보내는 일이 주요 업무입니다.

이들이 스타트업이라면 그중 대표는 기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늘 중심에서 팀원들의 사기를 북돋으려 하고 업무를 조율합니다. 여느 스타트업 대표들이 그렇듯 무한긍정의 소유자이며, 열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칩니다. 언제든 샴페인을 딸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이렇게 활기차고 밝은 기쁨이는 좋은 점으로만 가득 찬 것처럼 보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지독한 악역은 사실 기쁨이일 수 있습니다. 자신은 늘 에너지 넘치고 활기차니까 팀원들의 어려움이나 부정적인 감정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 때문입니다. 자기 팀원들의 입장에 대한 공감 능력이나 이해심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특히나 슬픔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답답해하죠.

거의 모든 관객이 좋게만 본 기쁨이.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실은 이 여자가 얼마나 악독한 리더였는지 돌아볼 수 있습니다. 가장 서늘한 장면은 업무 시작 전에 슬픔이를 구석으로 따로 불러 괴롭히는 장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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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도 보람차게 일을 시작해보려는 하루의 시작, 기쁨이는 사고가 잦은 슬픔이를 구석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곤 슬픔이 주위로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더니 대뜸 거기서 하루종일 나오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게 팀을 위해서 니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일이야”라고 겁나 활짝 웃으면서 말하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슬픔이의 충격먹은 표정이 잊히지 않습니다. 아니 일이 좀 안 되는 시기도 있는 거지 꼭 출근하자마자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나요? 모르긴 몰라도 슬픔이는 그날 저녁 포장마차에서 오돌뼈와 소주를 시켜놓고 한참을 앉아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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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이 아닙니다. 모든 일에 있어 자신이 제일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기쁨이는 그 무엇이든, 어떤 상황이든 자기 생각대로 가려고 고집을 부립니다. 까칠이나 버럭이가 조종판에 손을 대려고 하면 “노(No)”를 외치며 낚아채 버리죠. "놉, 아이 갓 디스!(Nope, I got this!)"

그러다 핵심기억이 저장된 구슬이 슬픔이의 색으로 나오니까 급기야는 버리려고 합니다. 자기 색이 나와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는 것이죠. 마치 동료 개발자가 밤새 완성한 코드를 합당한 이유나 충분한 설명도 없이 무시하며 지워버리는 장면 같았습니다. 돈 워리, 아이 갓 디스(Don't worry, I got this). 영화 초반부 내내 그는 그렇게 말했고, 항상 자신이 나서야 일을 해결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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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단이 납니다. 말리는 슬픔이를 떨쳐내며 구슬이 전송로에 들어가는 걸 막으려다가 둘은 그대로 기계에 빨려 들어가 버렸습니다. 기쁨과 슬픔이 사라진 감정 컨트롤 본부엔 분노, 까칠함, 소심함만 남습니다.

당연히 얼마 못 가 엉망이 되어버립니다. 라일리 내면의 섬들은 연쇄 도산하는 계열사처럼 차례차례 붕괴합니다. 심성 곱던 11세 소녀 라일리는 저녁 식탁에서 욕을 하고, 급기야는 가출까지 합니다. 회사로 치면 건실하던 기업이 부도 직전까지 간 상황이겠습니다. 이 모든 게 안하무인의 독선적인 리더, 기쁨이의 오만이 초래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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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동안 기쁨이는 처음으로 감정 컨트롤 본부를 떠나 기억저장소부터 기억폐기장까지 곳곳을 누비며 경험을 쌓습니다. 시야를 틔워준 이때 경험을 통해 기쁨이는 마침내 자신의 독선을 깨닫게 됩니다.

여정 중에 슬픔이와 대화하던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슬픔이가 슬프고 아픈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는 경험들을, 자신은 모두 아주 신나고 재밌었던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는 걸 기쁨이는 깨닫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공감 능력이 부족했고, 다른 팀원의 입장에 무관심했는지 느끼게 됩니다.

결정적인 영향을 준 건 누가 뭐래도 빙봉이의 숭고한 희생을 목격했기 때문이겠습니다. 빙봉은… 아 잠깐 눈물 좀 닦겠습니다. 빙봉은… 아 할 얘기가 있는데 차마 빙봉이 얘기는 더이상 못하겠네요. 생략하겠습니다 흑흑. 달에는 못 간다고 전해라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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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이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고, 기쁨이는 과거의 독선이 잘못됐다는 걸 이제 알았습니다. 오만함을 뉘우치고 팀원들 입장을 이해하고자 노력합니다. 마침내 슬픔이를 믿고 그에게 일을 맡기기도 하죠. 기쁨이가 달라진 시점, 바로 이때부터 회사가 잘 풀립니다. 무너진 계열사들도 하나둘 다시 일어서고, 감정 컨트롤 본부도 승승장구하며 사무실 및 장비도 업그레이드됩니다.

과거 오만하던 기쁨이의 시선에서 본 팀원은 모두 자신보다 능력이 떨어지고 결점 많은 인물이었습니다. 유심히 보지 않았던 탓에 결점 뒤에 있는 저마다의 고유한 장점과 능력을 보지 못했던 것이죠.

소심이는 라일리가 위험한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신중하게 만드는 귀중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버럭이는 소신과 정의로움을 형성해 줄 수 있습니다. 까칠이는 라일리의 안목을 키워줍니다. 어쩌면 이다음에 좋은 남자를 만나게 해줄지도 모릅니다. 또 슬픔이에겐 치유력이 있습니다. 털고 일어나 다시 살아갈 수 있게 해주죠. 모든 팀원이 다 팀 내에서 저마다의 역할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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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다섯 감정 모두가 영화 초반부의 기쁨이처럼 서로 자신만이 정답이라고 고집을 부렸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팀원들의 불협화음 탓에 라일리의 삶은 정신분열증으로 귀결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스타트업도 팀원들 모두가 서로 각자의 장점을 믿고 또 인정해줄 때, 그래서 하나의 유기체로서 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강력해지는 것은 아닐까요? (훈훈)

이미지 출처: Disney/Pixar

slogup
김상천 coo@slogup.com 슬로그업의 영화 좋아하는 마케터. 창업분야 베스트셀러 '스타트업하고 앉아있네'의 저자입니다. 홈·오피스 설치/관리 플랫폼 '쓱싹'을 운영하고 앉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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