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관람가 32. <디스트릭트 9> 스타트업 아이템 좀 뺏지 마라
10월 7, 2016

아니, 페이크 다큐 형태의 외계인 영화라니.

2009년 작 <디스트릭트 9>은 형식부터 내용까지 모든 게 새롭습니다. “외계인 나오는 SF영화는 어떠해야 한다”는 문법을 전혀 따르지 않죠. 닐 블롬캠프 감독은 스스로를 믿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아쉽게도 이후 <엘리시움>과 <채피>라는 망작 2연타를 치며 팬들을 답답하게 하긴 했지만, 이 영화를 선보였을 당시의 블롬캠프는 그야말로 찬란했습니다.

독립영화를 찍는 건 스타트업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전부터 해왔는데요. 배고프게 찍는 과정이나 연출·시나리오·촬영 등 사람을 모아 팀 빌딩을 하는 방식, 또 좋은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으면 투자를 받게 되는 점 등이 모두 닮은 것 같아서요.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잘 만든 스타트업의 제품 같은 느낌입니다. <디스트릭트 9>엔 유명한 감독도, 비싼 배우도 없습니다. 오로지 참신한 아이디어와 완성도 높은 결과물로써 대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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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신한 설정들은 영화 전반에 녹아있습니다. <디스트릭트 9>의 외계인들은 지구를 침공하지 않았습니다. 백악관에 광선을 쏘지도, 에펠탑을 넘어뜨리지도 않습니다. 이들이 지구에 온 연유는 우주선이 고장 났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외계인의 존재는, 비유하자면 뗏목을 타고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다 떠밀려온 난민과 다름없습니다. 그렇게 남아공 상공에 외계인이 불시착한 지 어느덧 28년이 흐른 시점에서 영화는 시작됩니다.

침략한 외계인이 없으므로, 이에 맞서 싸울 수 역시 없겠죠. 사랑하는 연인의 눈물 뒤로 전투기에 오르는 군인도, 마침내 외계 전함을 터뜨렸다는 소식에 환호하는 워싱턴도 이 영화엔 없습니다. 그럼 인간은 무얼 하느냐구요? 인간은 외계인을 통제합니다. 그리고는 아마도 권력의 오랜 습관으로써, 착취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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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관리국은 외계인들이 판잣집을 짓고 사는 지역인 ‘디스트릭트 9’을 강제 철거하기로 합니다. 그리곤 도심에서 저 멀리 떨어진 외지에 협소하기 그지없는 수용소를 짓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관리국 직원인 마커스의 업무가 바로 이 디스트릭트9을 돌며 외계인들에게 ‘퇴거 및 강제이주 동의서’에 서명을 받아오는 일입니다. 마커스는 이 업무에 아주 충실히 임합니다. 이번 일만 잘 마무리하면 승진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싸인하지 않으려는 외계인들을 감언이설로 유혹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고양이캔 몇 개를 던져주며 회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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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반전이 생깁니다. 그동안 작동하지 않는 줄로만 알았던 외계 무기의 사용법을 찾게 된 것이죠. 비밀은 외계인 DNA에 있었습니다. 외계 무기는 오직 그들의 손에서만 작동되는 것이었습니다. 마커스는 사고로 외계 물질에 노출되며 우연히 외계인 DNA를 갖게 됩니다. 급기야는 한쪽 팔이 흉측한 외계인 팔로 변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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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알아챈 관리국은 순식간에 태도를 바꿉니다. 물론 병원에 보내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그보다 마커스를 붙잡아 온갖 테스트를 하고 메스를 들이댑니다. 우선은 마커스의 팔에서 무기가 발사되는지 확인합니다. 발사되는 무기로 무기의 원래 주인인 외계인을 죽일 수 있는지도 테스트합니다. 외계 무기들로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자, 바로 눈에 불을 켜고 약자를 착취하기 시작하는 것이죠.

이때부터 영화의 몰입도가 올라갑니다.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더 긴장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아…. 입이 근질근질하지만, 영화를 아직 못 보신 분들을 위해서 이만 말을 아끼겠습니다. 만나기 어려운 좋은 영화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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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블롬캠프 감독이 남아공이라는 장소를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감독은 이 영화에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디스트릭트9이라는 설정 역시 과거 흑인들이 모여 살던 케이프타운의 ‘디스트릭트6’를 백인 전용지역으로 선포하며 강제이주시킨 역사를 풍자한 것이죠.

이런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가 담겨있어서 그런 걸까요. 제 눈엔 이 영화가 스타트업의 아이템을 빼앗으려는 권력집단의 모습으로 읽히기도 했습니다. 감언이설로 회유해 정보를 캐내고, 온갖 핑계를 대며 스타트업의 아이템을 빼앗는 권력자들의 행태를 가까이서 보면 꼭 이렇게 추한 모습이지 않을까요.

권력집단의 눈으로 본 스타트업은 외계인 같을 수 있습니다. 난데없이 나타나서는 업무 체계나 복장도 허술하고, 무엇보다 헝그리해보이니까요. 마치 영화 속 외계인의 모습처럼 만만해 보일 수도 있겠죠. 그래서 이 외계인들이 잘되는 걸 지켜보다 보면 “저런 체계 없는 애들도 성공하는 아이템이니까, 인프라도 빵빵한 우리가 저걸 하면 훨씬 잘될 게 분명하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그러면 승진도 하고요.

그러니 빼앗습니다. 감언이설로 유혹하며, 참치통조림을 몇 개를 던져주며 그렇게요. 이 헝그리하고 별거 없어 보이는 외계인들이 아이템만은 참 좋으니까요. 그렇게 외계 사진 앱과, 외계 번역 앱과, 외계 소셜앱들을 훔쳐갑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이게 발사가 안 되네요. 영화 속에서 외계인들 무기가 그러했듯이, 이 외계 아이템들은 스타트업이라는 외계인들의 손에서만 발사되는 거였네요.

권력자 여러분, 안타깝습니다.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스타트업 아이템을 빼앗으실 때는 생각보다 상당한 애로사항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물론 승진도 못 할 수 있고요. 아님 마커스처럼 팽당할 수도 물론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외계인 아이템은 그냥 외계인이 발사하게 놔두면 어떨까요?

영화 이미지 출처: Tri-Star Pictures,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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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천 coo@slogup.com 슬로그업의 영화 좋아하는 마케터. 창업분야 베스트셀러 '스타트업하고 앉아있네'의 저자입니다. 홈·오피스 설치/관리 플랫폼 '쓱싹'을 운영하고 앉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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