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생긴 일 #1] 후붓, 신들의 섬에 자리한 협업 공간 이야기
8월 20, 2014

발리는 꽤 화제가 됐던 드라마 탓도 있는지라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봤음직 한 곳이고, 또 ‘신들의 섬’이라고도 불리며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의 만 팔천 개가 넘는 섬 중 하나인 발리가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는 이유로는 발리 섬만의 독특한 문화와 전통, 그리고 수준 높은 예술 작품들이 모여 만들어낸 발리만의 독창적인 분위기를 빼놓을 수 없다. 사람들의 삶의 질과 일하는 방식에 대한 생각이 변해감에 따라 발리의 매력에 끌린 디지털 노마드들이 속속들이 모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시작은 The Fetch Blog의 기사 "Work-life haven: why entrepreneurs and digital nomads are settling in Bali(왜 기업가와 디지털 노마드들이 발리에 정착하는가?)"였다(필자 블로그 전문 번역 보기). 이 기사에 등장하는 스타트업 커뮤니티들을 만날 기회만 기다리고 있던 차에 최근 다시 발리를 찾게 되었고, 발리 스타트업 커뮤니티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사람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번 ‘발리에서 생긴 일’ 첫 시리즈에서는 발리에서 가장 처음 문을 열고 각지에서 모여드는 디지털 노마드들의 허브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협업 공간, ‘후붓(Hubud)’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원숭이 숲으로 오세요

‘원숭이숲으로 오세요, 바로 후붓이 보일 거에요’

후붓의 매니저, 시시(Sisie)로부터 받은 메일에 나온 대로 후붓을 찾아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발리로 들어오는 관문인 덴파사르 공항이 있는 쿠타(Kuta)에서 북쪽으로 약 35km 거리에 있는 예술마을 우붓(Ubud), 그중에서도 600마리가 넘는 원숭이가 모여 사는 원숭이 숲 바로 옆에서 후붓 간판을 달고 있는 2층 건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나무로 지어진 건물 앞에 펼쳐진 잔디밭에는 커다란 빈백들이 놓여 있었고, 입구에 자리한 유기농 카페 뒤로는 ‘라이스 테라스(Rice Terrace)로 불리는, 우붓의 명물 중 하나인 새파란 논이 펼쳐져 있었다. 사람들은 맨발로 마당과 카페, 핫데스크를 오가며 인사를 나누고 1층의 대형 미팅룸에서는 열린 에너지(Free Energy)를 주제로 세미나가 한참 진행 중이었다.

DSC07116.JPG▲입구에서 멤버들을 맡는 후붓 호스트들

hubud_201408.jpg▲후붓 전경

후붓의 시작

후붓의 창업 멤버이자 무려 ‘Head of Awesomeness’라는 공식 직함을 가지고 있는 스티브 먼로(Steve Munroe)는 십 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유엔에서 근무했다. 세계 각지를 다니며 유엔을 위해 일을 하던 그는 2009년 발리가 가진 독특한 분위기에 매료되어 일을 그만두고 가족들과 함께 이곳에 정착하기에 이른다. 자신처럼 전 세계 각지에서 발리로 모여드는 사람들을 지켜보던 그는 이 사람들을 한데 모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고, 또 다른 공동 창업자인 피터 월(Peter Wall), 존 알더슨(John Alderson)을 만나 2012년 첫 미팅을 가졌다.

DSC07114.JPG▲리시아나 무시아, 시시(Risyiana Muthia, Sisie), 커뮤니케이션 매니저(좌) / 스티브 먼로, 공동 창업자(우)

그들은 팝업 형태의 협업 공간을 한동안 운영해보기로 하고, 500달러를 들여 손님이 그리 많지 않은 카페 하나를 2주간 빌렸다. 인터넷을 설치하고, 가구 디자이너로부터 가구를 빌리고, 마당에는 빈백을 놓았으며, 일체의 광고는 따로 하지 않았다. 대신 다양한 그룹으로부터 총 15명의 사람을 선정한 뒤 한 명 한 명 직접 만나 그들의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카페로 초대했으며, 때마침 열린 테드엑스 우붓(TedX Ubud)에서 이들의 아이디어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들의 시도는 어떤 결과를 끌어냈을까? 이 카페에서는 페차쿠차 나이트 우붓(PechaKucha, 페차쿠차란 20개의 슬라이드를 각 슬라이드당 20초씩 보여주면서 진행되는 프레젠테이션 기법으로, 페차쿠차 나이트란 이름으로 전세계 각지에서 관련 행사가 지속적으로 개최되고 있다)을 비롯한 9개의 크고 작은 행사가 진행되었고, 2주간 총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카페를 찾았다.

2주가 지난 뒤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이 임시 협업 공간은 문을 닫았고, 자신들의 아이디어에서 확실한 가능성을 발견한 세 사람은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자그마치 서른 개가 넘는 장소들을 일일이 찾아다녔고, 서른 여섯 번째에 발견한 곳이 바로 원숭이 숲 옆에 자리한 지금의 후붓 공간이다. 그렇게 2013년 4월 문을 연 후붓에는 25명의 파운딩 멤버들과 함께 첫 달 55명의 멤버들이 자리를 잡았다.

커뮤니티가 먼저다

스티브는 협업 공간을 이루는 요소로 시설, 이벤트, 그리고 커뮤니티를 꼽았다. 그 중에서도 협업 공간의 생명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그가 강조하는 것이 바로 커뮤니티이다.

“사람들은 편한 의자나 에어컨, 아름다운 인테리어와 빠른 인터넷(물론 한국에서 온 사람 앞에서 함부로 자랑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후붓의 인터넷 시설은 발리에서 최상급에 든다고 자부할 수 있다)을 찾아 이 곳에 오는 것이 아니다. 이 곳의 진짜 가치는 바로 사람들, 커뮤니티다. 커뮤니티가 바로 사람들을 모으고 끊임없이 여러 프로젝트들이 탄생할 수 있도록 한다”

후붓에서는 새로운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즉시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연결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호스트가 따로 있지만 멤버 한 명 한 명이 모두 후붓의 호스트이자 대표라는 생각으로 사람들을 대한다. 발리에 머무르고자 하는 멤버들은 이 멋진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후붓의 현지 직원들로부터 각종 행정 절차에서 숙박에 이르기까지 아낌없는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상당한 매력이다.

현재 후붓에서 활동 중인 멤버는 약 250명 정도이고 지금까지 이 곳을 거쳐 간 멤버는 천 여명에 이르며, 이들의 전문 분야와 출신 국가는 딱히 손꼽아 몇 개를 말할 수 없을 만큼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후붓에서는 사람들이 각자가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지식을 배울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각종 이벤트들을 매달 30여 개 이상 진행한다. 후붓이야말로 전 세계 각지에서 모인 똑똑한 사람들, 놀라운 능력자들을 한 자리에서 스스럼없이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장소라고 자부한다는 스티브의 이야기대로 월간 이벤트 일정이 적혀진 칠판에는 기술, 금융,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크고 작은 모임이 빼곡히 정리되어 있었다.

14167270015_c93e5c68f0_b.jpg▲출처: Hubud’s Flickr (https://www.flickr.com/photos/123754026@N04/)

왜 발리인가?

이 질문을 던지자 스티브는 단 한마디로 대답했다.

“당신이 발리에 온 이유를 생각해 보라, 그 이유가 바로 답이다.”

우문현답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거로구나 싶었다. 분명 발리엔 사람을 끌어 당기는 발리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다. 발리섬이 간직한 천혜의 자연환경은 잠시 제쳐 두고라도, 이곳에서는 회화, 명상, 공예, 사진, 음악, 요가, 건강한 먹을거리 등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모든 요소를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거기다 이 모든 것들을 상대적으로 매우 저렴하게 누릴 수 있기에 현재 서비스의 개발 단계에 있는 스타트업, 그리고 자신의 삶과 일 사이에서 건강한 균형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발리는 매력적인 장소일 수밖에 없다.

“내 이웃 중 한 명은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CEO였다. 오른손잡이인 그는 고갈된 창조력을 회복하고자  이곳에서 일년 간 왼손만으로 그림을 그리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사람들은 발리에 일하기 위해 오지 않는다. 이들이 발리에 오는 이유는 그들이 원하기 때문이고, 바로 이것이 후붓에서 창조적인 에너지로 가득 찬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이유이다. 개발자, 디자이너, 예술가, 영화제작자, 작가, 컨설턴트 등 이 곳에서는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분야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후붓이 자리한 이 곳 우붓은 산스크리트어로 ‘치유’를 의미한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들(Location Independent People)’의 출현과 더불어 세계 각지에서 생겨나고 있는 협업 공간들이 이제 사람들이 일을 하고 커리어를 만들어 나가는 모습을 바꾸어 나갈 것이라는 스티브의 이야기에서 후붓이 왜 발리에 자리 잡았는지를 다시 한번 이해할 수 있었다.

13987480439_16b6f03d5c_k.jpg▲출처: Hubud’s Flickr (https://www.flickr.com/photos/123754026@N04/)

도 유진
이 나라 저 나라의 스타트업 커뮤니티에서 일도 하고 글도 쓰고 떠돌고 있습니다. 2015년엔 다큐멘터리 만듭니다. 디지털 노마드, 여행은 현재 진행형, 재밌는 프로젝트 제안&여행지 추천&서핑 한수 전수 언제나 환영합니다. hi@youjin.do / dareyourself.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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