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도 진정한 스타트업 생태계가 존재하는가?
9월 18, 2014

초등과학 개념 사전에서는 '생태계'에 대해 이렇게 정의내리고 있습니다.

생물이 살아가는 세계. 이 안에서 생물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갈 뿐 아니라 주위 환경과도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스타트업 생태계'라는 표현을 요즘에는 각종 미디어와 커뮤니티 내에서 수 없이 많이 접하게 됩니다. 비석세스 미디어 역시 이 스타트업 생태계의 확장과 발전을 위해 소식을 전하고, 매 년 2개의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비글로벌2014(beGLOBAL2014)' 준비 차 샌프란시스코에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한 달 정도의 시간을 보내며, 한 가지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취재만 다녀도 훤히 보이는 스타트업 생태계 구조가, 한국에서는 미디어라는 생태계 일원으로 속해있으면서도 잘 보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생태계는 하나의 세계이고, 분명히 이를 한 곳에서 조망할 수 있는 지점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전문 미디어 입장에서도 그것을 파악하고 인식하기 어려웠다는 것은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가 가진 문제이자, 저희 스스로가 반성할 점이기도 하겠지요. 오늘은 우리 생태계가 가진 약점과 그 보완점을 제가 느낀 실리콘밸리의 이야기와 대조하여 들려드릴까 합니다.

성장은 견제와 균형으로부터 온다 : 5개 주체 간 평등한 교류

StartupEcosystem

정해진 공식이 없는만큼 스타트업 생태계 구성원을 나누는 것은 그야말로 부르는 게 정답입니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나누느냐에 따라 다양할 수 있겠지만, 제가 전반적으로 느낀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다음의 5가지 주체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위의 그림과는 조금 다릅니다.)

  • 정부(Government)
  • 대학 및 교육기관(Universities)
  • 대기업(Big Companies)
  • 보육 기관(Support Organization)
  • 스타트업(Service Providers)

먹이 사슬 구조가 아닌 '생태계'이기 때문에 실리콘밸리 내의 이 다섯 개 산업 구성원들은 비교적 평등한 관계에서 교류하고 있습니다. 국내와는 상당히 다른 풍경입니다.

가장 도드라지는 예로 대기업과 국내 스타트업 관계에는 미묘한  신경전이 존재하죠. 여러 인터뷰이들을 만나며, 소위 말해 '대기업 놈들'이 도와줄 것처럼 하다가 아이디어만 쏙 빼내갔다는 불평을 들은 것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 일을 겪고나면 스타트업은 대기업과 일하는 것을 피하게 되고, 함께 일을 하더라도 하청관계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 태반입니다. 전형적인 약육강식의 법칙 속에서 스타트업은 언제나 몸사려야 하는 약자 입장에 놓이게 되죠.

그러나 '실리콘밸리가 유명한 것은 활발한 M&A 덕분'이라는 말이 있을만큼, 이 곳 현지에서는 좋은 스타트업을 인수하기 위한 대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합니다. 이미 회사의 몸집이 커질대로 커진 대기업에게는 끊임없이 '혁신'이라는 먹이가 필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좋은 기술이 있는 스타트업이라면 대기업을 상대로도 오히려 우위에 서서 거래할 수 있습니다. '인수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기 보다는 '그래서, 인수하고 나면 우리 회사를 어떻게 이끌어나갈건데?' 하는 어찌보면 합당한 질문들이 오갈 수 있는 환경입니다. 이 때문에 많은 대기업들이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기관의 파트너 사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기업의 '상생협력' 차원의 생색내기 식 지원이 아닌 될 성 부른 나무의 떡잎을 채가기 위한 열띤 경쟁의 자욱입니다. 회사를 여러 번 매각한 숙련된 연쇄 창업가들이 탄생하고, 이들은 또 한 번 세상을 뒤엎는 멋진 스타트업을 탄생시킵니다. 선순환의 연속입니다.

엑셀러레이터와 인큐베이터 기관의 태도도 사뭇 다릅니다. 이들은 스타트업의 보모 역할을 하길 자처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 인터뷰 한  로켓 스페이스(Rocket Space)의 경우, 이미 한 번 이상의 투자를 받은 기술 기반 스타트업에게만 입주의 기회를 주고 있을만큼 절차가 까다롭습니다. 국내 보육 기관만큼 지원하는 내용도 많지 않습니다. 기술 경쟁력 있는 좋은 기업을 뽑아, 사무실·네트워킹 등의 기본적인 지원을 합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입주해있는 스타트업의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 빈자리가 나도 함부로 채워넣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곳에서 '우버(Uber)', 스포티파이(Spotify), 립모션(Leapmotion) 등의 빌리언 달러 스타트업이 탄생했고, 3년 간 입주 기업이 투자 받은 자금만 총 30억 달러(한화 3조 1,050억 원)에 이릅니다.

VC들이 좋은 스타트업의 피칭을 듣기 위해 직접 사무실을 방문하고, 기념일에 꽃이나 선물을 보낸다는 일화는 이미 포메이션8(Formation8) 구본웅 대표의 인터뷰를 통해 한 차례 전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모든 생태계 주체들은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5개 주체 간의 팽팽한 견제와 균형 관계가 유지됩니다. 자금을 지원받기 위해 스타트업이 보육기관, VC, 대기업, 정부에 손을 벌리고 저자세를 유지해야하는 국내 생태계와는 차이가 있는 모습입니다.

DSC_0036-1024x680▲네스트GSV 매니저, 오세이 야이하로

실리콘밸리 내에는 이 모든 5개 생태계 구성원의 허브 역할을 하는 엑셀러레이터 기관도 존재합니다. 지난 4일 인터뷰 했던 네스트GSV(NEST GSV)가 바로 그 곳입니다. 네스트GSV의 매니저인 오세이 야이하로는 비석세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 많은 엑셀러레이와 인큐베이팅 센터가 있지만 그들은 스타트업에게만 초점을 맞췄다. 네스트 GSV는 스타트업, 투자자, 대기업, 대학교, 보육 기관의 5가지 주체들이 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허브 역할을 한다는 것이 차별점이자 강점이다. 어느 누구도 이 5가지 섹터를 통합해 무언가를 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대기업도, 투자자도, 스타트업도 혼자서는 진정한 글로벌 혁신을 이뤄나갈 수 없다. 우리는 단지 스타트업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기술 혁신 생태계를 인큐베이팅 하고 있다.

정부나 대기업과 국내 스타트업이 평등한 관계로 이야기하기까지는 사실상 구조적으로 많은 시간이 걸리겠죠. 하지만 적어도 네스트GSV와 같은 5개 기관이 서로 소통하고 연결될 수 있는 허브 기관이 생긴다면 그 시간을 단축시킬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먹고 먹히는 관계가 아닌 서로에게 영양분을 제공하는 평등한 생태계, 제가 느낀 실리콘밸리의 저력 중 하나입니다.

스탠포드가 없었다면 실리콘밸리는 탄생할 수 없었다 : 실리콘밸리의 명문대 활용법


Korea Startup Ecosystem from StartupAlliance

위의 도표는 올해 상반기 스타트업얼라이언스(Startup Alliance)에서 정리한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지도입니다. 비석세스를 포함한 미디어, VC등 다양한 주체들이 어우러져 있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대학'의 부재입니다. 실제로 '비글로벌 2014'와 '테크크런치 SF 2014' 등 컨퍼런스에서 만난 유명 인사들은 대학의 중요성을 여러 번 이야기 했습니다.

DSC_0831 (1)

지난 15일 인터뷰했던 빌 드레이퍼(Bill Draper) 역시 개발 도상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 바 있습니다.

스탠포드 대학이 없었다면, 실리콘밸리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겁니다. 엔지니어링 기반을 갖춘 좋은 대학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을 생산해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보통 시장에 나오는 혁신적인 기술들은 대학에서 먼저 발견, 연구되는 경우가 많아요.

즉, 좋은 대학이 좋은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든다는 것이죠. 국내에도 포항공대, 카이스트 등 명문 공대 출신의 창업가가 많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와 한국 생태계가 대학을 활용하는 방법은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대학이 인맥 전화 번호부 처럼 작동하고 있는 반면, 실리콘밸리에서는 혁신과 기술의 원천지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실제 스탠포드, UC버클리 등은 스타트업 피플을 만들어내기 위한 연구 시설, 창업가 교육 프로그램, 인재 보유 등의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스탠포드 대학의 경우 자체적으로 STVP(Stanford Technology Venture Program)을 진행하고 있을만큼 적극적인 창업 교육으로 유명합니다. 이를 통해 구글, 야후, 휴렛페커드 등의 CEO가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도 명문 대학 내 다양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있는 시점입니다. 그러나 보기 좋은 사무실, 번지르르한 인사들을 부른 강연이나 경진 프로그램보다는 '심도있는 기술을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좀 덜 눈에 띄고 좀 덜 성과를 낸다고 해도 말이죠.

실제 얼마 전 만난 어느 유명 공대 경진대회 1등 팀 학생들은 프로토타입도 만들지 않은 채 상금으로 컨퍼런스 부스를 사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인큐베이터 센터만 만들어 놓는다고 해서 학생들의 창업에 대한 의지가 갑자기 샘솟을까요? 스탠포드의 경우 실리콘밸리의 유명 창업가들이 직접 교수, 멘토직을 맡아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창업을 권유한다고 합니다. 반면 국내의 경우 여전히 대기업을 찍고 나와 창업하는 명문대 출신이 대다수입니다. 대학 교실에서부터 전설적인 스타트업이 탄생하는 역사가 국내에서도 일어나길 응원해봅니다.

실리콘밸리는 생태계라기보단 유기체다

 '실리콘밸리를 복제하지마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위에는 실리콘밸리가 좋다고 해놓고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역사를 흉내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한국은 그들처럼 할 수 없을 뿐더러, 하려고 무리해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그들과 다른 역사와 문화, 사람들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배울 것은 분명히 있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필자가 바라본 실리콘밸리는 스타트업 생태계라기보다는 하나의 유기체에 가까웠습니다. 생태계가 생물들이 어우러져 사는 세계를 뜻한다면 유기체는 '많은 부분이 일정한 목적 아래 통일ㆍ조직되어 그 각 부분과 전체가 필연적 관계를 가지는 조직체'를 뜻합니다. 좀 더 단단하고 하나로 뭉쳐진 의미입니다. 위에 말한 5개 산업 구성원은 단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경쟁, 협력, 조화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세상을 바꾸는 혁신적인 스타트업의 탄생'입니다.

정부는 '창조 경제의 성과'를 대기업은 '상부에 보고할 문서'를 스타트업은 '혁신 없는 성공'을 바라보고만 있다면, 거기서는 세상을 바꾸는 스타트업이 탄생할 수가 없습니다. 창업 놀이에 불과한 반짝 스타트업들이 늘어나고, 페이스북 안에서의 '우리끼리의 친목 모임'이 생태계의 전부가 되어버리지 않을까요. 미디어로서도 제 역할을 제대로 하고있는지 다시 한 번 반성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만의 리그에서 벗어난, 진정한 스타트업 생태계의 확대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동상이몽이 아닌 하나의 뜻을 가진 전 구성원의 노력이 있다면 반드시 이루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해봅니다.

정 새롬
노력과 겸손, 지혜가 담긴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찰싹찰싹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익명 댓글

ava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