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50개의 유령 공장이 돌아가고 있다”, 시제품 제작공간을 아시나요?
11월 12, 2014

"스타트업이 시제품을 만들어볼 수 있는 공동 제작공간은 의외로 많습니다. 정부도 계속해서 만들고 있는 추세고요. 문제는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거죠."

낡고 오래된 부품 상점을 지나 세운상가 550호의 문을 열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3D 프린터기부터 대형 레이저 커터기까지. 과연 전직 우주인이 차린 공간답다. 우주인 고산은 3년 전, 기술기반 창업을 지원하는 단체인  타이드인스티튜트(TIDE Institute)를 만들며 벤처사업가가 됐다. 미국 유학 시절, 실리콘밸리에서 메이커 운동과 테크샵의 태동을 경험했던 것이 삶의 터닝포인트가 된 것. 이제 1인 제작자나 하드웨어 스타트업은 공공도서관을 이용하듯 세운상가 550호에 위치한 팹랩(Fab Lab)에서 시제품을 만들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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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팹랩 서울 전경, 팹랩은 MIT 미디어랩에서 탄생하여 현재 세계 36개국 127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국내 시제품 제작공간, 없는 게 아닌데…

팹랩과 같은 공동 제작공간은 하드웨어 스타트업 성장을 위해 필수적인 요건이다. '세계의 공장' 중국은 강력한 제조업 인프라를 기반으로, 혁신적인 하드웨어 스타트업들을 탄생시키고 있다. 세계적인 하드웨어 스타트업 전문 엑셀러레이터인 헥셀러레이터(HAXLR8R)하이웨이1(Highway1) 역시 중국 심천(深圳) 지역을 주요 거점 삼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 하드웨어 스타트업 기반이 약하다는 것은 이미 여러 번 거론된 문제다. 

'국내 테크샵 현황은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테크샵은 하나의 브랜드명이기 때문에 개방형 혹은 공동 제작공간으로 불러야 한다고 바로 잡았다. 이를테면 이제는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대일밴드'가 원래는 브랜드 이름이었던과 같은 이치다. 실제 해외에는 테크샵 이외에도 팹랩, 해커스페이스 등 다양한 공동 제작공간이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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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제품 제작공간이 국내에도 다수 존재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실제 규모가 꽤 큰 제작공간의 수는 17개, 정부가 주도하는 '무한상상실'의 소규모 공간까지 합치면 그 수가 거진 50개다. 많다고 할 수 없지만 지역별로 고루 산재돼 있어 찾아가기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 제작공간에 대한 국내 인식 수준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의 3가지 이유로 추려볼 수 있다. 


'공간만 덜렁' 국내 제작공간, 교육·허브·정보 3가지가 없다

첫 번째로 고산 대표는 '교육 프로그램의 부재'를 꼽았다.

"공간이랑 장비만 갔다놓는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지가 중요하거든요. 아주 기본적으로는 장비의 사용법 교육부터, 커뮤니티 제공까지. 다양한 교육을 통해 스타트업들이 실질적이고 실용적으로 공간을 이용하게 만들어줘야 합니다."

이를 위해 타이드인스티튜트에서는 총 4가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창업자 교육인 타이드 아카데미, 직접적인 시제품 제작 교육인 타이드 워크샵, 2박 3일 창업대회인 스타트업 스프링보드, 대중 강연회인 타이드 인사이트가 그것이다. 향후 고산 대표는 전국 각지에 팹 랩을 세우고, 운영 매니저를 양성할 계획이다. 다양한 교육 컨텐츠 개발과 확산 역시 향후 목표 중 하나다.

두 번째 문제는 전국에 산재되어 있는 제작공간을 하나로 묶어 줄 '허브의 부재'다. 해외의 경우에도 모든 제작공간을 아우른 허브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테크샵, 팹랩, 해커스페이스와 같은 유명 브랜드의 경우, 홈페이지를 통해 각 지점의 위치와 보유 장비 현황 등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이에 비해 국내 제작공간의 경우 운영을 주관하는 곳이 어딘지도 알기 어렵고, 각 공간 명칭도 제각각이어서 실체를 파악하기조차 어려운 것이 실정이다. 

테크 스타트업 전문 양성 기관인 퓨처플레이의 한재선 CTO는 '한국도 제조 경쟁력이 있지만, 그 장점을 잘 살리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국내에도 중소 규모의 제작사들이 꽤 있습니다. 이런 제작공간들에 대한 정보를 한 곳에서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각 제작공간에서 제작할 수 있는 제품의 수준도 알려줄 수 있어야 하고요."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마지막 문제가 '정보의 부재'다. 국내 제작공간의 경우 홈페이지를 들어가봐도 대부분 시설 내 어떤 장비가 구비되어 있는지 알 수 없다. 정부 산하 기관에서 운영하는 한 제작공간의 경우 총 5명의 담당자와 돌아가며 통화를 했지만 결국 장비에 대한 정보는 들을 수가 없었다. 연락처와 홈페이지 주소를 알아도 자사의 시제품을 어느 수준까지 만들어볼 수 있는지 알기가 어려우니 일일이 방문해야 하는 수고를 피할 수 없다. 

미국의 해커스페이스의 경우 전세계적으로 퍼져있는 지점의 위치를 구글 맵으로 한 눈에 볼 수 있게함은 물론, 각 지점마다의 설립년도·직원 수·활성도를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도록 정리해 놓았다. 테크의 경우 각 지점마다 가지고 있는 기계 항목을 세세하게 명시하고 있다. 더불어 '장비 예약 캘린더'를 통해 사용자가 원하는 일자에 장비를 빌릴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정보 열람을 통해 사용자는 마침 찾아간 날 테크샵이 문을 닫거나, 장비를 빌리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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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공간에 대한 세세한 정보의 열람이 가능하다.


포털에서 전문 제작자와의 연결까지, 원스톱 시스템 구축 필요

한재선 CTO는 국내 하드웨어 스타트업에게 추가적으로 필요한 것은 '전문 제작자와의 연결 시스템'이라고 덧붙였다.

"내부에 있는 팀이 하드웨어를 제작할 때 옆에서 지켜보니, 공동 제작공간만 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컨셉은 있고, 프로토타입까지는 대충 만들 수 있는데 그 다음 단계 수준의 고급 제품을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스타트업도 많거든요. 이 전문 제작자를 찾는 게 정말 힘듭니다. 결국 공동 제작공간의 정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포털이 전문 제작자와 연결까지 시켜줄 수 있으면 금상첨화입니다."

중국은 원래 무서웠지만, 중국의 하드웨어 스타트업들은 더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국내외 분위기를 의식한 듯, 정부 주도의 하드웨어 육성 사업 규모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미 포화 상태인 소프트웨어 기업과는 접근 방식부터, 지원 항목까지 달라야하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사업 내용을 뜯어보면 태반이 공간·자금·멘토링 이라는 삼박자 구색만 간신히 맞추고 있다.

하드웨어 스타트업의 본질과 태생에 관한 깊은 고찰없이 그저 '수가 부족하니 키워야겠다'는 강박 관념으로 진행하는 지원 사업이 성공할 가능성은 낮다. 좀 더 실질적인 하드웨어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서는 구체성을 살린 지원이 확대되어야 한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정부가 직접하는 것보다는, 이미 잘 하고 있는 기관들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 아닐지 다시금 생각해볼 때이다. 

▲국내  대표 시제품 제작공간 지도
(서울 지역의 경우 밀집되어 있기 때문에 확대해서 보세요. 위치, 전화번호, 홈페이지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정 새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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