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의 찬미’를 넘어 ‘천송이 코트’까지, 한류의 바람을 타고 콘텐츠 플랫포머를 꿈꾸다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어데이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려 하느냐?...웃는 꽃과 우는 새들이, 운명이 모두 같구나.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위에 춤추는 자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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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터스텔라를 보고 난 이후, 우리가 느끼는 정의할 수 없는 감정 일부를 오래전 노래한 이가 있다. 바로 1926년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가요인 「사의찬미」를 부른 윤심덕이다. 윤심덕과 그녀의 애인 김우진과 바다에 몸을 던진 풍운아였다고 한다. 윤심덕은 경성여고를 졸업한 교사 출신이고 동경음악학교 성악과를 졸업했다. 이후 김우진의 소개로 도쿄 유학생들이 결성한 토월회에 가입해 영화(동도)를 각색한 여주인공 안나 역을 맡기도 했다. 투신자살 후 발매된 '사의 찬미'가 삽입된 레코드판은 당시 쌀 몇 가마 값에 해당함에도 1,500판가량이 팔릴 정도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킬 정도였다. (당시 이미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당시로써는 대단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의 투신자살 사건 이후, 잊을만하면 두 사람의 생존설이 제기되었다. 유럽에서 그를 보았다는 확인되지 않는 증언에 이어 두 사람이 악기점을 하고 살고 있다는 구체적인 루머가 대두되자 1932년, 이태리 총 영사가 직접 조사한 기사가 삼천리라는 잡지에 공개되기도 했다. 한편 당시 ‘사의 찬미’라는 곡에 거액의 계약금을 지불한 일본의 이토오 레코드사는 본래 계약서에는 없던 노래인 '사의 찬미'가 사건 일주일 만에 경이적인 판매고를 이루자 음모론의 중심에 서게 됐다. 누구보다 가장 큰 이득을 취한 회사는 일본의 축음기 회사라고 한다. '사의 찬미' 출시 이후 불과 2천만 대에 불과했던 축음기가 30년대 중반에 이르러 35만대까지 보급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공교롭게도 레코드 회사가 축음기 회사의 자회사였다는 점은 음모론자들에게 마지막 퍼즐이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1926년, 현해탄에 몸을 던져 목포 출신의 극작가 김우진과 돌연 자살한 신여성 윤심덕에 관한 이야기는 좀처럼 대중의 곁을 떠나고 있지 않는 듯하다.

 

'천송이 코트' 정치적 상징성과 기회  

윤심덕과 김우진의 센세셔널한 투산 자살 사건 이후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한류’라는 전대미문 한 문화적 현상이 한국의 중국 온라인 수출에 대한 규제 개혁을 이끄는 동인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의 드라마를 본 수많은 중국의 시청자들이 극 중 주인공들이 입고 나온 의상과 패션 잡화 등을 사기 위해 한국 쇼핑몰에 접속했지만 결제하기 위해 요구하는 공인인증서 때문에 결국 구매에 실패했다”고 지적한 이후 외국인에게는 공인 인증서를 면제하겠다며, HTML5 기반의 공인인증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정책 기조를 발표한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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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람보와 같은 마초적 영웅담과 ‘뉴키즈언더블록’의 댄스뮤직에 열광하던 한국의 청소년들은 신식민지의 아들과 딸이었지만, 이제 한국 배우들의 헤어스타일과 패션을 모방하고자 하는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10대들이 한국의 ‘코리아 브랜드의 고객’이 되었다. 노르웨이의 오슬로 국립대학교에서 한국학을 전공하고 있는 박노자 교수는 한겨레 신문의 ‘한류, 자랑스럽기만 한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무엇보다 한국 영상물에서 보이는 중산층의 소비생활, 해외여행, 호화로운 명품과 같은 대목들이 자본주의적 욕망이 성숙하고 있는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호소력이 높다"고 분석하며 "한류의 미래를 소비주의의 모습만이 아닌 비판적 지성과 반자본주의 운동의 나라로서의 ‘코리아’를 문화적 수단으로 알리는 것이야말로 한류를 어설픈 제국주의 수준에서 국제 민중의 연대 방법으로 끌어 올리는 길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필자는 한류는 일본이라는 거대한 문화적 자본이 중국과 역사적인 이유로 소통할 수 없고 중국의 콘텐츠 시장 자체로도 공산당이라는 높은 검열과 규제라는 한계 속에 창의성의 부재로 내수시장을 만족시킬 수 없는 상황 속에 등장한 기이한 팬덤이라는 지점에서 역사의 한순간을 장식하는 유행하는 현상이라기 치부하기보다는 다양한 산업을 연계하여 지속가능한 비지니스 모델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한국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과 한류

필자는 지난 1년간 새롭게 한류에 기반을 둔 팬덤 커뮤니티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에서 일하며 전 세계의 다양한 한류 팬들과 교류해 왔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친구는 21살의 Leslie Bledjo라는 프랑스의 여학생이었는데 2NE1이라는 한국의 밴드를 너무 좋아해서 2NE1을 좋아하는 프랑스인들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왜 2NE1이 파리에서 공연해야 하는지에 대한 15장가량의 보고서를 나에게 보내왔다. 한국으로 치면 대학교 2~3학년생들이 작성한 수업시간의 과제 정도로 기대했던 나는 그 보고서의 진정성에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 커뮤니티 내의 프랑스인들의 면접에 기반한 수요조사와 함께 유수의 컨설팅 회사들의 흔한 숫자 놀이에 기반한 타당성조사(feasibility study)를 넘어선 현장의 데이터들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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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에 기반한 영상 콘텐츠로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가꾸어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으로 성장한 ‘잇유어김치'의 예도 마찬가지이다. 캐나다 출신인 사이먼과 마티나 부부는 2008년 5월 한국에서 원어민 교사로 일하기 위해 왔지만, 지금은 둘 다 교사직을 그만뒀다. 부부 중 한 명의 수입으로 월세, 난방비, 전기세, 휴대전화 요금 등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어 월말에는 매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었고,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매일 새벽 2~3시까지 영상 제작과 편집에 몰두하고 주말도 반납해하기도 했다. 사이먼과 마티나 부부는 2012년 9월 유튜브 팬들의 도움으로 7시간 만에 4만 달러(한화 4천3백12만 원) 이상을 모금해 홍대 앞에 촬영용 스튜디오를 얻었다. 이제 잇유어김치는 한국의 케이팝 스타들의 신곡 발표 시에 어김없이 들러야 하는 커뮤니티로 거듭나 100만명의 구독자를 거느리며 한국 유수의 대기업 광고 제의와 KPOP 스타들의 구애의 대상으로 성장했다.

라쿠텐에 2억 달러에 매각되며 이젠 한국 스타트업계의 전설이 되어 버린 비키의 예도 빼놓을 수 없겠다. 비키는 단순한 한류 콘텐츠의 온라인 유통 채널 혹은 번역 서비스가 아닌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들고 운영하는 콘텐츠 커뮤니티와 자막 번역을 통해 바이럴 마케팅을 펼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서비스를 확장했다. 해외의 한류 팬들은 비키를 통해 번역자로서 혹은 채널 및 커뮤니티 운영자로서 온라인상에서의 콘텐츠 공유와 확산을 이끌었다. 비키는 유저들의 콘텐츠를 법적으로 보호하고 구조화하여 회사의 핵심 경쟁력으로 승화시켰다. 한류 콘텐츠의 제작 단계서부터 사용자들이 생산해낸 관련 채널을 통해 프리버즈(Pre-buzz) 마케팅을 펼치고 본 방영이 시작된 이후에는 전 세계 10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된 자막 및 댓글, 2차 생산된 UCC 역시 유통하며 플랫폼의 경쟁력의 확보하는 전략을 펼쳤다.

매달 1억 5천만의 웹 트래픽을 이끌어 내고 있는 버즈피드의 창업자는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할 때 기존의 콘텐츠를 그것에 끼워 맞추는 전략은 실패하기 마련"이라며 "매체의 특성이 콘텐츠를 규정한다” 는 중요한 성찰을 전한 바 있는 데, 한류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KPOP 영상 콘텐츠들은 이처럼 유저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요구하고 짧은 호흡으로 직관적으로 소비되는 모바일기반의 플랫폼과 최적의 조합을 자랑하기도 한다.

 

사의 찬미 넘어 

다시 윤심덕과 김우진의 ‘사의 찬미’로 돌아와 보도록 하자. 1926년, 당시 한국의 언론은 이들의 동반 자살을 연일 대서특필했다. 자식과 처를 둔 전도유망한 극작가와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던 음악가, 두 사람의 자살은 암울한 식민지 시대를 관통하던 퇴폐적 낭만주의와 결합하여 완벽한 로맨스를 완성하였으며 사건 일주일 후 윤심덕의 유고 앨범 ‘사의 찬미’가 출시되었다. 조선 전역에 ‘사의 찬미’가 울리지 않았던 곳이 없었다고 한다. 필자는 이 사건이 일본 축음기 산업계가 식민지 조선의 음반 및 유성기 시장 개척을 위해 기획한 아이템이라는 음모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1980년대 MTV라는 새로운 플랫폼 확장의 중심에는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앨범이 있었고, 2000년대 후반 아이폰이라는 플랫폼의 확장을 위해서는 수많은 앱 개발자들의 생태계가 있었듯이 새롭게 등장하는 플랫폼을 이끄는 중심에는 콘텐츠가 있다. 애플이 '사용자 경험과 스토리 디자인'이라는 콘텐츠를 중심으로 그들의 소매 환경과 온라인에서 보여지는 브랜드의 이미지에 일관성을 부여하며 이를 기반으로 사용자 경험을 폭넓게 통제하며 수직적 통합(Vertical Integration)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듯이 우린 한국의 스타트업으로서 글로벌 진출에 있어 한류의 콘텐츠를 충분히 활용하며 각자의 비즈니스 영역을 확고히 하며 확장할 수 있다.

피터 드러커가 이야기 한 “21세기는 문화 산업이 국가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는 말의 함의를 피상적으로 이해하지 말자. 문화를 이루는 핵심인 콘텐츠는 플랫폼에 의해 규정되며 서사(내러티브)는 유통에 의해 결정된다. 1박 2일, 개그콘서트, 불후의 명곡 등을 기획하고 뉴욕, 파리, 하노이,  도쿄, 홍콩, 칠레까지 전 세계 20여만 명의 음악 팬들을 사로잡은 K팝 월드 투어를 진두지휘한 KBS 전진국 편성본부장은 최고의 콘텐츠와 최적의 플랫폼은 하나의 원리로 작동된다는 '콘텐츠 플랫포머'라는 개념을 제안한 바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12월, 중국과의 콘텐츠 산업 확대 및 협력을 위한 ‘한중 다자협의체’를 구성하여 인바운드 및 아웃바운드 국내 콘텐츠의 경쟁력 강화 및 수출 역량 확대를 위한 중장기 계획을 발표하며 2017년까지 대중국 수출액 규모를 4조 원 규모로 확대해 나가겠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자본의 논리와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개념에 기초한 플랫폼의 영역과 인간의 마음을 다루는 콘텐츠를 영역을 가로지르는 콘텐츠 플랫포머로서 한류와 함께 글로벌 시장을 개척해 나아갈 한국의 스타트업을 응원한다.

 참고 자료 : 블로그 예술공원

이 한종
이한종은 연쇄 창업자로, KBEAT의 공동창업자이자 CXO. 스타트업을 위한 초기투자 심사역 및 엑셀러레이터로서 경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디지털 콘텐츠 및 뉴미디어 플랫폼 영역의 오랜 경력을 바탕으로 연세대학교, SKP,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등의 멘토 및 심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006년 런던 영화학교를 졸업했고, 2011년 국무총리표창을 받았다. (walterlee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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