팹닷컴의 9천 억 증발, 가치의 희석은 왜 위험한가

많은 어르신에게 그러하듯, 필자의 모친에게 역시 전화요금은 '줄여야 할 대상'이다. 그러다 보니 필자의 모친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전화요금이 아까워 데이터 포함 요금제를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사용하는데 데이터를 사용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 결국 카톡 같은, 소위 필수어플들만 사용하는데도 오히려 데이터요금이 매월 몇만 원이나 나오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다(물론, 필자의 모친은 어플들이 데이터를 빨아먹는 것을 모르셨고, DSLR로 찍은 사진들을 전송하는데 상당한 데이터가 필요함 역시 모르고 계셨으나, 이는 논외로 하자). 며칠 전 명절을 맞아 모친을 찾았다가 그런 이야기를 들었고, 이참에 요금제를 바꾸면서 아예 전화기도 신형으로 바꾸어 드리기 위해 필자는 모친을 모시고 인근의 핸드폰 판매점을 방문하였다.

인터넷을 통해 간단히 구매할 수도 있었으나, 오늘날 핸드폰이란 하이테크이면서 동시에 한 번 구매하면 최소 2년은 곁에 두고 사랑을 주며 “모셔야” 하는 하이터치 제품이 아닌가? 필자의 생각에는 그렇게 ‘모시려면’ 소위 ‘작동감’이라든지 ‘그립감’과 같은 감성적 요소들 역시 그 하드웨어적 스펙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직접 만져도 보고, 아이콘들을 눌러도 보고, 사진도 찍어도 본 후 어떤 모델로 할 것인지 결정하시도록 하기 위해 오프라인 판매점을 찾은 것이었다.

아마도 많은 분들 역시 필자와 같은 생각에 오프라인 판매점을 찾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필자가 모친을 모시고 찾은 오프라인 판매점 몇 곳에서는 정작 핸드폰을 만져보고 작동해볼 수가 없었다. 모든 오프라인 판매점에서는 실제 핸드폰과 모양만 동일하게 만들어 놓은 더미(Dummy) 제품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했던 스타트업, 팹닷컴

미국 뉴욕시에 본사를 둔 팹닷컴(Fab.com)은 명실공히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으로 유명했다.

플래쉬 세일(Flash Sales, 특정 제품을 짧은 기간만 상당한 할인이 적용된 가격에 판매하는 것)로 독창적인 인테리어 소품 등을 파는 것을 그 비즈니스 모델로 하여 2010년 탄생한 이 팹닷컴은, 2011년 6월에 정식으로 웹사이트가 오픈되기 이전에 이미 45,000명의 고객을 모으는 데 성공했고, 정식 오픈 후에는 매일 5,000명에 달하는 신규고객이 가입했다. 팹닷컴은 이를 발판으로 정식 오픈 후 몇 주 되지 않아 애쉬튼 커처를 비롯한 투자자들로부터 1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그로부터 불과 두 달이 지났을 뿐인 2011 년 8월에는 50만 명의 고객을 보유하게 되었으며, 770만 달러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다. 그리고 11월에 이르자 10만 달러에 달하는 일 매출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달 후인 2011년 12월, 팹닷컴은 안드레센 호로위츠(Adreeseen Horowitz)로부터 4천만 달러의 추가 투자를 유치한다.

이후에도 팹닷컴의 성장은 계속되어 2012년에는 무려 500만 명의 고객을 유치하는 데 성공하였으며, 이는 심지어 페이스북의 성장률까지도 능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 같은 해에만 1억2천만 달러의 신규 투자를 유치하였으며, 현재까지 유치한 총 투자액은 34개 투자자 및 투자사들로부터 3억 3,630만 달러(한화 약 398억 원), 그리고 그 기업가치는 거의 10억 달러(한화 약 1조 980억 원)에 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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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천억이 증발해버린 이유 

그리고 올해, 거의 1조 원에 달하는 기업가치를 가진 팹닷컴이 드디어 PCH International에 매각되어 엑시트하게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그 인수금액은 겨우 1,500만 달러(한화 164억7,450만 원)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1조 원에 가깝게 평가되었던 팹닷컴의 기업가치에서 무려 8억 5,0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9천억 원 이상의 금액이 증발한 것을 의미한다. 불과 3년 만에 유니콘 대열에 합류하며,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으로 불렸던 팻닷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용자 수가 급증에 따라 판매 물량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주문생산으로 인해 소량만 생산되던 디자이너들의 제품을 플래쉬 세일을 통해 판매하던 팹닷컴은 주문 후 배송까지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주문자는 평균 16.5 일을 기다려야 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2012년 중반 팹닷컴은 뉴저지 주에 대규모 물류창고를 매입한 후 기존의 플래쉬 세일 방식을 버리고 대량구매 대량판매 방식으로 비즈니스모델을 수정한다.

그 결과 최대 몇 주까지 소요되던 배송기간은 평균 5.5일로 단축되었다. 판매되던 물품의 수도 1,000개 수준에서, 11,000 개로 11배 늘어났고, 제품카테고리 역시 32개까지 증대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외형적 성장은 역설적으로 고객들이 팹닷컴로부터 멀어지는 이유로 작용하게 된다.

팹닷컴의 고객들은, 팹닷컴에서 판매하는 물품이 다른 어떤 곳에서도 구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 때문에 고객이 된 이들이었다. 그러나 팹닷컴이 물류창고를 짓고 대량구매를 시행하게 되면서 그들이 판매하는 제품들은 더이상 독창성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제품의 독창성을 잃어버린 펩닷컴은 이제 같은 훨씬 저렴하고 훨씬 세련된 배송방식과 고객서비스를 갖춘 아마존 등의 거대 기업과 경쟁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고 만 것이다.

결과적으로 물류창고의 재고들은 제때 순환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팹닷컴의 경영진은 2013 년에 들어 독창적 제품의 플래쉬 세일을 완전히 중단하고 자체구매한 제품들만을 판매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 팹닷컴은 점차 시장에서 도태되기 시작했다.

우리가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 

시장과 자사 제품, 혹은 서비스 간의 조합(Fit)가 중요함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적지 않은 경우에 기업들은 자신이 제공해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고민하지 않는다. 더 많은 경우 기업들은 자신들이 중요하다 믿는, 혹은 자신들이 쉽게 제공할 수 있는 가치를 시장에 강요하려 한다. 그리고 가장 흔하게, 기업들은 자신들이 제공하는 가치가 시장의 환경 변화에 따라 함께 변화해야 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과거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이전이라면 오프라인 휴대폰 매장은 고객이 휴대폰을 구매할 수 있는 아웃렛으로서 그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그것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시장인 인터넷이 등장함에 따라 오프라인 휴대폰 매장이 제공해야 하는 가치 역시 변화해야만 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그리고 이때 그들은 자신들이 제공하는 가치를, 인터넷이 보다 훌륭하게 제공할 수 있는 제품의 판매처로서의 가치에서, '실제 제품에 대한 경험'을 제공하는 곳으로 변화시켰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하지 않았다.

한때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이었단 팹닷컴은, '독창적인 제품을 편하게 구매할 수 있는 곳'이라는 훌륭한 가치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훌륭한 가치를 기반으로 보다 크고 보다 빠르고 보다 저렴한 전자상거래 시장 속에서 스스로의 입지를 구축하였다. 그러한 그들에게 시장은 그와 같은 독창적인 제품을 보다 빠르게 받아볼 수 있기를 원했으나, 팹닷컴은 대량구매라는 ‘쉬운’ 방법을 택함으로써 자신들의 가치를 스스로 희석하고 결국 아마존과의 경쟁이라는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버리고 말았으며, 결국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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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는 다르게 오늘날의 시장 내에서는 모든 것에 대체재, 즉 잠재적 경쟁자들이 존재함을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최신형 태블릿이 없어도 훨씬 저렴한 노트북을 통해 태블릿이 충족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니즈를 훌륭히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관련 컬럼은 여기). 따라서 오늘날 자신들이 제공해야 하는, 다시 말해 시장이 나에게 기대하는 가치가 무엇일지, 그리고 어떻게 그를 변화시키고 강화해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시장에서의 생존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것이 되었다.

아마존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서점들이 오프라인 서점들을 어떻게 죽였는지 그리고 왜 오프라인 서점들은 죽음을 피할 수 없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죽어가는 오프라인 서점, 혹은 휴대폰 판매점이 될 것인가? 팹닷컴이 될 것인가? 우리의 가치는 무엇일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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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se Lee is a Co-founder and a Special Partner at ELEVEN:ZULU CAPITAL, a Los-Angeles-based venture capital firm, which invests in early stage companies. Prior to his career as an investor, Lee was a management/strategy consultant at a firm he founded and led multiple cross-border projects in the industries such as ICT, Service, Automotive and FMCG. He is also a visiting professor of business strategy and entrepreneurship at Yonsei University and Yonsei School of Business MBA in Seoul, Korea, and an advisor to a number of Korean Government agencies and startups.이은세는 미국 Los Angeles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VC인 ELEVEN:ZULU CAPITAL의 공동창업자이자 Special Partner이다. 이전에는 자신이 창업한 경영/전략 컨설팅펌인 EICG에서 경영 및 전략 컨설턴트로 자동차, 교육, 소비재, 서비스, IT/ICT 등의 다양한 산업에서 성공적인 프로젝트들을 지휘하였다. 실제 비즈니스 경험에 바탕을 둔 강연자로 선별된 자리에서 자신의 전략프레임워크인 The Fan-oriented Strategy에 대한 내용을 대중들과 공유하고 있고, 지난해까지 연세대학교 및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MBA에서 기업가적 시각 위에서의 전략 수립에 관한 내용을 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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