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거지를 잇는 ‘스타트업거지’ 행태 보고서
8월 12, 2015

정의

[블로거지]
블로거와 거지의 합성어로, 무전취식 등으로 자영업자들을 울리는 블로거를 말한다. 블로거지는 파워 블로거를 사칭하는데, 주 공격대상은 소상공인이다. 블로거지는 카메라를 들고 카페, 횟집, 와인바 등을 찾아가 공짜로 음식을 먹는다. 2012년 한 와인바에 와인 동호회 회장이 “와인 한 박스를 들고 와 마시겠다. 코키지(손님이 와인을 들고 와서 마실 때 내는 서비스료)는 무료로 해달라”라고 요구한 사실이 트위터에 퍼지면서 ‘동호회거지’라는 말도 나왔다. - <트렌드 지식사전, 2013.08>

[스타트업거지]
스타트업과 거지의 합성어로, 무전외주요청이나 무단도용 등으로 창작자들을 울리는 스타트업을 말한다. 스타트업거지는 열정 있는 청년 벤처를 사칭하는데, 주 공격대상은 프리랜서 창작자들이다. 스타트업거지는 주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로 웹툰 작가 혹은 '네임드', '존잘러' 들에게 '제가 팬인데요'로 시작하는 메시지를 보내 투자 차원의 저작권 혹은 저작물을 구걸한다. 2015년 한 스타트업 대표가 "가벼운 홍보 디자인을 부탁드리고 싶다. 돈이 없어 페이를 못드리니 작가님 좋아하시는 고양이 먹이로 비용을 지불하고 싶다"고 요구한 사실이 트위터에 퍼지면서 '그 회사는 꼭 쌀 떨어지면 고양이 사료 먹어라'라는 비난을 받았다. - <비석세스, 2015.08>


케이스 스터디

1. 페이는 고양이 사료로 드리겠습니다, 집사공략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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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동에 사무실이 있는 신생회사는 한 웹툰 작가에게 회사 로고를 포함한 BI 작업을 새벽 시간에 페이스북 메시지로 요청했다. 해당 사건은 일을 당한 작가 본인이 아니라 분개한 지인인 윤석원 웹툰 작가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뷰티풀 군바리'를 연재하고 있는 윤석원 작가가 8월 1일 본인의 페이스북에 게시한 글은 8월 12일 현재 689개의 좋아요와 182개의 공유를 기록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이 스타트업의 못난 행태에 대해 "일해달라하고 웬 고양이 사료 커미션", "고양이 사료 살 돈은 있고 인건비 줄 돈은 없나", "배짱이 깡패다"라며 비난하고 있다.

2. 표현 방식에 영감을 얻었지만 도용은 아니다, 김상혁형 

'오디션'으로 최고 만화가 대열에 오른 천계영 작가는 최근 '좋아하는 사람이 근처에 오면 알람을 울려주는 앱'을 소재로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을 연재 중이다. 그런데 어느 날 웹툰 속 앱인 '좋알람'이 실제 출시됐다는 제보가 들리기 시작했다. 천계영 작가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웹툰 팬들은 유사한 UI와 컨셉을 가진 '좋알람'이 당연히 천계영 작가와의 논의 하에 출시됐다고 착각했다. 개발사인 소개요가 자사 페이스북을 통해 웹툰에 등장하는 문구와 이미지 등을 홍보에 공공연하게 사용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다음웹툰 '좋아하면 울리는(천계영 작)'에 등장하는 좋알람과 같이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라는 노골적인 설명과 함께 웹툰 링크를 개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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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천계영 작가가 공식 항의하고 앱 명칭과 세부 사항 수정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소개요 홍진만 대표는 "일부 표현 방식에 영감을 얻었지만, 대부분의 기능은 2년간 자사가 개발한 것"이라고 변명하며 앱 이름 변경 요청을 거부했다. 오히려 천계영 작가에게 앱 이름의 라이센스를 허가해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

천계영 작가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소개요에 라이센스를 허락할 수 없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 웹툰 속 앱의 기능은 현실에서 정확하게 구현될 수 없다. 현재 소개요 앱의 경우 주소록에서 수동으로 나를 지정한 사람이 근방에 있을 경우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반경 10m 안에 있습니다'라는 알람을 준다. 그러나 이는 웹툰 속 환타지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가짜 마음'에 불과하다. 주소록에 자신을 지정해놓았다는 것만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정확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째, 이에 따라 앱이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셋째, 지금까지의 행태를 살펴볼 때 웹툰 작품을 사랑하는 팬들의 마음을 '소개요'라는 사업자가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천계영 작가는 발표한 성명서 말미에 팬들에 대한 애정을 담아 다음과 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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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2일 소개요 홍진만 대표는 자사 사이트를 통해 "앱명칭을 웹툰과 연관 없는 것으로 바꿀 예정이며, 향후 웹툰과 연관성 논란이 일 수 있는 마케팅 활동도 일절 없을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현재 '좋아요알람'은 '설레는알림-설림'으로 명칭을 바꾸고 구글플레이앱스토어에 등재되어 있다.

3개월 여 만에 논쟁 상황은 마무리됐지만, 소개요에 대한 여론 비판은 끊이지 않고 있다. 천계영 작가가 당분간 웹툰 연재 중단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지금은 꼬리를 내린 소개요 측이 천 작가와 팽팽히 맞서고 있었던 7월 13일경 웹사이트에 게시한 입장 변론 글에서는 여지없이 이런 표현이 등장한다. '저희는 가진 것 없는 스타트업입니다...' (이하 생략)

스크린샷 2015-08-12 오전 10.52.08▲소개요가 훔친 이름을 바꿀 수 없었던 이유(같지 않은 이유)

3. 티켓 좀 주세요, 능글구걸형

본지는 매년 2회 스타트업 컨퍼런스인 '비글로벌(beGLOBAL)' 행사를 개최한다. 특히 매년 5월경 서울에서 개최되는 행사를 준비하는 동안 능글구걸형 스타트업을 자주 만나게 된다. 올해에도 연례행사처럼 크고 작은 스타트업의 티켓 요청 문의가 빗발쳤다.

응대를 담당했던 내부 매니저에 따르면 A 스타트업은 경연 대회의 최종 기업으로 선정되어, 기존 18만 원짜리 입장 티켓을 7만 원으로 할인받았다. 그런데 팀원 중 한 명이 학생이라는 이유로, 추가 할인을 요구해 몇천 원에 티켓을 살 수 있냐고 문의를 해왔다. 해당 직원이 학생임을 증명하는 재학증명서 등의 서류 제출도 없었다. 결국 결제를 취소하고 기본 할인가에 티켓을 구매한 이 스타트업의 만행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비글로벌 행사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친한 B 스타트업을 데려와 무작정 150만 원 상당의 부스 비용과 티켓 비용을 깎아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매니저가 거절하자, B 스타트업의 대표는 밤낮없이 개인 카카오톡과 전화로 할인을 요구했다. 결국 끊임없는 구걸에 특별한 이유도 없이 할인된 가격에 부스를 판매해야만 했다. 스타트업 뿐 아니다. 자금적으로 전혀 부족함이 없는 벤처캐피털, 정부 기관, 대기업 측에서도 매년 무료 티켓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탈 스타트업거지를 위한 지원 프로그램 안내


가난이 벼슬은 아니다

사람도 돈도 없다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안다. 초기 가난한 스타트업에게는 도움이 필요하고, 그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그러나 도둑놈 심보로 도둑질은 하지말아야겠다. 영화 '베테랑'의 황정민이 연기한 서도철 형사는 아주 멋있는 말을 했다.

"돈 없어도 X 팔리게 살진 말자"

가난을 벼슬삼고, 열정을 핑계삼는 일부 스타트업의 행태가 '블로거지'처럼 치욕적인 고유 명사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

* 추가(2015.08.14) : 천계영 작가가 지난 13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남긴 이번 사건과 스타트업 관한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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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새롬
노력과 겸손, 지혜가 담긴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찰싹찰싹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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