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에서 생긴 일 #1] 태국 스타트업 커뮤니티의 시초, 허바를 만나다
2014년 10월 10일

지난달 "Money without borders or barriers, as easy as sending an SMS”을 슬로건으로 걸고 있는 스타트업, 37코인스(37코인스)에 합류하게 되었다. 현지 파트너들과의 프로젝트를 위해 방콕에 머무르는 동안 이 팀이 둥지를 튼 곳은 태국의 대표적인 협업 공간이자 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중심부를 맡고 있는 허바(Hubba)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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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바는 방콕하면 흔히 떠오르는 여행자들의 거리 카오산 로드나, 시암 파라곤 같은 거대한 쇼핑몰들로부터 살짝 동쪽 외곽으로 비껴난 에까마이(Ekkamai)에 자리하고 있다.

허바가 문을 연 2012년까지만 해도 방콕, 아니 태국 전체에서 스타트업을 위한 협업 공간은 전무했다고 한다. 자영업자나 프리랜서들을 위한 카페형 협업 공간이 방콕에 한두 군데 있었을 뿐, 현재의 스타트업 커뮤니티나 일주일이 멀다 하고 열리는 스타트업 관련 행사들은 당시만 해도 꿈같은 이야기였다고 하니 대강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법 하다.

아이디어를 나누고 함께 일할 사람과 투자자를 만날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매던 스타트업 사람들에게 첫번째 커뮤니티가 되어준 허바의 창업자, 아마리트(Amarit Charoenphan)를 만나 허바의 뒷뜰에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대홍수와 함께 시작된 허바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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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바 이전의 아마리트는 사회적 기업을 위한 비영리기관에서 인큐베이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와 그의 팀은 사회적 기업들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사회적 영향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일에 몰두했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인큐베이션 프로그램에 참여한 40여 개의 사회적 기업 중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고 자리를 잡은 곳은 단 하나에 불과했다. 그는 그 이유를 '고객의 입장이 아닌 회사의 입장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놓았던 것'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갈팡질팡하고 있던 그에게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큰 변화가 다가온 것은 2011년이었다. 방콕에서 대홍수가 일어나면서 아마리트의 집과 사무실이 침수되었으며, 도시를 떠난 많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아마리트와 그의 가족들 역시 방콕을 떠나 사태가 진정되기까지 파타야에 머무르게 되었다.

전화위복이라고 했던지, 이 파타야에서의 몇달 간 아마리트는 기업가들을 도울 수 있는 새로운 사업에 대해 구상하게 된다.

"나에게 기업가란 모든 것이 모험인 상황에서 끊임없이 뭔가를 증명해 나가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를 현실로 바꿔내는 사람이다. 이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건 내가 줄곧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가치였다. "

2011년만 해도 방콕에는 3G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은 상태였고, 집에서 사업을 구상하던 그는 곧 집에서는 그 어떤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할 거란 사실을 깨달았다. 인터넷은 제쳐 두고라도 파타야에서 빌린 작은 집에는 대가족이 한데 모여 살았으며, 친척들이 항상 왕래했다. 잠시 책상에 앉아 있다가도 금세 쇼파에 드러누워 티비를 보는 자신을 발견한 아마리트는 곧 집에서 나와 카페를 일터로 삼기로 마음 먹었다.

"확실히 집보다는 훨씬 더 집중해서 일할 수 있었고, 밥 한 끼 가격과 맞먹는 커피 가격을 지불하면서까지 이곳에 모여드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와이파이는 자주 끊기기 일수인 데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떼를 지어 들어오기라도 하는 날에는 너무 시끄러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딱딱한 의자 탓에 등은 항상 아팠고 전원 콘센트를 찾는 일도 만만치 않았으며, 화장실에 갈 때마다 혹시 모르니 매번 짐을 바리바리 싸는 일도 고역이었다. 무엇보다 그곳에는 그 어떤 커뮤니티도 존재하지 않았다.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내가 어떤 장기적인 관계를 만들 수 있겠는가?"

자신의 이런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아마리트는 즉시 허바 프로젝트를 구상하기 시작했고, 방콕으로 돌아온 뒤 6개월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12년 6월에 허바를 열었다. 그리고 그는 첫 달 텅텅 빈 건물을 보며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몸소 깨닫게 된 흥미로운 사실은, 협업 공간은 절대적으로 모든 것이 커뮤니티와 관련된 것이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우리의 시설을 둘러보며 흥미로워 했지만, 막상 이 곳에 커뮤니티가 없고 이들을 위한 이벤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가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태국 스타트업 커뮤니티의 요람이 되겠다

명확하게 목표로 삼은 고객층이 없었던 아마리트는 우선 다양한 밋업들에 하나하나 참석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 밋업 주최자로부터 빌크(Builk)라는 테크 스타트업을 소개받았고,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그는 기술 기반 스타트업의 세계에 완전히 빠져들기 시작했다. 신선하고 획기적인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들이 실제로 사람들의 삶과 산업 지형을 바꾸어 놓는 모습들을 보며 그는 바로 이런 사람들을 후바로 데려오겠다고 결심했다.

“빌크는 싱가폴에서 열린 에셜론 컨퍼런스에서 우승한 태국 스타트업이다. 그 누구도 이 이름도 들어 보지 못한 작은 태국 스타트업이 컨퍼런스에서 우승할 것이라고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다. 빌크는 500스타트업으로부터 투자받은 첫번째 태국 스타트업이자 창업자인 파타이 파둥탄(Patai Padungtin)는 이 곳의 커뮤니티를 견인해 나가는 태국 스타트업계의 대부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바로 이런 사람들이 태국에서 더 많이 등장할 수 있도록 허바를 이끌어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썸즈업(Thumbsup)이라는 테크 블로그가 그들의 첫번째 밋업을 후바에서 열었고, 2012년 11월에는 첫 스타트업 위크엔드가 개최되면서 점차 허바에서 태국 스타트업 커뮤니티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협업 공간은 전세계적으로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2011년 600개, 2012년 800개, 2013년에는 3000개,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그 수를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이다. 디지털 노마드의 출현, 정보통신 기술, 기업가 정신의 보급, 이런 것들이 사람들이 일하는 방법과 일하는 문화를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기술 기반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배울거리를 찾아 다니며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되기를 희망한다. 이것은 기존의 산업에서 볼 수 있던 이전의 노동자들과는 분명히 다른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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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허바 이외의 수많은 협업 공간들을 방콕 여기저기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와 사시사철 따뜻한 날씨와 같은 자연적 조건들로 인해 방콕에서 일을 하러 몰려드는 디지털 노마드들을 위한 공동 주거 공간 역시 늘어나고 있다.

후발주자들과의 차별을 위해 현재 허바는 자체 엑셀러레이션 프로그램을 준비 중에 있으며, 다양한 종류의 프리-엑셀러레이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 건설자라고 생각한다. 이벤트와 시설은 수단일 뿐이며, 정말 중요한 것은 여기에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을 투자할 정도의 실질적인 가치를 더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 커뮤니티의 일원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브랜딩을 해나가는 것, 이 커뮤니티 안에서 동업자를 만나고, 투자를 받고, 피칭을 하고 미디어에 노출되는 기회를 얻고, 새로운 배움의 기회를 얻는 것들과 같은 것이다.”

태국 정부의 역할과 태국 스타트업의 미래

그렇다면 스타트업 생태계를 이루는 구성 요소로 빠질 수 없는 태국 정부의 역할은 어떨까? 아마리트의 말에 따르면 아직 태국 정부는 정보기술산업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과 기업가 정신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고 한다.

현재 태국 정부는 관련 부서를 신설 및 기존 부서와의 통합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나 실질적이고 장기적인 정보기술산업 및 스타트업 육성 전략은 전무한 상태이다. 예산 규모면에서도 열악하지만, 당장 시급한 스타트업에 대한 세제 혜택이나 기업가 비자를 신설하고 기존 비자 관련  규정을 완화하는 것과 같은 행정적인 움직임 역시 미미한 상태이다. 이로 인해 현재 다수의 태국 스타트업과 벤처 캐피탈들은 태국보다는 싱가폴에서 법인을 설립하고 회사를 운영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런 환경탓인지 독특하게도 현재 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예산을 들여 스타트업을 돕고 있는 곳은 거대 통신사들이다. 이들은 자사의 가입자들이 더 많은 데이터를 쓰도록 더 많은 콘텐츠를 원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앱 개발사들에 대한 투자로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공공의 이익보다는 사기업으로써 철저히 이윤을 위해 움직이고  있고, 관심 분야 역시 한정되어 있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도움이 될지 어떨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이제는 우리가 어떻게 이 생태계를 이끌고 갈 수 있을 것인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태국 청년들이 이 전세계적인 흐름에 발맞춰 움직이도록 도울 것인지를 고민하고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할 때다.”

아마리트는 최근 10명의 공동 창업자들과 함께 태국 테크 스타트업 어소시에이션(Thai Tech Startup Association)을 설립했다. 태국 각지에 퍼진 스타트업 커뮤니티를 모으고, 이들의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하고, 다양한 워크샵을 개최하고, 정부에 태국 스타트업의 대변인으로서 각종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 이들의 주요 임무이다.

태국 스타트업 커뮤니티의 요람 역할을 해온 허바가 앞으로 어떻게 이 생태계를 견고하게 성장시켜 나갈 것인지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허바에서는 매일 저녁 다양한 이벤트들이 열리고 있으므로, 태국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꼭 들러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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