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당선과 미국 이민 정책의 변화 : 이연수 변호사의 로스쿨 인 실리콘밸리
2016년 11월 21일
1900년 경의 뉴욕 맨해튼의 이민자 밀집지. 트럼프의 할아버지 프레데릭(Frederick Trump)은 1885년 독일에서 미국으로 건너왔다.

1900년경의 뉴욕 맨해튼의 이민자 밀집지 풍경. 트럼프의 할아버지 프레데릭(Frederick Trump)은 1885년 독일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호텔과 식당을 운영한 이민자이자 사업가였다.

미 대선에서 예측을 깨고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사전조사에서 힐러리가 트럼프를 앞서고 있었기 때문에 트럼프 지지자들은 물론 트럼프 자신도 당선을 예측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미국은 트럼프의 당선을 두고 환영하는 쪽과 저항하는 쪽으로 양극화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캘리포니아는 민주당 지지자가 많은 지역이고 트럼프에 대한 반감도 매우 크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한 것처럼 미국 연방정부에서 따로 떨어져 나라를 세우겠다며 '캘엑시트(Calexit)'를 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전세계가 트럼프의 파격적 공약과 앞으로의 행보를 염려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미국 안과 밖에서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 중 하나는 그의 당선이 이민법에 미칠 영향이다.

1. 국제 기업가 규정은 실행되기 어려울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오바마 정부나 힐러리 클린턴이 속한 민주당이 비자나 영주권 이슈에 우호적이고 트럼프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지난 칼럼에서 다뤘듯이 오바마 정부는 외국인의 미국 내 스타트업 설립을 장려하는 규정을 얼마 전 발표했다. 미국 비자 없이도 최대 5년간 임시 체류를 가능하게 한 것으로, 국제 기업가 규정(International Entrepreneur Rule)이란 이름이다. 하지만 트럼프 정권에서 이 규정이 실행될 가능성은 희박할 것 같다. 그는 오바마 정부에서 이미 시행해온 DACA, Dream 법안을 취소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리고 비자나 영주권 취득도 어려워지도록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아직 시행되지도 않은, 더구나 비자 없이 외국인이 미국에 머무르도록 허용하는, 제안서 수준의 규정은 당연히 시행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 H-1B 비자의 최저임금 기준이 상향되어 취업이 어렵게 될 수 있다

트럼프는 불법 입국한 외국인을 추방하고 미국으로 들어오는 외국인의 수를 줄이기 위해 비자나 영주권의 발급량을 줄이겠다고 말했었다. 특히, H-1B 비자 소지 직원에게 미국 회사가 지급하는 직종별 최저임금(prevailing wage)을 인상하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규모가 큰 회사들이라면 별문제가 없을 수도 있겠으나, 중소기업의 경우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하면서 비자 스폰서로서 직원을 고용하는 것이 부담될 수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일과 비자 발급량을 줄이는 것은 미국의 정부 기관 내에서 일정한 절차를 거쳐 동의를 받아야 하므로 그의 말처럼 당장 쉽게 실행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3. 비자와 영주권 심사가 더 까다로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H-1B의 최저임금 기준의 상향 조정과 발급량을 구체적으로 조절하는 것이 당장은 어렵더라도 비자·영주권 심사 전반은 까다로워질 것이다. 연방 정부가 "불법체류자를 내보내고 외국인이 미국에 거주하는 수를 줄인다"는 입장을 취하면 이민국과 입국심사국에서도 이 지침을 따르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비자 승인율이나 영주권 승인율이 낮아질 것이다. 회사는 직원의 비자나 영주권이 승인되지 않아서 일할 수 없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미국 내에서 다른 직원을 고용해야 하므로, 실업률을 낮출 수 있게 된다. 그간 미국은 국내 경기가 안 좋거나 실업률이 높아지면 실제로 비자와 영주권 심사를 까다롭게 만드는 방법을 공공연하게 사용해왔다. 당장 변화할 수 있는 부분이다.

4. 외국인이 범법행위를 해서 비자가 취소되거나 추방되는 일이 더 잦아질 것이다

실제로 학생 비자로 체류하던 외국인이 음주 운전에 걸려 비자가 취소되는 일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과거 범죄기록도 없고 혈중알코올 농도도 기준치를 살짝 넘었을 뿐인데 학생비자 취소 통보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 미국은 최근 들어 비자를 받고 거주하는 외국인의 범법행위, 특히 음주운전에 대해 비자 취소나 추방의 형태로 강경 대응을 해왔고, 이제 트럼프가 당선되었으니 그런 분위기는 더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여담이지만, 한국 사람 중 음주 운전에 걸렸다면서 문의하는 경우가 많은데 미국에서 음주운전은 매우 심각한 범법행위이고 때에 따라 살인죄의 혐의를 부여하기도 하므로 주의해야한다. 한 번 비자가 취소되거나 추방되면 다른 종류의 비자를 신청해도 발급을 받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상기하길 바란다.

5. 밀입국한 불법체류자 추방은 점진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멕시코에서 국경을 넘어 밀입국한 멕시칸들이 상당수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그 수도 많이 늘어 국경 보안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트럼프는 멕시칸의 사례처럼 적법한 입국 절차를 거치지 않고 밀입국해서 미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등 불법으로 거주하는 사람들을 모두 미국 밖으로 추방(deport)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밀입국한 불법체류자 모두를 추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한계가 있는 공약이다. 이미 미국인보다 인건비가 싼 외국인의 노동력을 사용하는 비즈니스들이 많아서 그들이 모두 빠져나가게 되면 운영에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당선 후 트럼프는 '60분(60 minutes)'이라는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범죄 기록이 있는 불법체류자 300만 명가량을 즉시 추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일부 주, 혹은 시 담당 공무원들은 그 불법체류자라도 가족을 갈라놓지는 않겠다면서 반발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편으로는 불법체류자를 하나하나 찾아내고, 거주지로 찾아가고, 실제로 추방하는 등의 절차를 진행하려면 경찰관이나 법률집행자를 동원해야만 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많다. 그래서일까? 얼마 후 트럼프는 즉시 추방할 외국인 체류자의 수를 많이 낮추겠다고, 입장을 조금 부드럽게 바꾸었다. 그러나 그의 임기 내에 상당수의 불법체류자가 추방되는 일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6. 멕시코-미국 간 국경 보안이 강화되고 추가로 벽이 설치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멕시코와의 국경에 벽을 세우고 이 비용을 모두 멕시코가 부담하도록 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벽을 국경 전체에 세우려면 미화 150억 달러(한화 약 16조 원)가 넘는 비용이 들 것이고 이를 관리하는데에도 큰 비용이 필요하다. 모든 비용을 멕시코 정부가 부담할 가능성도 없고, 반대로 미국이 벽을 전부 다 쌓는 것도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 당선 후 트럼프는 일부라도 벽을 쌓고 나머지는 탑으로 대신하겠다는 등의 대책을 내놓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별로다. 현실적으로는 지금 수준에서 국경에 벽을 좀 더 세우고 국경 보안을 강화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미국으로의 밀입국도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트럼프의 이민법에 대한 입장이나 외국인에 대한 적대적 입장은 선거 공약을 발표하던 시절보다는 조금 덜하다. 아무래도 그가 당선된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검토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일정 부분에서 현실에 부딪혔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내용 그대로를 모두 실행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당선으로 인해 한국인이 미국으로 입국하거나 거주하는 데 필요한 심사과정은 결국 더 까다로워지는 방향으로 변화할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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