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최은석 (1973 ~ 2012)
2012년 02월 22일

故 최은석 (1973 ~ 2012)

이번 주 beSUCCESS 컨텐츠의 방향을 기획하는 도중 비보를 듣게 되었다.

유망한 한 청년기업가의 죽음.

D’strict Holdings 라는 크로스 미디어 에이전시의 대표인 故 최은석 대표의 죽음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정현욱 편집장과 나는 곧 우리나라의 젊은 기업가들을 위한 미디어를 비전으로 하는 beSUCCESS가 그의 죽음을 기리는 것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막막한 일이었다.

고인과 개인적 교류도 없었고, 더욱이 그가 몸담았던 비즈니스인 크로스 미디어에 대해 전문가도 아닌 우리가 어떻게 그를 기릴 것인가 하는 것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업계에 있는 몇몇 지인들에게 묻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 단편적인 수식어들, 즉 4D, 디지로그, 크로스 미디어 플랫폼, 과거 국내 플래쉬(Flash animation) 일인자 등과 같은 키워드들을 들을 수 있었다.

올해 39 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故 최은석 대표(1973 ~ 2012), 내가 들은 이야기들에 따르면 지방 출신의 그는 경희대학교를 중퇴하고 전산병으로 입대하여 처음 컴퓨터를 접하였다고 한다. 그가 군에 들아갔을 무렵, 그러니까 1992년을 떠올려보면 당시 그가 접하게 된 컴퓨터는 16비트(286)에 2MB RAM, 80MB짜리 HDD, 그리고 Windows 3.1 정도였을 것이다. 그렇다. 모두 GB가 아니라 MB이다! 그리고 당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정도의 컴퓨터라도 군에 가야만 접할 수 있었던, 그런 시대였다. 20대 초반의 독자들이라면 기억조차 없을, 그런 ‘향수’를 불러일으킬만한 컴퓨터에 그는 매료되었던 것이다.

제대 후 그는 그의 열정을 좇아 월급도 없이 작은 인터넷 기업에 취직해 본격적으로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1997 년, 당시 한참 붐이던 인터넷 홈페이지 구축 사업에서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기관의 인터넷 홈페이지 개발을 수주하면서 그는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2000 년, 드디어 그는 선택에 기로에 서게 된다. 그의 웹사이트 포트폴리오에 주목한 삼성 벤처캐피털이 그에게 투자를 제안한 것이다. 그렇게 그는 사업가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고 한다.

얄궂게도, 그가 처음으로 컴퓨터를 접한 후 꼭 20 년째가 되는 2012년, 그는 그 커다랬던 열정을 내려놓은 채 안타깝게도 생을 마감했다. 물론 내가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에, 나에게는 그의 D’strict에서의 업적들이 최초다 아니다, 혹은 좋다 나쁘다를 논할만한 자격이 없다. 그러나 그런 나라도 故 최은석이라는 인물이, 그의 40 년도 채 되지 못한 짧은 생을 통해 우리의 삶을 분명 보다 다채로운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는 것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술(3D)에 네 번째 차원, 즉 아날로그적인 감성(감각)을 입히는 것이 (그의) ‘4D’”라 정의하고 그와 사랑에 빠졌던 그는, 분명 그의 짧은 생을 통해 우리의 삶에 그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감각과 경험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자살’이라는 안타까운 결말로 끝난 그의 삶을 놓고 호사가들은 벌써 그의 죽음이 우리나라 벤처의 문제다 아니다라는 이야기까지 내놓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삶을 다채로운 것으로 만들고 싶어 ‘고생을 자처하는’ 젋은 동료 사업가들에게, 그의 삶을 통해 그가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보다는 훨씬 뜨겁고 신나는, ‘열정’이나 ‘비전’과 같은 것들은 아니었을까를 생각해본다.

그의 삶을 통해 그는 우리들에게 “20 년 간, 한 가지 열정을 위해 달려갈 수 있는가?” 라고 묻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열정을 좇아 커다란 비전을 세우고, 환경이 어떠하던 그것을 위해 끊임없이 실력을 기른다.”

그가 처음 열정을 가진 컴퓨터는 결국 지금 우리의 눈에는 하찮기 그지없는 그런 것 아니었던가.

모두가 알고 있으나 그 모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바로 이 “기본”이라는 것을 “실천”이라는 가장 뜨거운 감성으로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그의 짧은 생애를 지금에나마 되짚어 보며, 그를 전혀 알지 못했던 나임에도 무엇인가 뜨거운 것을 가슴 한 켠에 느낀다. 바로 그 때, 나는 뜻밖에도 간디(Gandhi)의 다음과 같은 말을 떠올렸다.

“My life is my mess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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