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 기업가에서 파산한 신용불량자로 7년, <파산>의 저자 이건범 대표가 말하는 실패의 가치
2015년 01월 16일

점심을 먹기 위해 사무실을 나선 직장인들로 거리가 북적이는 태헤란로의 12시,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서 조금더 뜻 깊은 점심시간을 갖는 자리가 마련됐다.  파산의 저자인 이건범 대표를 모시고 “선배 벤처인으로부터 듣는 실패 이야기”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파산'의 저자인 이건범 대표는 디지털 콘텐츠 기업 아리수 미디어를 세워 매출 100억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리한 투자 이후 회사가 어려워 지며 직접 회사 문을 닫고 파산한 신용불량자로 살아가기도 했다.  '테헤란로 점심 모임'에서 이건범 대표가 전한 말을 옮겨본다.

'파산'의 저자

'파산'의 저자 이건범 대표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우리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태어나진 않는다. 창업도 마찬가지다. 사업을 시작할 때 “우리 회사는 망할 거야”하고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 어느순간 뉴스에서 소식을 접하고 주변 사람들이 망하는 것을 보며 그때야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때도 내일은 아니겠지 하고 생각한다.

사람이 죽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것이다. 기업이 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왜 기업은 영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망할 수 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도 처음부터 이것을 알았던 것은 아니다. 책을 쓰기 위해 내가 왜 망했는지 분석해보고 고민하다 보니 ‘아, 당연하게 망할 수 있는 거구나’라고 깨달을 수 있었다.

 

"사업 왜 하는가?" 사장에게는 신념이 필요하다

나는 1994년 사업을 시작했다. 93년 3월, 김영삼 대통령 취임 특사로 감옥에서 풀려났다. 나는 눈이 나빠서 군대를 면제받았는데 남들이 군대 가는 것 이상으로 감옥에서 지냈다. (웃음) 나올 때 사업을 해야겠다 생각을 했다. 왜 사업을 하려고 했을까?

사업을 왜 하는가? 돈을 벌려고 하는가? 그것은 당연히 전제돼 있는 것이니 이것 외에도 사업의 이유와 목적에 대해 고민을 해봐야 한다.

내가 세상에 사업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던, 돈을 벌어서 무엇을 해보겠다던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창업의 이유가 회사를 경영해 가는 하나의 신념이 된다. 신념이 있으면 문제가 발생해도 좀 편해질 수 있다. 판단과 결단을 내릴 기준이 돼 주기 때문이다.

 

나의 창업 신념 세가지

첫번째,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기업 경영에서 성공할 수 있다

내가 사회운동을 하기도 했고 기업에 대한 정서가 별로 좋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기업이 나쁜 짓을 하는 대명사가 돼 있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착한 기업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더 정의로운 사회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민주적 의사소통이 개인능력과 업무효율을 높여줄 것이다

1987년 까지만 해도 대기업 여직원들은 바지를 못 입었고 결혼을 하면 무조건 회사를 그만뒀다. 파업 투쟁 요구사항으로 남자 노동자들의 두발 자유화가 언급되던 시기다. 여전히 상명하복이 중요했으며 회사의 분위기가 경직적이었다. 나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업문화가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세 번째, 기업과 개인의 가치를 추구하며 열심히 뛰다 보면 돈은 따라온다

기업이 내거는 가치를 열심히 추구하고 일하다 보면 돈은 따라오지 않겠느냐는 순진한 생각을 했었다.

창업하고 7년간은 이 세 가지 신념을 철저하게 지켰고 잘 됐었다. 그 이후 이 신념이 흔들리며 사업도 힘들어졌다.

 

나는 왜 망했을까?

첫 번째, 변신의 어려움과 사회적 운

세상은 변하는데 사업체의 변신은 쉽지 않다. 내 사업아이템은 전도유망하다 생각한다. 그래서 시작한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오래가지 않는다. 많은 기업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진다. 그 많던 도토리는 누가 다 먹었나. (웃음)

변신이 쉽지 않은 것은 이미 내가 한 사업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분야에 발을 담그고 있으며 그 분야에 최적화된 사람들이 모여있다. 그래서 변신을 하려면 더 큰 투자가 필요한 것이다. 작은 기업에게 이게 쉽지 않다. 세상이 이렇다는 것을 알고 고민을 하면 대처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힘의 노예, 힘의 주인

커다란 힘의 주인이 되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있다. 큰 힘을 얻으면 누구에게 굽실대지 않아도 된다. 나의 신념은 내가 사회운동을 하며 추구했던 것을 사업을 통해 좋은 사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2000년대 벤처 열풍이 불며 이러다가 내가 뒤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빨리 힘을 얻고 싶었던 거다. 그렇지 않으면 그나마 가지고 있던 힘까지 놓칠 것 같았다. 그러면서 신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돈은 따라오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투자자들도 찾아다니고 내가 돈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신념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과와 성과를 내세우며 의사소통, 문화를 경시했고 새로운 문화가 생겼다. 선택에 있어서도 흔들리다 보니 사람이 왔다 갔다 하게 되더라. 우유부단해진 것이다. 사장이 그렇게 되면 조직은 쓰러지게 돼 있다. 힘의 노예로 전락한 것이다. 그러면 이상한 을이 된다.

 

사장의 이 걸어가는 남다른 길

실천으로 획득한 권위

사장은 권위가 필요하다. 그런데 권위와 권위주의는 참 다르다. 권위주의는 권위를 앞세우는 것을 말한다. 권위는 실천을 통해 획득되는 거고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확인되는 거라 생각한다. ‘내가 사장이니까 시키는 대로 해’가 아니라 당연하게 사장님의 행동, 실천, 말씀이 직원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

일을 하다 보면 이유를 더이상 묻지 못하고 명령에 따라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서로가 설득하기 힘들 때 이렇게 된다. 그런 경우 이전에 그 사람이 보여줬던 활동, 실천에서 믿음을 갖고 있으면 자연스레 문제가 해결된다.

내가 가장 똑똑하지 않은데도 사장을 해야 한다

사장보다 더 똑똑한 놈들이 들어온다. 기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영업, 조직 관리에서조차 똑똑한 직원들이 참 많다. 조직이 커지면 각 분야의 전문성이 필요로 하게 되고 사장도 모든 것을 다 헤아릴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사장은 ‘내가 제일 똑똑한 게 아닌데 사장질을 해야 하는 건가’하는 고민을 할 수 있다. 이것을 기억하라. 그들을 이끌려고 노력하다 보면 당신도 똑똑해진다. 똑똑한 직원을 겁내거나 내보내려 하지 말고 어떻게 같이 잘 일 할지를 고민하자.

사장은 혼자서 밥을 먹을 줄 알아야 한다

전화를 받고 돌아보니 다 나가고 없다. ‘이 자식들이’ 하지 말고 혼자 밥 먹을 줄 알아야 한다. 사장은 결국 마지막에는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져야 한다. 사장의 자리가 그런 외로운 자리다. 그래서 평소에 그 외로움을 충분히 익히고 외로움 속에서도 외롭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외로움을 익히는 방법은 혼자 밥을 많이 먹는 것이다.

외로운 처지에서도 외롭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단순하다. 내 결정을 믿고 이해해줄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 물론 열 명, 백 명이 있다면 덜 외롭겠지만 한 사람은 꼭 필요하다.

 

사장이 꼭 들어야 할 조직운영 관련 이야기

우리 회사의 장점을 사랑하라

단점을 없애기는 쉽지 않다. 매일 단점을 봐야 하니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단점을 들여다볼 시간에 장점을 키우는 데 집중하자. 우리의 장점이 뭘까? 그 장점은 왜 생겼을까를 고민해 회사를 키우는 주요 동력으로 사용하자. 회사 사람들도 신이 나서 일을 할 것이다.

아리수미디어의 장점은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분위기가 자유롭다 보니 좋은 아이디어들도 많이 내놓았다. 특히 술자리에서 아이디어가 나와 술김에 같이 발전을 시켜가곤 했다. 이렇게 직원들의 이야기를 사업에 반영시키는 것은 직원들의 자발성을 키우는 데에도 좋았다.

실수를 두려워 말되 계속 받아주지도 말라

사람은 시행착오를 통해 배운다. 타산지석, 남의 경험으로 배우기 쉽지 않다. 이미 일이 벌려진 다음에야 남의 경험이 생각난다. 실수를 해봐야만 비슷한 실수를 하지 않게 된다. 최근 크게 히트한 미생을 보니 실수를 두 번 하면 실력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던데 나는 세 번까지 참았다. 한국은 삼세판이다. (웃음)

그런데 세 번이 넘어가면 그냥 두면 안 된다. 이런 친구들 내보냈다. 실수한 줄 모르고 있으면 계속한다. 정확하게 반성할 수 있는 구조를 회사가 갖춰야 한다. 하지만 이게 너무 강해서 사람들이 과감한 도전을 꺼리게 되면 또 안 된다.

선배와 후배의 인식격차를 좁혀라

회사가 커질 때 서른 명까지는 그동안의 경험을 공유한다. ‘내가 옛날에 물건 파려고 이렇게 고생을 했어’라고 무용담을 전하곤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조직의 규모가 커지면 그게 이어지지 않는다. 역사를 모르니 주문이 당연히 들어오는 줄 알고 고객은 앉아있으면 찾아오는 줄 안다. 그냥 되는 건 없다. 이렇게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며 업무뿐만 아니라 회사의 신념체계, 문화 강점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또 중요한 것이 조직을 차분 차분히 키워가는 것이다. 급격하게 조직이 확장하면 인식격차가 생기기 마련이다.

2001년 초 우리 직원이 50명쯤 됐다. 8년 차 된 회사치고는 꾸준하게 조금씩 직원을 늘려 비교적 직원 사이의 인식격차가 크지 않았다. 그런데 2001년 말 80명이, 2002년 6월엔 120명이 됐다. 이쯤 되면 얼굴도 모르는 직원이 생긴다. 어느 날 보니 학교에서 내 작이던 친구도 회사에 있더라. 이 친구는 그전 4개의 회사에 다녔었는데 모두 망했었다. 사적인 자리에서 ‘네가 들어가면 회사 망하는 거 아니냐’하고 농담을 나누곤 했는데 그 친구가 우리 회사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4년 후 우리도 망했다. (웃음) 그릇에 더 담기 전에 더 큰 그릇을 사거나 더 높게 쌓아야 한다.

 

이 상황에서 그대로 과거로 돌아간다면?

우리나라의 결혼한 성인남녀 중 ‘다시 태어나면 배우자 지금의 배우자와 다시 결혼하겠는가?’는 질문에 남자는 40%가, 여자는 20%가 지금의 배우자와 다시 결혼하겠다고 답했다. 내 아내가 내게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 무슨 대답을 해야겠는가? (웃음) 이 질문의 정답은 ‘너와 하겠다’겠지만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웃음)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나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파산도 했고 신용불량자로 7년을 살며 힘든 일이 많았지만, 지금 이렇게 작가가 됐다. 돈을 많이 벌진 않지만 지금 이렇게 작가를 하고 있는 이 삶이 즐겁고 행복하다. 다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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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임정욱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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