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관람가 18. <마션> 로켓이 뜨는데 필요한 조건
2016년 06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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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션>을 다시 보고 났더니 감자가 참을 수 없게 먹고 싶어서 쪄왔습니다. 다행히 집에 감자가 좀 있네요. 영화 속 와트니(맷 데이먼)처럼 김이 모락모락 나는 통감자를 케첩에 찍어 먹으며 지금 이 원고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맛있냐고요?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감자는 사랑.. 아니 감자는 생존입니다. 와트니 생의 지속가능성은 오로지 감자에 달려있었죠. 사고로 혼자 화성 탐사기지에 조난당한 와트니는 감자를 키우기 시작합니다. 동료들이 구하러 돌아올 때까지 살아있으려면 먹을 게 있어야 했거든요. 와트니의 생존전략은 팀원들이 남기고(?) 간 인분을 이용해 화성기지 안에서 감자를 재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참신한 설정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죠. 그 어느 때보다 ‘생존’이 화두인지라 스타트업 업계 사람들에게도 이게 무척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와트니 법칙’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니까요. '퍼스트라운드캐피털(First Round Capital)'의 벤처 투자자 조시 코펠만(Josh Kopelman)은 영화를 보고 나서 펀드출자자들(LP)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우리는 마션의 마크 와트니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우릴 구해줄 새 감자들을 실은 수송선이 오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는 더 이상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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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 코펠만의 트윗

'투자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외부자금에 의존한 사업은 이제 생존이 어렵다', 그러므로 '스타트업들은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 이런 요지의 말이었습니다. 전 잘 모르긴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 말이 점점 더 분명한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내외 할 것 없이 폐업소식을 접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어서요. 그중엔 테크크런치 스타트업 경연대회 우승자나 투자를 유치하며 화려하게 떠오르던 곳들도 있는 것 같네요.

"우리는 와트니처럼 행동해야 한다"라는 말 속엔 투자시장의 날씨가 얼마나 안 좋은지에 대한 위기감이 녹아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악착같이 자구책을 마련하던 와트니의 모습을 그래서 더 유심히 봤을 것 같네요. 영화 속 와트니는 최악의 환경에서도 어떻게든 스스로 생존할 방법을 찾아 나섭니다. 먼저 현재 자신이 가진 자원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합니다. 그에 맞춰 주어진 자원과 전문분야를 극대화해 장기적인 생존계획을 세우죠. 그리고 계획에 맞춰 하나씩 실행에 옮깁니다. 계획이 틀어지면 다시 이 프로세스를 반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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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것 같습니다. 저 미국 벤처 투자자 형의 말처럼 이제 스타트업들에게 자생적인 지속가능성을 만드는 일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된 것 같습니다. 셰릴 샌드버그(Sheryl Sandberg)의 축사 이후로 스타트업은 자주 로켓에 비유되곤 하는데요. 스타트업이 자구책을 갖추는 일은 로켓을 띄우는 과정에도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로켓이 뜨려면 두 가지 선결 조건이 있습니다. 일단 무거운 몸체를 공중에 띄워야 합니다. 이어 이륙에 성공한 후에는 대기권을 벗어날 수 있는 탈출속도를 갖춰야 합니다. 잡아끄는 지구 중력을 뚫고 우주로 나가려면 초속 11km 이상의 속도가 필요하다고 하는데요. 대략 홍대에서 한양대까지 1초에 날아갈 수 있어야 지구를 뜰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선결 조건 때문에 로켓은 3단 추진 형태로 구현되었습니다. 커다란 두 개의 연료통을 차고 떠서 우주로 나가는 데 성공하면, 로켓은 그제야 자체 연료를 태우며 항해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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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비유대로 스타트업이 로켓이라면 스타트업의 3단 추진요소는 뭐가 될까요. 저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저는 첫째는 사람, 둘째는 끝까지 가보려는 의지, 셋째는 지속가능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중 가장 중요한 건 세 번째인 것 같습니다. 지속가능성, 혹은 생존이라는 요소가 갖춰져야 뭘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살아만 있으면 의지는 다시 충전할 수 있으니까요. 또 좋은 사람을 만날 기회는 무척 귀하지만, 생존이 선결되지 않는다면 그 작은 기회조차 영영 오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3번 연료통은 의지, 2번 연료통은 지속가능성에 다시 비유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초반의 마법 같은 의지와 열정은 스타트업이 일단 이륙에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어떤 벽에 봉착하게 되죠. 이때 지속가능성이 없다면 그 벽을 넘을 탈출속도를 얻지 못하고 고꾸라집니다. 벽을 뚫고 나아가는 건 이 두 가지 선결 조건을 갖춘 로켓에만 해당하는 일이겠습니다. 미지의 영역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는 일은 그 안에 탄 사람들만의 특권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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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로켓을 우주로 보내는 일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돌아보면 인류는 로켓을 띄우기 위해 그간 수많은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수차례 공중에서 폭발하는 아픔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스타트업이라는 로켓도 성공까지 가는 동안 실패들을 겪어야 합니다. 대부분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하거나 안다고 착각하고 시작하니까요. 대부분의 경우라면 첫술에 배부르긴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그 실패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자구책을 마련하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닌가 합니다. 자체서비스로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있으면 최고겠죠. 만약 그게 안 되면 외주개발을 하든 강연료를 받든, 어쨌든 자생적으로 유지할 방편을 마련해야겠습니다. 망하지 않고 계속 갈 수 있는 구조만 갖추면 어쨌든 언젠가 기회는 오게 마련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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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이 자체서비스 안 하고 다른 일 하면 자존심 상해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꼭 그럴 필요가 있는가 싶어요. 자구책을 갖추는 일이라면 시간이 소요된다 한들 결코 돌아가는 게 아닌 것 같아요. 폼 안 나고 투박하더라두요. 외주를 하든 뭘 하든 어쨌든 제대로만 하면 거기서 배울 점은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미지 출처 : Twentieth Century Fox Film Corporation.

김상천 coo@slogup.com 슬로그업의 영화 좋아하는 마케터. 창업분야 베스트셀러 '스타트업하고 앉아있네'의 저자입니다. 홈·오피스 설치/관리 플랫폼 '쓱싹'을 운영하고 앉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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