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한 전자정부
2013년 05월 29일

Editor’s note : 배기홍 대표는 한국과 미국의 네트워크와 경험을 기반으로 초기 벤처 기업들을 발굴, 조언 및 투자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스트롱 벤처스의 공동대표이다. 또한, 창업가 커뮤니티의 베스트셀러 도서 ‘스타트업 바이블’과 ‘스타트업 바이블2’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어린 시절을 스페인에서 보냈으며 한국어, 영어 및 서반아어를 구사한다. 블로그 baenefit.com을 운영하고 있으며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스타트업 생태에 대한 인사이트있는 견지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스타트업과 창업자들을 위한 진솔하고 심도있는 조언을 전하고 있다. (이하내용 원문보기)

 

몇 달 전에 대한민국 정부민원포탈 '민원24'에서 처리해야할 일이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앞선 대한민국 정자정부" 시스템을 사용해 볼 기회가 있었다. 한국 정부의 IT 수준을 대략 아는 일인으로써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결국 일처리는 못하고 한 시간 동안 그냥 열만 받다 브라우저를 닫았다.

한시간 내내 민원 사이트에서 내가 한거라고는 끝없는 액티브 엑스 설치와 동일한 정보 입력이었다(해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아주 길고 복잡한 양식을 채운 후 [확인]을 눌렀을때 액티브 액스가 안 깔려서 설치를 하면 다시 그 양식을 처음부터 채워넣어야 한다). 한국 사이트에 어느정도 적응이 된 나였지만,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프로그램과 액티브 액스를 깔아본 적이 있을까? 심지어 민원 사이트에는 '민원24 이용에 필요한 프로그램 목록'을 제공하는데 여기에는 - 윈도우스 유저라면 - 18개의 프로그램이 나열되어 있다.

 

Minwon - ActiveX

 

사이트 하나 이용하는데 18개의 프로그램 설치라...짜증이 엄청 났지만 이미 30분 이상을 여기에 낭비했고, 선택권이 없었기 때문에 계속 깔고, 반복하고, 다시 깔고, 쌩쇼를 했다. 모든 관문을 다 통과했고, 기입한 양식을 출력할 시점에 알아낸 놀라운 사실 - 출력하기 위해서 무슨 보안 모듈을 설치해야하고 아무 프린터에서나 출력을 못한다는. 이 시점에서 나는 브라우저를 닫았다. 그리고 한 5분동안 쌍욕을 했다. 또한,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중앙행정부의 시스템이랑 서울시의 시스템과는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온라인으로 처리하려던 케이스는 어차피 출력을 해서 직접 담당부서로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점에 나는 미국의 정부 사이트 (FDA)에 몇가지 제품을 등록했다. UI로 따지면 미국 정부 사이트는 한국 정부 사이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박하고 저렴하다. 이미지는 없고 거의 텍스트 기반이다. 하지만, 지저분한 액티브 액스는 전혀 깔지 않아도 되고 인증서 기반의 로그인도 필요없다. 물론 인증서가 좋냐 안좋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나는 인증서 폐기에 동의하는 일인이다. FDA 사이트는 굉장히 매마르고 이미지 하나 없었지만 기본적인 기능에 충실했고 나는 15분 만에 제품을 등록할 수 있었다. UI는 한국 정부 사이트에 비해서 많이 뒤질지 모르지만 UX는 쓸만했다.

전자정부를 설계하고 정책을 만든 사람들한테 묻고싶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시스템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도대체 만들어 놓고 사용은 해봤는지. 한번이라도 사용을 해봤다면 이게 얼마나 불편하게 만들어진 시스템인지 깨닫고 뭔가 개선책을 만들법도 한데, 오히려 더 복잡해지는거 같다. 아니면 나만 이렇게 느끼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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