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라고 처음에 달랐을까?
2012년 12월 27일

하고 있는 업 때문에 필자는 (상대 업체의 크기와는 관계없이) 일로 누군가를 만날 때에는 감정적이 잘 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몇 주 전, beSUCCESS 팀과 함께 필자는 몇 곳의 스타트업을 만났고, 그 중 한 곳에서 그만 크게 감정을 드러내고 말았다.

(본 포스팅에 대해 해당 업체와는 조율된 사실이 없기에 실제 업체명은 쓰지 않기로 합니다)

A업체는 AR (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 Solution을 개발하고 있었다. 필자는 비록 기술을 잘 이해하지는 못하는 사람이지만 (많은 기술관련 스타트업을 만나고 있는) beSUCCESS 팀은 이 업체의 기술역량이 업계 최고수준이라 평가하였다. 이 A업체는 자신들이 개발한 AR 솔루션을 기업의 광고 솔루션으로 공급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문제는 다른 많은 스타트업들이 그러하듯 이 업체 역시 기술개발역량에만 초점을 맞춘 팀 구성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들이 진입하고자 하는 시장, 즉 이 경우에는 광고시장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식도 가지고 못하다는 것이었다.

사업은 기본적으로 비즈니스이다. 비즈니스라는 것은 우리가 바텀라인(Bottom Line)이라고 부르는 수익(매출과 비용 간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비즈니스는 ‘시장(Market)’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많은 초보 기업가(Entrepreneur)들이 ‘R&D = 시장’이라는 엄청난 오해를 가지고 있다.

R&D, 특히 기술 R&D는 시장에서 ‘팔아먹기 위한’ 상품의 절반을 개발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R&D를 통해 개발된 기술은 나머지 절반인 ‘상품화’를 거치고 난 후에야 상품이라고 불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상품은 포지셔닝 (Positioning)이라는 ‘시장진입’의 과정을 거쳐야만, 그것도 성공적으로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기업과 시장에 제대로 된 가치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R&D에서 시장 사이에는 정말 간단하게 말한다 할 지라도 최소한 두 단계의 간극이 존재하는 것이다. (R&D만 잘 되어도 이 과정이 상당히 간단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많은 스타트업이 R (Research)은 없고 D (Development)만 있기 때문에 이 간극은 더욱 커진다. 이는 추후에 별도로 다루도록 하겠다)

만약 이러한 간극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내 상품은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계속적으로 튕겨져 나오게 될 것이다.

결국 처음에는 야심차게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반 년, 혹은 1 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도 시장에서의 성과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개발에만 힘을 쓰다보니 게다가 영업인력은 어떻게 채용하여야 하는지, 어떻게 운용해야 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초기 자본금은 점점 고갈되어 간다. 생존을 위해 원치 않는 피봇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동안 산업은 발전하고 내 자산은 결국 아무도 원하지 않는, 쓸모없는 퇴물이 되어(Obsolete) 간다.

다시 A 업체로 돌아가보자. A 업체 역시 AR 기술에 대해서는 훌륭한 역량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시장인 광고시장과 그 시장 안에서의 생리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특히 B2B 시장에서는 내부자정보(Insider Information)을 가진 영업인력이 필수이지만 이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알고 있다고 해도 그런 인력을 데리고 올만한 자원이 없기 때문에 시장과 기술을 전혀 모르는 영업인력을 채용하였다. 이들은 매출을 올리지 못하고, 그렇게 매출이 없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충분한 급여를 제공하지 못한다. 결국 성과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영업인력은 고스란히 비용으로 남는다. 이렇게 매출은 없고 비용만 쌓여가는 시점에서 결국 생존을 위해 절박하게 투자유치를 모색하게 되지만 급격하게 변화하는 기술시장에서 특허만을 가지고 투자해줄 투자자는 없다. A 업체는 결국 기존에 두드리던 광고시장과는 전혀 상관없는, 조금 더 쉬워보이는 의류시장으로 눈을 돌렸지만, 이 시장 역시 제대로 알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이렇게 잘못된 피봇은 결과적으로 자원과 시간의 낭비만 가져오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시장에서 만약 A 업체가 빨리 판로를 찾지 못한다면 결국 이들의 기술은 퇴물이 될 것이고, 그 동안 쌓인 부채로 인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끌어내는 동안 필자가 감정적이 되었던 이유는, A 업체의 실수에 화가 났기 때문이 아니었다. 필자 역시 불과 몇 년 전에 정확하게 같은 상황을 경험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업체가 지금 얼마나 절박할지, 얼마나 큰 절망감을 느끼고 있을지 정확하게 이해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포스트를 읽고 계신 많은 스타트업들 역시 같은 경험을 하고 있거나, 혹은 하였거나, 앞으로 하게 될 것임을 안다. 특히 J. Moore가 이야기한 Chasm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하는 하이테크 시장의 스타트업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A 업체에게는 기술적인 조언보다 필자가 같은 상황을 돌파했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것이 어떠한 기술적인 조언보다 효과적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같은 조언을, 같은 상황을 겪고 계실 스타트업과도 공유하고자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창업가 스스로가 손을 더럽히는 것(get your own hands dirty)이다. 누가 기술을 직접 개발하는 이보다 그 기술을 더 잘 이해할 것인가? 따라서 해당 기술을 시장에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이는 그 개발자이다. 게다가 CEO의 임무는, 그것도 유일한 임무는 기업을 먹여살리는 것이다. 개발자 출신의 CEO라서 이러한 임무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그 개발자/CEO 자체가 그 기업의 상품일 수 있다. 직접 상품을 들고 시장을 뛰어라. 필자는 사업 초기에 구인구직사이트에서 필자의 업과 관계된 구인공고를 올린 업체들을 찾아 Cold Call을 하고 무조건 만나러 갔다. 이 임무를 하기 싫어 사람을 고용하는 CEO라면 재빨리 구직을 하는 편이 훨씬 낫다.

시장으로부터의 Feedback을 얻고, 그를 정확하게 이해하여야 한다. CEO가 직접 시장을 뛸 때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장점이 이것이다. 게다가 직접 개발을 하는 CEO라면 이 장점은 더욱 커진다. 내가 지금 개발하는 기술에 대한 시장의 Feedback을 “직접” 들어라. 그리고 그 Feedback을 통해 내가 가진 자산과 시장의 Needs를 일치시켜야만 한다. 필자 역시 Cold Call 후 직접 업체를 만나면서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적용할만한 사항은 바로 반영하였다. A 업체의 경우 CEO는 개발자였고 개발”만” 하고 있었다. 시장이 무엇을 원하는지 도대체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또, 스타트업인 주제에 CEO가 직접 뛰지 않는 업체를 시장은 심각하게 생각하게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고용을 하려거든 내 임무를 “대신”할 사람이 아니라 “보조”, “보완”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라. 그리고 반드시 그 시장을 아는 사람을 뽑아라. 기존에 Account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또, 절대로 부채로 영업인력을 고용하지 말아라. 사업을 하다보면 1 억이 큰 돈이 아니다. 사람 두 명 쓰면 없는 돈이다. 스타트업은 사람을 데려다 교육해서 부릴만한 여유가 없다.

극도로 Lean 하게 가야 한다. 또 이를 위해, 성과관리가 되지 않는 영업인력은 내보내라.

합리적으로 유연하여야 한다. 초기에 겨냥하였던 시장이 유일한 시장은 아니다. 오히려 초기에 겨냥하였던 시장에서 “약간” 빗나간 방향에서 시장이 발견될 수 있다. AR 광고 솔루션의 경우 지면광고 등의 전통적 광고시장 이외에 다른 많은 형태의 광고시장이 있을 수 있다. 실제 구현되는 모습을 재미있게 보여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 시장이라면 모두 잠재적 시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홈쇼핑에서 판매되는 교육보조재 업체 등이 매우 유망한 고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자산이 가장 큰 가치를 만들어 줄 수 있는 대상을 찾아 거기에만 집중하여야 한다.

합리적으로 유연하여야 한다는 말은 기존에 겨냥하였던 시장을 두드리면서 얻은 역량들이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시장만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A 업체가 새롭게 눈을 돌린 의류산업은 기존의 산업과 전혀 연관이 없다. 기술개발업체가 패션산업에 대해 무엇을 알 것인가?

고객은 항상 떠먹여줘야 안다. 대충 미끼를 던져놓고 알아서 물겠지 하는 태도는 망하는 길이다. 철저히 고객의 언어로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그것도 계속해서 전달하여야만 한다. Again, 이를 위해서는 CEO가 고객을 “직접” 이해하여야만 한다. 필자에게 아직까지도 가장 어려운 도전 중 하나는 새로 만나는 클라이언트가 ‘얼마나 알고 있는가’를 예상하여 거기에 맞게 Offer를 던지는 일이다. 애플의 TV 광고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

(beSUCCESS 팀으로부터)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라. A 업체의 경우 서울시 소재의 보육기관에 입주하고 있어 시설 안에 입주한 업체들과의 교류가 거의 전부였다. 외부에서 바이어, 투자자, 동료 기업가 등과 다양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모색하여야 한다.

(위에 필자 첨언) 스타트업 관련 행사 외에도 실제 비즈니스가 이루어질 수 있는 여러 행사를 적극적으로 찾아 참가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A 업체의 경우 스타트업 관련 행사 뿐 아니라 광고관련 다양한 행사에 참가하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성과를 못내는 영업인력을 데리고 있는 것 보다 이 편이 훨씬 큰 재미를 볼 수 있다.

질겨야 한다. 몇 번 만나고 나서 계약이 안된다고 ‘아 안되는가보다’ 하고 포기하면 당연히 그대로 안되는 채로 남을 것이다. 계속해서 스킨쉽을 가져가고 그 과정에서 Offer를 계속 수정해 나아가야 한다. 물론 이것이 그 업체와의 계약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최소한 다른 유사 업체와의 만남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고는 덜어줄 것이다.

A 업체를 만나고 난 후, 영화 트랜스포머에서 나온 Optimus Prime의 대사가 계속 머릿속에 머물렀다.

“우리라고 달랐는가? (Were we so different?)”

다시 말하지만, A 업체의 과정은 필자도 겪었고, 지금은 자리를 잡은 다른 많은 기업들과 다른 많은 스타트업 역시 겪었거나, 또 겪게 될 도전의 일부에 불과하다. 특히 창업 후 2 년차 정도 된 업체라면 이렇게 성과를 내지 못했거나, 혹은 성과가 정체되면서 발생하는 이러한 문제를 반드시 겪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도전을 마주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특별히 저주받았다거나 특별히 커다란 실수를 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처음 시작하는 것보다 이렇게 시장으로 돌아가서 문제를 풀어내는 과정이 훨씬 훨씬 고통스럽고 멀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기본이고, CEO 리더로서 가장 먼저 시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잘 돌파할 수 있다면 그것이 CEO가 본격적인 기업가로, 스타트업이 제대로 된 기업으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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