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관람가 66. ‘남한산성’ 행간읽기
2017년 10월 13일

*스포일러 있습니다.

청에 몰린 조정은 산성에 갇혔습니다. 하루하루 죄어오는 생존 위협 속에서 성은 안에서부터 허물어집니다. "적의 아가리 속에서도 삶의 길은 있을 것"이라는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과 "죽음에도 아름다운 자리가 있을진대 하필 적의 아가리 속이겠나"는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 사이에서 인조(박해일)는 그저 무력합니다.

<남한산성>(2017)의 관람은 스크린으로 문장을 읽는 경험이었습니다. 황동혁 감독이 원작에 존경과 예의를 품고 있음이 느껴졌습니다. 감독은 영화의 문법으로 스크린 위에 소설 문장들을 썼습니다. 원작처럼 말보다는 상황과 상황의 배치로 묘사합니다. 이따금 줄임표나 다름없는 한 줌 대사를 남겨놓고 장면을 넘겨버립니다. 그래서 관객은 소설을 읽을 때처럼 씬과 씬 사이의 행간을 읽게 됩니다.

<남한산성> 행간읽기 1. 흑과

문관인 명길은 흑입니다. 먹같이 검은 옷 위에 붓같이 검은 수염이 내렸습니다. 명길의 첫 씬에서 청의 병사들은 화살을 쏴 명길을 위협합니다. 빗발치는 화살을 겁내지 않고 명길은 오히려 적의 아가리 속으로 한 발자국 더 들어갑니다. 들어가서, 기어이 말길을 엽니다.

상헌은 백입니다. 흰옷 위로 늘어뜨린 흰 수염 끝에 칼자루 같은 기개가 배어있습니다. 첫 등장 씬에서 상헌은 얼음길을 안내하는 사공을 베었습니다. 청이 나루터에 도착했을 때도 사공이 길잡이를 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린 여자아이를 돌보는 굶주린 노인의 무고함도, 상헌은 끝내 베어야 했습니다. 상헌의 칼을 맞은 사공의 붉은 피가 흰 눈 위로 번집니다.

꼭 바둑처럼 이 흑과 백의 대국이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죽음은 견딜 수 없어도 치욕은 견뎌낼 수 있는 것이라는 명길. 치욕으로 사는 것은 이미 죽은 것이라는 상헌. 임금은 이 둘에게 한사코 답을 묻지만 끝내 어느 쪽도 결정할 수 없습니다.

이 행간에서 문득 쓸쓸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자가 살아남는 과정이란 아름답지만은 못하구나. 생존은 늘 다급하구나. 빈곤의 시기는 물론, 굴욕의 시간도 있겠구나. 돌아보면 초기 스타트업의 생존도 아주 다른 얘기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남한산성> 행간읽기 2. 겨울과

"난해한 나라로구나."

인조는 투항도 저항도 하지 못하고 우물댑니다. 그러다 새해가 밝자 예법대로 명을 위한 제사를 지냅니다. 높은 언덕에서 그들의 망궐례*를 내려다보며, 청의 황제는 조선을 어려워합니다. 힘으로 말하는 청에게 조선은 황당한 나라입니다. 힘이 없어서 배곯고 추위에 떨며 죽어가면서도 대의를 찾고 격식을 세우니 난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망궐례: 궁궐이 멀리 있어서 직접 궁궐에 나아가서 왕을 배알하지 못할 때 멀리서 궁궐을 바라보고 행하는 예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극중 상헌의 대사처럼 병자호란에 조선은 ‘혹독히도 추운 겨울’을 맞았습니다. 자처한 일이었습니다. 나라의 생존을 명에 기댄 채 지난 봄들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조선은 다시 봄을 맞지 못할 뻔 했습니다.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이 되니, 그 드높은 이상도 굳건한 대의도 그저 허망할 뿐이었습니다.

나의 생존은 온전히 나의 일이구나. 그러므로 생존은 자생적이어야만 생존이구나. 이 행간에선 그런 문장이 읽혔습니다. 명에, 청에, 혹은 성 밖의 원군에, 그 누구라도 타인에 기댄 생존은 언제든 위협받을 수 있었습니다. 명, 청이 투자하지 않으면, 원군이 등 돌리면 그대로 끝날 수 있습니다. 언젠가 그런 혹독한 겨울이 왔을 때 버텨낼 힘이 스스로에게 없다면 배고픔과 절망에 시달리다 끝날 수 있다는 섬뜩한 문장이 읽혔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강인한 존재는, 어쩌면 백성입니다. 이들은 임금도 명도 믿지 않습니다. 그 강인한 백성을 대표하는 인물은 대장장이 서날쇠(고수)입니다. 날쇠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전하의 명을 따르려는 것이 아니옵니다. 우리 같은 것들은 명을 따르든 청을 따르든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다만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거두어 겨울에 배를 곪지 않는 세상을 바랄 뿐이옵니다."

영화나 원작소설이 묘사했듯 백성들은 길가의 민들레 같이 피어나는 존재입니다. 백성들이 강인한 이유는 스스로 생존하는 버릇 때문입니다. 이들의 생존은 오롯이 이들만의 몫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아직 봄일 때부터 겨울을 준비합니다. 이 때문에 혹독한 겨울이 와도 다시 봄을 맞을 수 있습니다.

<남한산성> 행간읽기 3. 상헌의 큰절

역사기록처럼 영화에서도 인조가 청 태종에게 무릎 꿇고 세 번 큰절을 한 후에야 조정은 성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마지막을 준비하며 상헌은 자신이 거두었던 사공의 수양딸 나루를 날쇠에게 부탁합니다. 모든 감정들을 지나온 상헌은 날쇠를 바라봅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날쇠에게 큰절을 합니다. 예조판서의 큰절을 받은 천민은 몸 둘 바를 몰라 합니다.

이 행간에선 상헌의 큰절이 진심이었음이 읽혔습니다. 나루를 곁에 두며, 또 혼란 중에 나루를 꼭 끌어안고 지켜내 보고 나서 상헌은 백성들에게 죄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대의를 말하고, 떳떳한 죽음을 말한 상헌은 마주한 백성의 얼굴 앞에 민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상헌은 또 그때 백성들의 스스로 차오르는 생명력이 존경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언 땅이 풀리면 어김없이 피어나고, 언 강이 녹으면 다시 꺽지를 잡아먹으며 또 한철을 살아내는 백성이 문득 큰 존재로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상헌의 큰절엔 사죄와 존경이 담겨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 꾸준히 노력해 자신만의 힘으로 끝내 뭔가 이뤄내는 사람들을 보면 흥미롭고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곤 합니다. 그런 꺾이지 않는 생명력을 품은 사람을 만나면 반성도 들고, 큰 존재로 느껴집니다. 예조판서나 이조판서처럼 비단옷을 입진 않았지만 날쇠는 허름한 모습을 하고도 성안의 그 누구보다 빛났습니다. 스타트업계엔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게 또 스타트업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영화 이미지 ⓒ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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