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글로벌이라는 도그마에 대해
2023년 12월 29일

2023년은 포스트 코로나를 맞아 우리나라의 스타트업들이 다시 글로벌 시장에 본격적으로 도전하기 시작했던 한 해였던 것 같다. 그리고 다가오는 2024년은 우리나라의 야심찬 스타트업들과 창업자들의 글로벌 도전이 보다 거세게 이루어지는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처럼 뜨거울 2024년을 목전에 둔 지금, 필자는 과연 우리나라의 스타트업들에게 과연 ‘글로벌’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혹시 그것이 우리에게 무의식적으로 입력되어 있는 도그마(Dogma)는 아닐지, 그리고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는 우리 스타트업들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들은 무엇인지에 대한 단상을 나누어보고자 한다.

글로벌, 도대체 왜?

필자가 창업자이자 Managing Partner로 있는 541 Ventures는 미국 LA에 기반을 둔 벤처캐피털로, 한국을 비롯한 APAC의 프론티어테크 기업 중 미국으로 와 커다란 산업을 일굴 수 있는 회사에 투자하는 것을 중요한 목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자연적으로 글로벌 시장을 꿈꾸는 많은 창업자와 스타트업들로부터 연락을 받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처럼 여러 흥미로운, 그리고 혁신적이고 야심 찬 아이디어를 듣게 되는 과정에서 필자는 항상 “그런데 왜 글로벌, 특히 미국 시장에 오려 하시는지"를 묻는다. 그러나 글로벌을 꿈꾸는 그처럼 야심 찬 창업자들이 실제로는 본인들이 글로벌을 지향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해 보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왜 미국 시장에 오려 하시는지” 묻는 경우 창업자들의 대답은 크게 다음의 세 가지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미국 시장의 크기이다. 이 카테고리의 창업자들은 - 그것이 컨슈머 시장이든 엔터프라이즈 시장이든, 미국 시장의 구매력이 얼마나 크며, 따라서 본인들이 잠재적으로 얼마나 커다란 매출을 낼 수 있을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물론 이분들이 맞을 수도 있고, 또 맞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명목적으로 일반화된 시장의 크기보다 실상 더 중요한 것은 “내 시장의 크기"가 얼마나 크냐 하는 것이며, 이때 역외의 스타트업으로서 미국 시장 내에 존재하는 “내 시장의 크기” 를 명확히 이해하고 있는 창업자는 그야말로 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아울러, 스타트업의 가치가 시장의 절대적인 크기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더해 회사의 성장 속도(Growth Velocity)에 의해서도 크게 좌우되는 것임을  간과하고 있는 경우 역시 정말 빈번하다. 따라서 미국, 혹은 글로벌 시장의 전체 크기만을 보고 그를 추종하는 창업자들이라면, 특히 컨슈머 시장의 경우 한국의 구매력이 미국의 그것에 비해 결코 작지 않으며, 한국 시장이 엄청나게 빠른 확산이 가능한 고밀도 시장이라는 점, 그리고 적어도 미국 시장의 고객들은 제품만 좋다면 그것이 미국 회사의 제품인지 한국 회사의 제품인지 더 이상 신경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국 시장을 먼저 정복하는 것이 회사의 성장을 위한 옳은 전략이 될 수 있음을 반드시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다.

두 번째 대답은 주로 미국의 투자 환경에 대한 것이다. 이는 물론 크게 미국 내 VC들의 투자 규모가 한국의 그것에 비해 월등히 크며, 미국에서 얼마나 많은 유니콘들이 탄생하고 있는지 등에 관한 것이다. 반면, 미국과 한국의 초기 라운드 투자 금액의 중간값이 그렇게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며, 미국에서의 VC는 한국의 VC들에 비해 최소 두 배가량의 지분을 요구한다는 것(관련 글)을 이해하고 있는 창업자는 여전히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실제로 미국에서 시드(Seed) 단계에서 회사가 내어주어야 하는 지분율은 2010년대 후반 이후로 꾸준히 20%에서 25% 사이에서 움직였으며, 특히 최근에는 30% 언저리까지 가는 것도 종종 볼 수 있다. 시리즈 A에 있어서도 미국 VC가 차지하는 평균 지분율은 지속적으로 20%에서 25% 사이에서 결정되어 왔다. 이는 적어도 미국 시장에서는 스타트업의 기업가치 증대가 초기에는 아주 촘촘하게 이루어지다 성장단계(Growth Stage)를 넘어서면서 본격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우리 스타트업들에게 중요한데, 첫 번째는 그것이 회사에 대한 완전히 첫 번째 투자이거나 회사가 잘 성장하여 폭발적인 성장이 가시화되기 시작한 후기 투자가 아니면 대부분의 미국의 VC들은 아주 높은 확률로 한국의 스타트업이 미국의 스타트업에 비해 너무 비싸다고 느끼게 될 것이라는 점이며, 두 번째로는 그처럼 상대적으로 비싼 한국의 스타트업으로서의 느끼게 될 미국에서의 투자유치 난이도에 비해 그 도전에만 상당한 규모의 비용 지출이 필요할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미국의 투자 환경을 이유로 미국 진출을 희망하는 창업자들이라면, 이제 한국 시장의 VC 투자 규모가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절대 작지 않은 반면, 특히 초기기업의 가치 상승에는 오히려 유리하며, 팁스(TIPS) 등 다양한 정부의 지원도 활용할 수 있음을 반드시 고려해 보기를 당부한다.

세 번째 대답은 ‘한국 시장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서’, ‘한국 투자자들은 본인들의 사업을 이해하지 못해서’ 등 한국 시장에 대한 부정적 경험을 토대로 한다. 그런데 그와 같은 부정적 경험을 토대로 글로벌 시장을 눈여겨보는 창업자들이라면, 벤처는 - 특히 미국에서의 벤처는, 스타트업들 간에서 완전 경쟁이 이루어지는 시장이라는 것을 반드시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미국에 한 일주일 정도 와서 투자자 몇 명 만났는데 그들이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좋은 질문을 했고 계속 업데이트 해 줄 것을 부탁했다는 것이 실상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임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그들이 우리 회사와 사랑에 빠진 것도, 투자를 결정한 것도 아닐 뿐더러, 오히려 이는 미국 내에서 그들이 매일같이 만나는 수많은 회사와 경쟁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시장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아예 글로벌 시장에 존재하는 기회를 선점하기 위해 처음부터 현지에서 본격적인 창업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현지에 존재하는 현지인이 창업한 회사보다 우위에서 투자를 받고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과연 논리적인 것일지, 그것이 한국에서 회사를 성장시키는 것에 비해 몇 배 더 힘든 것은 아닐지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글로벌’은 도그마이다.

위 세 가지 부류의 대답 이외에 우리 회사가 글로벌에 가야만 하는 이유를 생각해 낼 수 없다면, 당신이 가지고 있는 ‘글로벌’은 도그마이다. 당신은 실제로 왜 우리 회사가 한국을 정복하는데 매진하는 대신 ‘글로벌’에 도전해야 하는지, 그에 대한 이유를 진지하게 고려해 보지도 않은 채, 그냥 그렇게 입력된 대로, “스타트업은 글로벌을 해야 한다”라는 도그마를 따르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한국 시장에는 충분한 구매력이 있고, 스타트업의 절대적 수 및 물가 등 여러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따져 보았을 때 결코 적다고 볼 수 없는 자금이  VC를 통해 수혈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도그마에 빠져 우위를 가질 수도 없는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허상에 빠져있는 것이다. 그런 허상을 만들어낸 자들도, 그런 허상에 빠져있든 창업자들도 모두 보다 객관적인 자기 인식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글로벌은 무엇인가?

이쯤에서 독자들은, ‘너희 541 Ventures는 미국 시장으로 오는 APAC 스타트업에 투자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그렇다면 자기당착이 아닌가' 라는 의문을 가질수 있다.

왜 글로벌 시장, 특히 미국 시장으로 진출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만약 누군가가 ‘스타트업이 미국 시장에 진출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필자는 그 답은 단 하나, ‘인재'라고 대답할 것이다.

회사란 무엇인가? 회사를 실체가 있는 어떤 무엇인가로 인식하는 분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회사란 본질적으로 순전히 지적인 개념(purely intellectual concept)이다. 필자의 말이 아니라, Visa International의 창업자인 Dee Hock의 말이다. 생각해 보자. 당신의 회사는 무슨 색인가? 차가운가 아니면 뜨거운가? 부드러운가 아니면 거친가? 회사는 그와 같은 물리적 속성을 가진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집합이며, 그들이 함께 일하기 위한 체계에 불과하다. 따라서 글로벌 시장에서 글로벌 회사로 성장한다는 것은 해당 시장에서 인재들을 영입하는 것이 그 본질이다.

만약 우리 회사가 SOTA(State Of The Art)의 기술을 개발하고 그를 통해 기술적 리더쉽을 획득하려는 회사라면, 우리는 당연히 그와 같은 SOTA 기술의 한계가 매일같이 확장되고 있는 미국 시장에서 인재를 영입해야 할 것이다. (반면 그렇지 않고 우리가 기존 기술을 잘 활용함으로써 혁신적인 애플리케이션, 혹은 플랫폼을 만들려는 회사라면 굳이 그 비싼 미국의 인재들을 영입해야 할 당위성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동의한다면, 이제 어떤 스타트업이 미국 시장에 (혹은 같은 의미에서 글로벌의 어떤 시장이든) 도전해야 하는지를 판별하는 중요한 질문들은 “우리가 미국 시장에서 인재를 채용해야 하는가?”, “과연 우리가 미국 시장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를 채용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를 위해 “우리가 그러한 가장 뛰어난 인재들에 접근하는 것이 애초에 가능한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처럼 뛰어난 인재들을 영입하기 위해 미국의 기업들은 그야말로 매일마다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진출의 당위성을 가르는 데 있어 인재가 아닌, 그 이외의 다른 모든 것들은 다 허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대표님, 사람들이 미국에서 스타트업하는게 쉬운 줄 알아요.”

필자와 개인적으로 가까운, 미국에서 스타트업을 하는 대표 한 분이 얼마 전 사석에서 미국에서 스타트업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토로하며 한 말이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다룬 것처럼 언젠가부터 우리 생태계 내에서 ‘글로벌'은 창업자들에게 그냥 그렇게 입력된 ‘도그마'가 되었고 글로벌 시장에 대한 인식은 어느샌가 어떻게든 모든 것이 가능할 것만 같은 ‘장밋빛 꿈'과 ‘무한 긍정 사고'로 도치된 것을 목격하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는 것이 글로벌 시장 곳곳에 고객을 만드는 것이라면, 이제 그것은 한국의 회사로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 되었다. 따라서 도그마로서의 글로벌의 덫에 빠지기보다는 우리에게 그것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 기저에 회사의 성장에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인재’를 우리가 현지에서 채용해야 하는지, 채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이전에 그와 같은 최고의 인재들에 접근이 가능한지를 솔직히 따져 보아야 할 시점이다.

한국에 ‘생태계'라는 말이 생기기 시작한 시기, 그 이전부터 우리나라의 스타트업들과 그들의 야심 찬 도전을 끊임없이 응원해 온 필자이기에, 그리고 필자 스스로가 글로벌 시장에서 매일매일 그들의 도전에 마중물 역할을 하기 위해 매진하고 있는 소수의 사람 중 한 사람이기에, 오늘 나눈 이야기가 여러 면에서 논란이 있을 수도 있는 내용임을 알고 있음에도 오히려 필자가 그 솔직한 단상을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쪼록 오늘 나눈 내용이 창업자가 아니면 상상도 못 할 어려운 길을 가고 있는 모든 창업자들에게, 생각을 정리하고 회사의 성장에 보다 내실을 기하는데 이바지할 수 있는 현실적인 나침반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저자 이은세는 미국 LA를 기반으로 초기 프론티어테크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541 Ventures의 창업자이자 매니징 파트너(Managing Partner)이다. 이은세는 앞으로  비석세스를 통해, 프론티어테크 스타트업이란 무엇이며 왜 우리나라가 프론티어테크 스타트업의 훌륭한 요람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글로벌 생태계에서 관찰되는 프론티어테크 스타트업 관련 동향 등을 격주로 연재할 예정이다. 비석세스에서 프론티어테크에 대한 질문이나 본 연재를 통해 다뤄주기를 원하는 내용이 있는 독자께서는 언제든 hello@541ventures.com으로 메일 주시기를 바란다.

Eunse Lee is a career founder and now is the founder and Managing Partner at 541 Ventures - a Los Angeles-based VC that invests in frontier tech companies predominantly in their seed and pre-seed stage. Before founding 541, Eunse has served as the Managing Director at Techstars Korea - the first- ever Techstars’ accelerator for the thriving Korea’s ecosystem, after co-founding two prior LA-based VC firms. Having his root in the strategy world, he empowers deeply technical startups to start an industry and strives to be a catalytic partner for them in their journey to suc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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