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이 뭐길래
2012년 09월 26일

종이책 《아프니까 청춘이다》 5,000권을 방 한쪽에 차곡차곡 키 높이로 오밀조밀 쌓아보자. 대량 1평 면적이다. 아파트 1평 시세만큼을 창고 비용으로 놀리는 셈이다. 여기에 책장까지 들여놓으면 부동산 비용이 몇 배로 든다. 책을 분류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다. 바코드 스캐너를 사서 보유 서적의 도서번호를 자동으로 읽어들여 엑셀에 기록한다고 해도 책 제목, 저자, 출판일 등의 메타 정보는 일일이 손으로 입력해야 한다. 이쯤 되면 도서관이다. 그러나 검색 기능도 도서관의 검색 서비스 정도에서 그친다. 본문을 검색한다거나 내가 형광펜으로 색칠하고 메모한 내용을 찾으려면 암담하다.

여기서 나는 전자책의 진가가 ‘검색'이라고 주장한다. 본문 검색은 기본이고, 내가 어떤 문장에 형광펜 칠을 했는지, 어떤 페이지 사이에 책갈피를 꽂았는지, 어느 구석에 댓글을 달았는지 쉽사리 찾을 수 있다. 물론 원목 책장에 나란히 꽂힌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전집이 주는 지적 황홀함이나 종이책을 읽으면 꿈틀거리는 감각적인 즐거움은 사라진다.

선택은 간단하다. 지적이고 싶고, 감각적이고 싶으면 종이책을, 효율적으로 지식을 습득하고 싶으면 전자책을 읽으면 된다. 보너스로, 영어 텍스트를 전자책으로 보면 영어 사전 찾기가 더는 두렵지 않다.

나는 얼마 전 창고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10년 전에 종이책 200여 권을 동네 도서관에 기증하고도 종이책은 쌓이고 또 쌓이길래 종이책 척결 운동에 들어갔다.

1. 종이책 대신 전자책을 산다. 미국은 전자책이 종이책보다 비싼 경우도 있다. 그래도 산다.
2. 전자책이 없으면 중고 종이책을 사서 전자책으로 변환하는 작업을 한다.
3. 한 번에 150장을 처리하는 종이 절단기로 책 제본을 작두질한다.
4. 연속 급지가 가능한 양면 스캐너로 스캐닝한다.
5. 남은 종이 무더기를 재활용 쓰레기로 버린다.
6. 광학 문자판독(OCR) 프로그램을 돌려서 PDF 파일을 만든다. 광학 문자판독을 안 하면 텍스트 검색이 안 된다.
7. 단위 길이당 화소 수, 즉 PPI가 200이 넘는 레티나 아이패드에서 읽는다.

원래부터 있었지만, 소장가치가 없는 종이책은 한국에서는 알라딘한테 200여 권, 미국에서는 아마존에서 120여 권 팔았다. 아마존에서는 상인 등록을 하고 고객에게 직접 배송을 했다. 작업을 다 마치고 나니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이놈의 책장은 어떻게 처분하지?

미국 실용서 작가 겸 종이책 출판사 사장 댄 포인터는 16판째 찍고 있는 《자가출판 매뉴얼》에서 “논픽션은 독자가 시간과 돈을 아끼려고 사는 정보다"라고 말한다. 즉, 순수문학 서적 빼고는 모든 서적이 다 실용 정보 보고서라는 말이다. 정보 처리는 나보다 컴퓨터가 잘한다. 그래서 선택은 전자책이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 질문만 받겠다.

“아동 서적이나 디자인 서적도 전자책으로 가야 하나요?” 텍스트 정보 비중이 낮은 책은 검색이 잘 안 된다. 선택은 독자 몫이다.

“책 스캐닝은 불법 아닌가요?” 미국 저작권법에는 ‘팔고 나면 그만'이라는 first-sale 원칙이 있다. 책을 팔고 나면 소유권을 가진 고객이 책을 재판매하건, 대여하건, 호떡 포장지로 쓰건 저작권 침해가 성립하지 않는다. 예외로 서적을 복제하는 복제권과 복제본을 유통하는 전송권은 first-sale 원칙에서 제외된다. 다시 예외로, 서적 소유자 개인의 사적 복제권, 달리 말해 백업은 인정한다. 업무 상이 아니라 개인 차원에서 복제하면 불법이 아니다. 한국은 아직 관련 판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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