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즐거운 것이지 귀찮은 것이 아니다
2013년 10월 11일

필자가 준비하는 서비스가 패션이기 때문에 지속해서 패션 스타트업에 대한 글을 읽는다. 다른 분야처럼 패션 스타트업도 일정한 트랜드가 있다. 그 트랜드 중 핵심 트랜드가 바로 Curation commerce이다. Curation commerce는 사용자의 기호를 바탕으로 상품을 추천해서 보여주는 전자상거래 서비스이다.  Curation commerce의 창업자 인터뷰를 읽어 보면 공통점이 보인다. 꽤 많은 창업자가 온라인상에 너무 많은 옷의 정보가 있기 때문에 소비자가 원하는 의류를 찾는 것이 Pain이라서 창업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한 대안은 Curation commerce로 사용자의 취향에 맞는 패션을 제공하는 것이 사업의 핵심이다. 물론 온라인 상에 너무 많은 패션 상품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용자가 일종의 문제를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과연 단순히 정보가 많아서 필요한 정보만을 제공하는 것이 의미있는 서비스가 될 수 있을지는 확신이 없다. 여기에는 3가지 이유가 있다.

  1. 사용자는 이미 자신의 기호에 맞는 쇼핑몰을 알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너무 많은 정보는 정보가 아니라 공해이다. 그러므로 사용자 또한 공해가 아닌 산소를 얻기 위해 충분한 준비를 해왔다. 즉 온라인에서 옷을 처음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면 상당수의 고객은 자신의 패션 성향에 맞는 판매자를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소비자와 관련없는 더 많은 상품이 온라인상에 존재한다고 하여도 관련 없는 상품이 꼭 소비자에게 귀찮은 존재는 아니다.
  2.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 어떤 경우에는 많은 정보를 읽고 그중에서 필요한 정보를 취합하는 행위 자체가 즐거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필자가 자동차를 구매했을 때 국내 인터넷 카페는 물론 영국, 독일의 사이트도 읽어 보고 해외 구매가 더 저렴한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관세도 공부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아직도 꽤 즐거운 과정으로 기억되고 있다. 온라인 패션 쇼핑도 마찬가지이다. 패션 제품은 다른 어떤 상품보다 가격 비교가 어려운 품목이다. 그러므로 구매 결정 과정에서 개인의 기호가 더욱 반영 된다. 이렇게 감정 개입이 높은 상품의 경우 그 상품을 찾고 알아 가는 과정이 상당히 흥미진진하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상품의 종류가 Pain point라기보다는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스타일을 찾는 즐거운 과정이 될 수 있다.
  3. Curation은 과학이 아니다. 필자의 전 직장에 웹디자인을 하는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는 정말 패션을 사랑하는 친구라서 모자를 구매할 때도 기본적으로 2가지 이상의 다른 색상을 한 번에 구매하는 진정한 패피(패션피플)이다. 종종 이 친구는 좋은 상품이 있으면 메신저로 상품의 링크를 보내 주었는데 이 컨텐츠가 대단히 매력적이어서 강렬한 구매 충동을 느끼곤 하였다. 컨텐츠가 매력적인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는 웹디자너 친구가 나의 스타일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관심이 없을 옷은 전혀 추천을 안 한다. 두 번째 이유가 훨씬 더 흥미롭다. 웹디자이너의 추천이 실제 내가 늘 구매하는 스타일과 아주 살짝 그렇지만 적절할 정도로 다르다는 것이다. 즉 내가 입는 옷 스타일과 100% 매치가 되는 패션을 알려주면 가격적인 매력만 있다. 그런데 실제로 웹디자너가 추천한 옷은 약간 다른 느낌의 옷이라서 "그래 이런 옷을 입어도 재미있겠다."라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즉 예측 가능한 범위의 의외성이 가지는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평소에 자신이 즐겨입던 스타일에서 조금 다른 스타일로 입는다는 것은 "나는 오늘 조금 다른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라는 이야기를 말없이 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3가지 이유로 필자는 Curation commerce라는 것이 특히 패션 분야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확신이 없다. 물론 알로리즘이 극도로 발전되어서 필자 팀의 웹디자너가 제공할 수 있는 Curation을 제공할 수 있다면 상당히 의미가 있는 서비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Curation이 그 수준으로 발전하려면 어쩌면 우리는 우주복만 입고 다니는 시대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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