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스타트업 아이디어” 생각 안하기
2013년 12월 10일

들어가며

난 어려서부터 코딩하는 그런 창조적인 아이는 아니었다. 그저 98년 당시 가장 선망하는 전공인 컴퓨터공학(지금은 상상 못하겠지만...)에 발을 담갔을 뿐이다. 처음 1년간은 C 프로그래밍이 너무 어려워 학점이 계속 “씨 씨” 욕을 해댔다. 1년 정도 지났을 때 좀 색다른 경험이 있었다. 어느 날 교회의 젊은 전도사님이 잡지 한 권을 펴 놓고 끙끙대고 있는 걸 봤다. 무엇을 하시느냐 묻자 잡지사의 상금이 걸린 퍼즐 문제를 푼다고 했다. 그분은 사실 많이 가난했기에 그 퍼즐 문제에 진심어린 희망을 걸고 계신 듯했다. 그런데 문제 중 딱 한 가지를 풀지 못하여 울상이었다. 퍼즐은 숫자가 나열되어 있고 중간마다 비어있는 연산부호를 넣어 결과 숫자를 유추하는 문제였다. ‘안 어려워 보이는데?’라고 생각했지만 한참 끙끙대도 조합이 안 나왔다. 가능한 연산자의 조합이 수도 없이 많으니 당연했다. 그러다 언뜻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 ‘가만...코드로 짜면 그 많은 조합을 컴퓨터가 할 수 있잖아?’ 막상 코딩하는 데 몇 분도 안 걸렸고 프로그램으로 바로 해답을 얻었다. 이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전도사님은 눈이 휘둥그레져, 과장하자면 마치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목격한 사람처럼 흥분했다. 그 주 내내 만나는 사람마다 “저사람 천재”라고, 심지어는 교회 설교 중에도 토해내던 흥분하셨지만, 다음 호 잡지에서 당첨자 목록에 본인 이름이 없는 걸 확인한 후에야 멈췄다.

두뇌의 조작질

이 작은 에피소드를 아직도 기억하는 이유는 코드를 이용하여 타인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한 첫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그 전에 해왔던 학교 과제나 프로젝트는 매년 반복되어 이미 정답이 정해진 훈련이었지만, 그날의 코딩은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살아있는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요즘 종종 블로그를 읽고 일개 프로그래머인 내게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상담해오는 분들이 있다. 대부분 재미있고 신선하다. 그런데 거의 모든 경우 슬라이드를 다 읽고 난 후에도 그 아이디어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지 알 수가 없다. 많은 경우 본인의 아이디어가 “새롭다” 또는 “지금껏 없었다”라고 이야기한다. 그 말이 맞다. 새롭다. 하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는 무한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 트위터에 한 글자 더 추가해 141자를 가능케 하는 것도 아이디어고, 139자로 제한하는 것도 아이디어다. 다만 아무도 원하지 않을 뿐.

폴 그레이엄이 “스타트업 아이디어”에서 지적했듯 아이디어에서 시작하는 것은 너무도 위험하다 [1]. 무한한 아이디어의 바다에는 반짝이는 돌들이 너무 많아 우연히 예쁜 돌멩이 하나를 집어들고 진주라고 믿는 경우가 많다. 스타트업을 꿈꾸는 나는 종종 아침에 샤워하다가 혹은 밤늦게 뜨거운 욕조에 누워 생각하다가 깜짝 놀랄 만한 아이디어를 생각하곤 한다. 흥분된 마음에 검색도 해보고 아직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다는 걸 알땐 가슴이 쿵닥한다. 우뇌는 "어떻게 구현할까" 생각하고, 좌뇌는 벌써 빌게이츠 집에 놀러가 있다. 생각의 그 다음단계는 멋진 아이디어가 해결하는 문제를 “창조”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러 이러한 문제를 겪고 있는데 내 아이디어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가정한다. 생각이 더 깊어지면 창조해낸 그 문제가 내게 그동안 고통이었다고 믿기 시작한다. 문제가 주는 고통이 심하다고 믿으니 아이디어는 더 빛나 보인다. 이 스타트업은 대박이다!

gollum

하지만 냉정하게 돌아보면 결국 두뇌의 장난질이다.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전까지는 사실 그 문제가 쓰라려본 적이 없다. 아이디어를 정당화 시키기 위해 두뇌가 한 조작질에 또 한번 당했을 뿐이다. 아이디어를 갖고 싶어한 그 순간부터 내 두뇌는 내 편이 아니다.

문제부터 생각할때

성공한 스타트업은 모두 문제에서 시작한다. 트위터의 창업자지만 세력 다툼에서 밀린 잭 도시(Jack Dorsey)는 다시 일어나 스퀘어(Square)라는 모바일 결제 서비스 스타트업을 시작하였고 현재 3조원 이상의 기업 가치를 평가 받는다. 잭 도시는 물건을 살 때마다 이런 질문을 했다. “왜 지금 내가 손으로 지갑을 집어들어 신용카드를 꺼내야 하지?”, “왜 카드결제 승인을 받고 영수증이 나올때까지 어색하게 서서 기다려야 하지?”, 또 “왜 나는 영수증에 서명해서 다시 돌려주고, 카드를 넣고 다시 지갑을 주머니에 집어 넣어야 하지?” [2] 보통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결제 과정이 잭 도시의 일상에서는 괴로움이었다. 아마도 리누스 토발즈가 본인을 ‘게으름뱅이’라고 지칭한 이유와 같을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에겐 익숙한 삶의 방식이 창업자에겐 너무 귀찮고 불 필요해서 코딩으로 해결해야하는 문제로 보인 것이다.

사실 잭 도시, 리누스 토발즈 같은 “난 놈” 들에게만 그런 문제가 보이는 것은 아니다. 때론 누구나 알고 있는 문제를 다른 이유로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주 미국에서는 홈조이라는 집 청소 스타트업이 약 400억 이상의 펀드를 받았다 [3]. 창업 1년만에 꽤 많은 매출을 올리는 알짜배기 스타트업으로 알려졌다. 이곳 기준으로도 상당히 큰 규모의 펀드를 받았다. 홈조이는 깔끔한 웹 페이지에서 집 청소를 요청하면 미국 대도시에 있는 청소 업체를 연결해 청소부를 파송한다. 스스로 청소부를 고용할 필요도 없이 홈페이지 하나 예쁘게 만들어 비즈니스를 하다니 마치 대동강 물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마냥 기발해 보인다. 그런데 꼭 그런 것일까? 아래는 홈조이의 창업자 아도라 청(Adora Cheung)의 트위터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adora cheung

[사진:청소부들과 함께 추수감사 식사 후 찍은 사진]

피부색도 사회적 클래스도 완전히 다른 청소부 사회에 들어가 그 업체들과 네트워크를 만든 용기와 적극성을 가진 프로그래머가 얼마나 될까? 실제로 아도라 청은 인터뷰에서 본인이 청소부로 일한 경험이 중요했다고 얘기한다. “집청소” 혹은 “청소부 고용” 이라는 문제는 아마도 몇 천 년의 역사를 가진 누구나 아는 문제인데 그걸 인터넷으로 가지고 온 것은 홈조이가 처음이다. 때론 문제를 알지만 해결할 용기가 없을 뿐이다. 비슷한 다른 예로 스트라이프(Stripe)라는 결제서비스 스타트업이 있다 [4]. 수없이 많은 프로그래머들이 자신의 프로그램을 온라인에서 돈 받고 파는 그 과정을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누구도 해결하려 들지 않았다. 코딩은 자신 있지만, 금융회사를 상대하는건 상상도 못할 일이기 때문에. 그걸 처음 시도해 의외로 쉽게 문제를 해결하는 결제 서비스를 만든 것이 스트라이프이다. 모든 프로그래머가 고통을 느꼈지만 금융회사의 문을 한번 두드려 볼 용기는 없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아이디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부터 두뇌는 스스로를 속이기 시작한다. 그대신 우리 주변에 있는 문제를 발견하면서 스타트업은 시작된다. 때로는 홈조이, 스트라이프처럼 스스로 단정지은 영역을 넘지 못해 알면서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더 많은 경우는 사실 우리가 문제를 발견할만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런 표현을 본 적이 있다. “Founders attract the problem (창업자는 문제들을 매혹시킨다)”. 문제가 매력적이어야 하는게 아니다. 우리 주변에 숨어서 존재하는 문제 중 하나가 당신에게 다가가고 싶을만큼 당신이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표현도 좋다. “Problems want to be discovered (문제는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준비된 사람에게 보일 뿐이다. 이브 윌리엄즈(Ev Williams)는 블로거, 트위터에 이어 최근에는 미디엄(Medium)이라는 세 번째 스타트업을 창업해 성공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꾸준히 한 우물만 파다보니, “웹에서 글쓰기” 라는 주제로 "대박" 비즈니스가 될 잠재적 문제들이 이브 그에게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스타트업을 꿈꾼다면 "보이지 않는 문제"에게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첫째, 무언가를 정말 좋아해야 하고, 둘째는 작은 문제부터 해결해봐야 한다.  이브 윌리엄즈가 글쓰고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2조 원이 넘는 재산에도 미디엄닷커(medium.com)을 창업할 이유가 없다. 잭 도시는 아주 어려서부터 트위터를 상상하고 있었다 [5]. 두 사람 다 문제에 빠져 사는 것이다. 페이스북의 마크 쥬커버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치과 사무실과 자신의 집을 연결하는 작은 문제를 메신져를 코딩해 해결했다. 페이스북의 전신 페이스메시(Facemesh)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이성교제를 하지 못했던 마크 주커버그가 여학생들 사진을 스토킹하며 문제를 해결한 방식이었다.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다보니 소셜 네트워크라는 대박 문제를 얻은 것이다.

그래서 아이디어 생각은 멈추고, 좋아하는 것(직업일수도 있고 취미 일수도 있는)을 계속 하자. 그 과정에서 나를 괴롭히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세심하게 관찰하자. 혹 문제가 대박처럼 보이지 않을지라도 내게 중요하다면 코딩으로 해결해보자. 그러다보면 언젠가 대박 문제가 당신에게 노크할지도 모른다.

loveactually

 

[1] 스타트업 아이디어 (번역)
[2] http://techcrunch.com/2011/12/25/what-startup-to-build/
[3] http://techcrunch.com/2013/12/05/homejoy-38-m/
[4] http://paulgraham.com/schlep.html
[5] 장관님, 이런 놈들을 찾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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