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의 기업 가치 책정, 공학아닌 예술?
2015년 03월 25일

스타트업을 하고 있거나 스타트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스타트업의 가치가 정해지는지 한번 쯤 의문을 가져 보았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매출도 거의 없는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이 수조 원대 가치 평가를 받기도 하고 또한 어떤 기업들은 사용자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헐값에 매각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협업 툴을 서비스하고 있는 슬랙이 3조 원에 가까운 기업가치를 전제로 새로운 투자 라운드를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했다. (관련 기사 : 슬랙, 기업 가치 2조 9천억 원의 새 투자와 함께 CEO 교체?)

어떤 사람들은 아직 미래가 불투명한 스타트업에 가치를 매기는 것이 ‘공학’이라기 보다 ‘예술’의 영역에 가깝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어야만 기업으로 인정받고 투자 또한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창업자와 투자자는 기업가치평가라는 이 예술의 영역을 어떻게 공학으로 가져오는 것일까? 다양한 기업가치평가방법을 정리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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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업의 가치는 시장이 결정한다

만약 투자자들이 “당신의 스타트업은 20억의 가치가 있습니다”라고 했다면 당신의 스타트업은 20억짜리 회사인 것이다. 물론 창업자로서 이 20억에 동의할 수도, 자신의 회사가 20억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 실제로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이 20억이 넘을 수도 있고 이미 창업자들이 그보다 더 큰 가치로 이미 투자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20억의 회사라고 밖에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회사는 20억짜리 회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투자자들은 무엇을 근거로 20억짜리 회사라 판단한 것일까?

1. 예상 재무제표를 근거로 하는 가치평가

사실, 재무제표를 근거로 평가할 수 있는 스타트업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예상 재무제표다. 타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예상 재무제표를 만들고 그것으로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 프랜차이즈나 대리점, 건설업과 같은 업종은 예상 재무제표를 꽤 논리적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해 예상 재무제표를 근거로 가치를 매기는 것이 정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IT 산업군이나 제약 산업군에 속한 초기기업들을 이런 식으로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2. 동종기업을 근거로 하는 가치평가       

IT 산업처럼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군에 속한 기업들은 비슷한 규모의 시장이나 회사를 찾아내 그것을 기준으로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창업 후 1년 정도 된 A라는 교육 관련 스타트업이 펀딩을 위해 가치를 평가할 때 미국에 있는 A의 동종기업 B가 창업 1년 후 만약 100억의 가치를 인정받았다면 미국 교육시장의 10분의 1인 한국 교육시장에 있는 초기기업 A는 현재 10억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1년 동안 A가 달성한 성과가 B가 미국에서 1년간 달성한 성과와 시장대비 비슷할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이 모든 계산이 가능하다.

선수의 몸값이 수백억, 수천억 되는 NBA나 NFL에서도 신인 선수의 몸값을 책정할 때도 이런 방법을 차용한다. 예를 들어 초특급 스타로 성장할 거라고 예측되는 신인 농구선수가 있다면 그의 몸값은 마이클 조던,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와 같은 슈퍼스타 선수들의 신인 시절 몸값 수준을 고려해 책정한다. 신인선수는 초기기업이고 마이클 조던과 코비 브라이언트는 이 신인선수의 동종기업인 셈이다. 이처럼 동종 기업을 근거로 하는 가치평가는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을 평가하는 데에 꽤 적절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3. 예상 재무제표도 동종기업도 찾기 힘든 경우

논리 있는 예상 재무제표를 만들기가 힘들고 적절한 동종기업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까? 사실 한 시장을 완전히 개척했다고 평가받는 많은 스타트업들이 아마 이 케이스였을 것이다. 최근 국내에 진출했다가 불법논란으로 철수하게 된 우버, 혹은 공유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 에어비엔비와 같은 회사들은 마땅한 동종기업을 찾기 힘들다. 이런 회사들은 탑다운(Top-down) 접근 방식을 통해 초기에 기업가치를 인정받는다.

탑다운 접근방식이란 시장이란 ‘큰 그림’을 보는 방법이다. 먼저 앞으로 크게 성장할 시장을 먼저 파악하고 그 시장에 존재하는 성장 가능성 있는 회사를 꼽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떠한 투자자가 앞으로 공유 경제의 개념이 활발해지며 숙박업에 공유경제 개념이 적용될 것이라고 예상해 창업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기업이 공유경제 숙박시장이 앞으로 100조 원으로 성장하게 될 거라 예상하고 가장 먼저 진입한 기업이 5년 이내에 20%의 점유율을 달성할 것이라 전제한다면, 이 기업은 5년 후 연간 20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 될 거라 가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계산된 예상 매출 정보 등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현재 이 기업이 가지는 가치에 대한 적절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런 식의 접근방법은 현재 매출이 없는 회사에도 미래 가치를 부여하고 가끔은 현재로써는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가치를 책정하기도 한다.

탑다운 접근방식을 통해 미래 가치를 인정받았다 하더라도 아직 매출이나 수익이 나지 않는 초기기업이라면 실제로 인정받은 가치만큼의 기업가치가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미래에 그만큼 가치가 있다고 예상된다는 것에 대한 프리미엄을 현재 가치에 부여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의 스타트업이 보다 높은 가치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것은 흥분되는 일이다. 하지만 초기에 지나치게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차후 후속 투자가 어려워질 수도 있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내 기업의 가치는 내가 알리는 것 

여러 투자자와 관련 기관 여러 곳에 의뢰한다면 공신력 있는 기업 가치를 매길 수 있지만 대부분 초기 스타트업은 투자자 중 고를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한 투자자의 의견에 따라 기업가치가 매겨질 수 밖에 없고 좀 더 좋은 가치평가를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낮은 가치로 평가가 진행될 수 있다. 그렇다면 창업자는 묻고 따지지도 않고 이렇게 통보된 기업가치에 동의해야만 하는 걸까?

스타트업도 타당한 논리만 있다면 시장과 투자자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피력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투자자가 자신이 투자를 검토하는 과정에 있는 어떠한 회사의 가치가 20억 원이라고 생각한다면 아마도 창업자가 투자자에게 전달한 정보를 근거로 책정한 것일 것이다. 의미 있는 재무제표가 아직 없는 스타트업은 현재 사용자 수, 구매전환율 등을 기준으로 가치평가를 평가한다. 이러한 정보를 창업자가 투자자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이때 창업자가 앞으로의 미래 사용자 증가량이나 구매전환율을 파악하고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면 다양한 방식의 가치평가가 가능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초기 스타트업의 가치를 평가한다는 것은 공학이라기 보다 예술의 영역일지 모른다. 결국 창업자와 투자자도 초기기업의 가치를 평가할 때에는 나름의 철학과 논리를 가지고 창의력을 발휘해야만 하는 것이다.

필자가 미국에서 스타트업을 하던 시절 만난 투자자로부터 농담처럼 “로펌들은 기업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회계법인들은 대부분 기업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양쪽 의견의 중간 값이면 대충 맞는 계산”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차피 비상장사의 가치를 운운하는 것이 무리가 있기 때문에 본인은 투자하는 기업의 가치를 결정할 때 레퍼런스를 얻기 위해 로펌과 회계법인의 의견을 들어본다는 것이다. 그만큼 초기기업 가치평가에 있어서 이런 식으로 자신만의 창의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는 것이다.

앤디 워홀과 같은 유명한 작가의 그림은 수백억을 호가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작품이 이러한 가치를 갖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겠지만,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만큼 많은 사람이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가치만 부여한다면 아무리 작은 초기기업이라도 큰 기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 또한 가능하다. 그렇기에 초기기업이 스스로 제시하는 가치와 사람이 부여하는 가치가 맞아 떨어지는 곳에 진정한 기업의 가치가 만들어진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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