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관람가 29. <소셜 네트워크> 맴맴맴… 우린 혼자도 아니고 함께도 아니야
2016년 09월 08일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줄 알았는데, 우산이라도 놔두고 갔던 걸까요. 여름이 돌아왔습니다. 갔으면 좋았을 텐데. 늦더위가 기승입니다. 같이 간 줄 알았던 매미도 다시 웁니다. 창문을 열고 잘 수도 없게 집 앞 놀이터에서 밤마다 울어대네요.

매미 우는 소리에 뒤척이다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미가 페이스북을 쓸 줄 알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저렇게 빼액빼액 울어대지 않고 페북에 자기 어필을 할 텐데, '좋아요'가 많은 순으로 차례차례 짝짓기할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나무에 매달린 프로필 사진 아래 “여친 구함, 건장한 대한민국 매미 항시 대기 중. 복근 있음. 번식능력 탁월(찡긋)” 이렇게 남겨놓으면 얼마나 편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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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하는 사람 중에 <소셜 네트워크>를 안 보신 분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영화는 페이스북의 설립 과정을 다루고 있죠. 그런데 데이빗 핀처(David Fincher) 감독의 시선이 재밌습니다. 성공신화를 다루는가 했는데, 카메라는 결국 페이스북으로 인해 ‘쓸쓸해진 인간’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페이스북은 폭발적으로 확산하며 순식간에 천문학적 가치가 되었습니다. 대성공이죠. 그런데 이 성공은 창업자들이 서로 등을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영화는 지분을 둘러싼 배신과 소송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그러면서 점점 쓸쓸해집니다. 엔딩에 이르러서는 이 순간 가장 쓸쓸한 한 사람을 롱테이크로 비춥니다.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주커버그죠.

소송과 배신으로 혼자 남은 그는 전 여친 에리카의 페북에 가서 친구신청을 합니다. 뒤쪽에 페이스북을 코딩하던 창이 떠 있습니다. 마크 주커버그를 찬 에리카는 애초에 페이스북을 만들게 한 장본인이죠. 마크는 혼자 사무실에 앉아 에리카가 친구신청을 수락했는지 확인하며 계속 새로 고침을 합니다. 비틀스의 ‘베이비, 유아 어 리치 맨(Baby, You’re a Rich Man)’이 흐르고, “마크 주커버그는 전 세계에서 가장 젊은 억만장자다”라는 자막이 뜹니다. 영화는 그대로 그렇게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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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이 무척 쓸쓸한 영화입니다. 그런데 페이스북이 사람을 쓸쓸하게 만드는 건 비단 영화뿐만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실에서도 페이스북은 사람들을 쓸쓸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페북이 등장한 이후로 우리는 한시도 온전히 혼자가 되지 않습니다. 게시물을 올리고 '좋아요'를 누르고 또 댓글을 달며, 우리는 희미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나 함께도 아닙니다. 온전히 혼자일 수 없으면서, 동시에 온전히 함께일 수도 없게 됐습니다. 내가 올린 글을 계속 확인하며 쓸쓸해지는 건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은, 좀 과장해서 말하면 매미가 우는 행위와도 비슷한 게 아닐까 하는 자괴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저도 솔직히 뭔가 자랑하고 싶을 때 페북을 켜게 되는 일이 많거든요. 마치 페이스북이라는 나무에 매달려 우는 매미처럼 맴맴맴… “나 여기 있어요, 나를 좀 봐달라니까?” 자랑하고 싶은 것들을 올려두고 맴맴맴… 그 소리를 듣고 날아온 다른 호모사피엔스가 '좋아요'를 눌러줄 때까지! 그런 나의 유치함이 문득 보이는 날은 괴롭습니다. 쓸쓸해집니다. 페이스북을 사용하며 이런 감정, 한 번쯤 느껴보지 않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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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맴맴맴 하기 좋아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매미의 삶에 대해서도 오해하고 있습니다. ‘7년의 기다림, 7일의 삶. 매미는 땅 위의 7일을 살기 위해 어두운 땅속에서 7년을 견뎌야 한데.’ 인간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건 매미 입장에서는 기가 막히는 말입니다. 누가 우리에게 61,320시간 동안 살아온 삶과 168시간 동안 살아온 삶 중에 어떤 게 진짜 인생이었냐고 물어보면 후자를 택할 리가 없습니다. 심지어 매미는 7년 동안 잠자고 7일 동안 깨어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매미가 들었으면 가슴을 쳤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애벌레야말로 매미의 진짜 삶입니다. 땡볕에 몇 시간이고 매달려서 맴맴맴…맴맴맴…맴맴맴… 하다 보면 아- 제기랄, 변태하지 말걸. 매미는 나무에 매달려 그런 생각을 떨쳐내려고 애를 쓸 것입니다. 아니야 그래도 종족보존은 해야지 맴맴맴… 가시오가피를 팔기 위해 동창에게 전화를 걸 때처럼 내키지 않는 심정으로요.

그러니 안 그래도 짜증나 죽겠는데 자꾸 7년간의 기다림 어쩌고 하면 매미는 확 돌아버릴지도 모릅니다. 북아메리카에 사는 주기매미는 심지어 17년을 애벌레로 산다고 합니다. 짝짓기한 뒤 하룻밤을 자고 죽어버리는 것도 다 짜증 나고 꼴 보기 싫어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매미는 사실 맴맴맴 하기 싫어하는 종족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늑한 익숙한 땅속이 매미는 그리울 것입니다. 맴맴맴 하기 좋아하는 건 오히려 인간 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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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인간도 맴맴맴 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매번 노력해도 매번 어렵네요. 소셜 네트워크는 결국 우릴 쓸쓸하게 합니다. 그걸 알면서도 또 맴맴맴 하게 된다는 사실은 자괴감마저 느끼게 합니다. 타임라인에 다른 스타트업들 돈 버는 얘기가 나오면 솔직히 배도 아픕니다. 쫌만 기다려라 곧 내가 더 잘될 거니까, 하는 난데없는 오기도 생깁니다. 진짜 쓸데없는 감정소모죠. 이렇게 유치한 인간이 나라니. 소셜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이상 그걸 인정해야 하는 괴로운 저녁은 어김없이 돌아오네요.

이미지 출처: © 2010 Columbia TriStar Marketing Group,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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