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기업 이커머스 ‘길트’의 3천억원 매각 사례가 주는 ‘기업가치’ 산정의 함정
2016년 01월 14일

새해 벽두부터 두 건의 커다란 기업간 인수합병이 각기 한국과 미국에서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많은 이들이 예상했을 것처럼, 한국의 다음카카오의 로엔엔터테인먼트 인수이다. 인터넷 기업이 기존 산업의 기업을, 그것도 2조 원에 근접하는 큰 금액을 주고 인수한 것으로, 앞으로 그 성패에 대해 많은 이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편, 이 곳 미국 생태계에서의 화두는 우리나라에는 아직 생소했을 길트 그룹 (이하 “Gilt”) 라는 이커머스 회사가 2억 5천 달러, 한화로 약 3,000억 원을 전후하는 금액에 캐나다 대형 유통업체 허드슨스 베이 (이하 “HBC”) 에 매각된 것이 이슈가 되고 있다.

FI-MALLS TORONTO, ON - NOVEMBER 13: Hudson's Bay at the Square One mall in Mississauga, Ontario. Toronto Star/Todd Korol Todd Korol/Toronto Star

FI-MALLS TORONTO, ON - NOVEMBER 13: Hudson's Bay at the Square One mall in Mississauga, Ontario. Toronto Star/Todd Korol Todd Korol/Toronto Star

필자 주: Gilt를 인수한 HBC는 미국의 하이엔드 백화점인 Saks Fifth Avenue를 비롯하여 캐나다와 유럽에 유통 채널을 보유, 운영하고 있는 기업 (관련자료: Wikipedia)으로, 1670 년에 영국에서 설립된 매우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기업이다. 반면 Gilt는 2007 년에 뉴욕에서 시작된 스타트업으로 명품 및 각종 패션관련 제품을 온라인 판매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인수 사례를 두고 이 곳 생태계에서는, 그 인수 이면의 전략적 배경이나 인수 금액의 적정성 여부 보다는 오히려 그 인수 금액의 절대적 크기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이다.

이는 약 3,000억원의 이번 Gilt의 매각대금이 분명 엄청난 금액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Gilt의 가장 최근 기업가치 1조 1천억원은 고사하고 그들이 지금까지 유치한 투자액 총액인 약 3,300억원에도 한참 못미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때 우리는 두 가지 질문을 가지게 된다.

첫 번째는, ‘그렇다면 Gilt가 좋은 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제값을 받지 못했는가?’ 하는 것이다.

“좋은 기업”이라는 주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하나는 Gilt라는 기업이 가지는 절대적 가치, 그리고 인수합병을 통해 그 인수자, 즉 HBC에 가져다 줄 수 있는 상대적이고 전략적인 가치가 그것일 것이다(관련 컬럼).

2007에 설립된 Gilt는 ‘Flash Sale’ 분야를 개척한 기업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최근까지도 “명품”이라는 온라인 리테일과는 다소 괴리가 있어보이는 주제를 중심으로 9백만 명의 사용자를 획득할 만큼 자신의 시장에서 훌륭하게 성장해 온 기업이다.

아울러 이번에 Gilt를 인수한 HBC의 시각에서도 Gilt는 상당한 가치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즉, 최근 자사의 고급 브랜드인 Saks Fifth Avenue 계열의 성장세가 그보다 약간 하위에 위치해 있는 Nordstrom의 그것에 비해 뒤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Gilt를 인수함으로써 Saks Fifth Avenue의 아웃렛 브랜드인 Saks Off 5th의 온라인 위상를 강화할 수 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은, ‘과연 1조 1천억 달러라는 Gilt의 기업가치가 과연 적정한 것이었는가?’로 이어진다.

필자도 기존의 컬럼에서 지적한 바 있는 오버캐피털라이징(Over-capitalizing)과 그에 따라 걷잡을 수 없이 상승하는 스타트업의 기업가치에 대한 문제는 이 곳의 생태계에서 최근 들어서 더욱 심각해 지고 있다. 특히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스타트업의 창업비용은 극적으로 낮아져 5백만원으로 창업을 할 수 있다는 말이 이미 옛말이 될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이곳 미국 생태계에서는 초기 투자의 경우 10억원 그리고 A 라운드에서는 30억원에서 50억원의 자금을 모집하는 것이 거의 트렌드인 것처럼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 때 30% 정도의 지분을 제공하는 것을 가정해 본다면, 이는 이미 많은 스타트업들은 두 번째 라운드의 투자를 받을 때쯤이면 최대 300억원 수준의 투자후 기업 가치를 획득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일부 벤처캐피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벤처캐피털들에게 A 라운드를 지났을 뿐인데 이미 수천억 원의 기업가치를 가진 스타트업을 받아 투자하는 것은 그 재무적 관점에서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고, 이는 당연히 결과적으로 해당 스타트업의 후속 투자 가능성에 영향일 미치게 된다.

또한 유니콘(Unicorn)으로 통칭되는 거대한 기업가치를 가진 스타트업들이 성공적으로 회사를 매각할 가능성은 역설적으로 극적으로 낮아지게 된다. 1조 원이라는 금액은 특정한 유형자산이 없는 신규기업의 인수에 쉽게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이 절대로 아니다. 이곳에서 가장 활발한 기업 거래가 이루어지는 “좋은 기업에 대한 매각 대금은 Gilt의 이번 매각 범위에 속한 약 2,500억원에서 6,000억원 규모이며, 이 범위를 벗어나는 기업가치는 오히려 벤처캐피털 투자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종합적으로 이번 Gilt의 매각 사례는 좋은 창업자가 훌륭한 기업을 만들도록 돕는 것보다 높은 기업가치만을 따라 움직이는 현재 투자 흐름에 대한 우려가 얼마든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이다. 그리고 이는 투자자에게, 자신들이 투자한 기업의 외형만을 성장시키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유, 무형적 형태로 지원하여 그들의 내실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이다.

아울러 이번 사례는 창업자들에게, 결국 창업에서부터 Exit 까지 이르는 모험에서 결국 그 성패를 가르는 것은 시장에서 실제로 유의미한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며, 결국 마지막에는 자신들의 가치가 그와 같은 성과에 의해서만 평가를 받게 될 것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물론 수천억 원의 기업가치나, 혹은 수천억 원에 인수되는 기업의 이야기가 우리나라 스타트업 생태계에는 그 자체만으로 부러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이곳에서 듣고 보고 느끼고 또 이들에게 설득하려 노력하고 있는 것은 그와 같은 부러운 이야기가 우리나라 생태계에서도 분명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 때가 되기까지 모든 창업자들과 또 우리나라의 투자자들이 어떤 노이즈에도 좌우되지 않고 결국 “좋은 기업”, “내실이 튼튼한” 좋은 기업을 만드는데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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