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관람가 12.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 내부에서 무너지면 어벤져스 팀이라도 별 수 없다
2016년 0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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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없습니다.

루소 형제라는 선택은 역시 탁월했습니다. 저번 ‘윈터솔저’와 이번 ‘시빌워’ 두 편의 <캡틴 아메리카>, 그리고 2년 후 개봉할 <어벤져스: 인피니티워> 1부와 다음해 2부까지. 굵직한 마블영화는 앤서니와 조 루소 두 형제 감독이 맡기로 되어있죠. 두 편의 <캡틴 아메리카>를 보고 나니 이 형제가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네요. 마블의 선택은 옳습니다.

루소 형제의 연출력은 ‘중심’과 ‘무게’라는 두 단어로 설명됩니다. 저울 같은 감독이랄까요. 연출에 단단하고 묵직한 무게감이 있습니다. 다른 히어로 영화들에선 찾기 어려운 부분이었죠. 한 발만 삐끗해도 유치해지는 히어로 무비에 묵직함을 더해줍니다.

앤소니 루소(왼쪽)와 조 루소 형제 감독. ‘마블의 현재이자 미래’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형제의 특유의 이 무게감은, 마치 저울의 추처럼 영화의 중심을 잡아줍니다. 중심에 확실한 게 있어 난잡하지 않습니다. 무려 12명의 히어로가 이리 뛰고 저리 날아도 관객의 집중이 흩어지지 않죠.

‘무게’와 ‘중심’이라는 루소 형제의 장점은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에서 ‘무게중심’으로 승화됐습니다. 제각각 개성 강한 캐릭터들에게 공정한 비중과 동등한 무게감을 부여함으로써 영화의 무게중심이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게 했습니다.

과연 ‘캐릭터에 대한 예의’를 아는 형제입니다. 어느 인물 하나 소홀히 대하지 않죠. 차례로 조명이 집중되는 히어로 한명 한명을, 마치 개별적인 마블 영화 한편 한편을 찍듯 정성껏 다룹니다. 코믹스 때부터 각 히어로들을 지지해온 수많은 열혈팬을 챙겨야 하는 마블의 입장에서, 루소 형제의 이런 능력은 무척 반가웠을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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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역시나 공항 전투 시퀀스입니다. ‘캡틴 아메리카 팀’과 ‘아이언맨 팀’이 한판 붙는 장면이죠. 형제의 재능은 이 액션씬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모든 히어로가 각자 자기만의 능력을 활용해 싸우며 제각각 고유한 매력을 뽐냅니다. 12명의 히어로 어느 누구의 매력도 누락하지 않는 연출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음 이번 화는 좀 조심스럽네요. 행여 스포일러가 될까봐서 자세한 영화 얘기는 참겠습니다. 아직까지 이 영화 봐야지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서요.

줄거리 설명에 관한 제약이 있음에도 이번주 스타트업 관람가로 이 영화를 고른 건 극장을 나오며 ‘팀웍’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블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요새는 현실에서도 일 잘하는 팀을 가리켜 “어벤져스 팀이다”라고 얘기하곤 하는데요.

두 파로 갈라져 피터지게 싸우는 이들을 보면서 ‘제 아무리 어벤져스 팀이어도 내부로부터 무너지면 망할 수밖에 없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게 꼭 스크린 안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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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이 작지만 강한 이유는 유기체적인 팀웍을 동력으로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이죠. 각자의 스펙이 화려하다고 한들, 개개인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팀으로서 호흡이 맞지 않으면 결국 어떤 팀도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분열된 어벤져스가 자기들끼리 치고 박는 싸움을 보면서 이 사실을 상기할 수 있었습니다.

사업이 좀 잘 되기 시작하면 새 사람을 영입하게 되고, 이때부턴 예전엔 못해본 복지도 도입해볼 수 있게 됩니다. ‘좋은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을 드디어 이뤄나갈 수 있는 기분 좋은 단계죠. 그러나 이때 꼭 주의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챙기느라 기존부터 고생해온 오랜 팀원을 은연중에 소홀히 대하는 일입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누구나 좋은 복지를 누리고 싶어합니다. 처우는 좋을수록 당연히 좋죠. 말을 안 한다고 아쉬움이나 서운함이 전혀 없는 건 아닐 것입니다. 그저 회사 사정을 잘 알고 이해하니까 기대에 못 미치는 처우도 미래를 보며 참아주는 것이죠. 금수저 스타트업이 아닌 이상, 초기부터 함께 고생해준 스타트업 팀원들은 대부분 속 깊고 이해심 많은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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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랜 기간 함께 일하다보면 이 고마운 이해심도 익숙해져서, 어느덧 당연하게 여기는 실수를 범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이건 일종의 고백입니다. 신입사원에게 좋은 스타트업이라는 인식을 주고 싶은 마음에 들떠있다가, 문득 정작 가장 오래 고생해온 팀원에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적이 있거든요. 아차 싶었습니다.

스타트업도 덩치가 커지면 전에 없이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소위 ‘라인’이 생기는 난감한 일이 드물지 않다고 들었는데요. 그런 분열도 오래 고생해온 기존 팀원을 은연중에 서운하게 만드는데서 시작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아직은 성공을 못 해봐서 잘은 모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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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캡틴 아메리카는 윈터솔져 버키를 찾게 되자, 누가 뭐라건 끝내 버키의 편에 섭니다. 그런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 대적하면서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버키는 내 친구야 (He is my friend).” (캡틴 아메리카)

“나도 그랬지 (So was I).” (아이언맨)

오랜기간 서로를 믿고 열심히 일해준 그 사람을 소홀이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 사람이 우리 회사의 아이언맨일 가능성이 높거든요.

이미지 출처: © 2016 - Marvel Stu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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